새카만 밤마다, '고양이'처럼 집을 나섰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21.03.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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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대디'로 동네 길고양이 돌봤던 1년의 기록…한겨울, 얼음을 수십번 깬 뒤에야 봄을 함께 맞았다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동네 고양이를 돌보는 밥자리.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눈에 안 띄는, 구조물 뒤에 뒀다. 겨울엔 물이 자주 어는 탓에, 얼음을 빼느라 더 많이 들렀다. 고양이처럼 걷고 고요히 앉아 밥과 물을 주고. 우리는 어쩌면 그리 닮아가는 것이었을지./사진=남형도 기자 아내동네 고양이를 돌보는 밥자리.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눈에 안 띄는, 구조물 뒤에 뒀다. 겨울엔 물이 자주 어는 탓에, 얼음을 빼느라 더 많이 들렀다. 고양이처럼 걷고 고요히 앉아 밥과 물을 주고. 우리는 어쩌면 그리 닮아가는 것이었을지./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새카만 밤마다, '고양이'처럼 집을 나섰다[남기자의 체헐리즘]
함박눈이 세상을 뒤덮은 까맣고 하얀 밤이었다. 자정까지 기다리니 눈사람을 만들며 설레하던 이들도 사라졌다. 창밖을 물끄러미 보다가 아내에게 말했다. "밥 주고 올게!" 핫팩을 까서 흔들어 데우는 동안 아내는 따뜻한 물을 물통에 받아줬다. 그리고 사료를 챙겼다. 다육이 식물이 떠나고 남은 빈 화분으로 네 번 뜨면 딱 맞았다. 준비를 마친 뒤 아이보리 빛깔의 질감이 투박한 에코백에 차곡차곡 담았다.

두 뺨과 귀가 금세 얼얼해지는 차가운 바깥, 내 발자국 소리만 '뽀도독 뽀도독' 귓가에 닿는 고요한 밤. 다들 따뜻한 집으로 돌아간 뒤에야, 돌아갈 집도 없는 존재에게로 갈 수 있었다. 동네에서 함께 사는 길고양이 두 녀석, 연탄이뚱냥이였다.



인적이 드문 곳에 둔 밥자리로 향했다. 자주 두리번거리다 사람이 혹여나 오면 지나갈 때까지 잠시 멈췄다. 가까워졌을 땐 아예 살금살금 걸었다. 혹여나 놀랄까 싶어서. '밥을 주러 갈 땐 늘 너처럼 움직이는 것 같다'고, 마스크 속 입김에 뿌옇게 된 안경을 닦으며 소곤소곤 생각했다.

밥그릇 두 개는 텅 비어 있었다. 그걸 보니 맘이 놓였다. 눈길이 다 닿진 못했으나, 그래도 어딘가에서 또 하루를 잘 보냈을 거란 생각에. 날이 추우니 고봉밥을 넉넉히 주고, 꽝꽝 얼어버린 얼음을 뺀 뒤 따뜻한 물로 넉넉히 채웠다. 되돌아오는 길엔 눈 위에 난 내 발자국마저 다시 지우며, 따사롭게 찾아올 을 상상했다. 그게 자그마한 위로였다.



눈이 잔뜩 쌓여 있던 밤, 밥을 기다리다가 다가와 허겁지겁 먹던 연탄이. 같은 시간에 밥과 물을 채워주는 것, 그건 우리끼리만 아는 약속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눈이 잔뜩 쌓여 있던 밤, 밥을 기다리다가 다가와 허겁지겁 먹던 연탄이. 같은 시간에 밥과 물을 채워주는 것, 그건 우리끼리만 아는 약속이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리 '동네 고양이'를 돌본지 1년이 넘었다. 연(緣)이 닿은 뒤로는 길고양이라 부르지 않고 있다. 동네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 지난해 겨울부터 시작했는데 사계절을 돌아 다시 겨울이 됐고, 맹추위를 견딘 뒤 다시 초록빛 새싹이 텄다.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무탈히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간 겪었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 함께 생각해봤으면 싶었다. 숨죽여 고단히 살아가는 존재를 위해.

4차선 도로를 건너다 숨진 사랑이
4차선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여 숨진 길냥이 사랑이. 그게 위험하단 것쯤은 알았을 녀석은, 배가 고파 먹이를 찾느라 그리 됐을 거라고 했다. 그게 마음 아파서 캣대디가 되기로 맘 먹었다. 적어도 동네 고양이만큼이라도 함께 살아내고 싶어서./사진=남형도 기자4차선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여 숨진 길냥이 사랑이. 그게 위험하단 것쯤은 알았을 녀석은, 배가 고파 먹이를 찾느라 그리 됐을 거라고 했다. 그게 마음 아파서 캣대디가 되기로 맘 먹었다. 적어도 동네 고양이만큼이라도 함께 살아내고 싶어서./사진=남형도 기자
동네 고양이를 돌보기로 다짐했던 계기가 있었다.

털이 노란 길고양이가 차에 치인 걸 봤었다. 지난해 1월, 케이크를 먹으러 카페에 가던 길이었다. 녀석을 봤을 땐, 4차선 도로 끝에서 이미 1차로 사고를 당한 뒤였다. 피흘리며 살겠다고 차도 위에서 버둥거렸다. 그러다 또 치일 것 같아 뛰어들어 품에 안고 동물병원에 갔다. 택시 안에서 이미 축 늘어져 무거워졌다. 수의사를 만났을 땐 이미 가망이 없었다. 자그마한 심장이 이내 멈췄다. 피범벅이 된 옷과 신발을 닦으며 펑펑 울었다.


'사랑이'라 이름 짓고 마지막 길을 함께해줬다. 김포에 있는 반려동물 화장장에서 사랑이에게 하얀 수의를 입혔다. 국화꽃 한 송이와 평생 못 먹었을 맛난 연어 간식도 관에 함께 넣었다. "험난한 세상에서 눈치 보며 사느라 참 고생 많았다"고 기도하고 추모했다. 고단했을 길 위의 삶, 그래도 떠날 땐 혼자가 아니라고 딱딱하게 굳은 몸을 쓰다듬었다. 50여 분이 지난 뒤 사랑이는 한 줌의 하얀 가루가 되어 나왔다.

"사랑이가 4차선 도로를 왜 건너야 했느냐"고, 친한 동물보호단체 대표님께 물었었다. 그는 대답했다. 먹을 걸 찾기 위해서라고, 오랜 길바닥 생활로 위험하단 건 알았을 거라고, 그러나 춥고 배고파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말이다. 그날 이후 15kg짜리 고양이 사료를 주문했다. 애써 위험한 길을 건너가지 않았으면 싶었다. 세상에 남은 사랑이들을 챙겨주고 싶었던 이유가 그랬다.

햇볕이 잘 안 들어 미안해도
밥자리는 눈에 잘 안 띄는 그늘에 뒀다. 언젠가 햇볕이 많이 내리쬐는 곳에서, 동네 고양이들에게 밥을 줄 수 있을지. 시선이 그만큼 더 고와지기를, 무관심일지라도 그저 미워하진 말고 바라만 봐주기를./사진=남형도 기자밥자리는 눈에 잘 안 띄는 그늘에 뒀다. 언젠가 햇볕이 많이 내리쬐는 곳에서, 동네 고양이들에게 밥을 줄 수 있을지. 시선이 그만큼 더 고와지기를, 무관심일지라도 그저 미워하진 말고 바라만 봐주기를./사진=남형도 기자
'밥자리(밥과 물을 먹는 곳)'를 먼저 정해야 했다. 한겨울이라 집도 만들어뒀다. 어디에 둘지 한참을 고민했다. 동네 몇 바퀴를 천천히 걸었다. 누군가 고양이를 불편해할지 모르니 인적이 드물었으면 싶었다. 그렇지만 햇볕은 또 잘 들었으면 싶었다. 볕이 따사로운 곳은 다 사람이 차지했단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인도에서 열 발자국 이상 떨어진 곳에 자릴 잡았다. 바깥에선 아예 안 보이는 곳, 사람이 다닐 염려가 적은 곳.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그늘이 많았지만, 위험한 것보단 그게 낫다 여겼다. 햇볕을 쐬며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걸 좋아하는 녀석들인 걸 알기에 미안하고 속상했다. 언젠간 마당이 넓은 집에서 맘 편히 주겠단 약속을 하며 스스로 달랬다.

물그릇 하나, 밥그릇 두 개, 그리고 겨울에 쓸 집을 뒀다. 초보 동네 고양이 아빠라 이렇게 하면 맞는 건지 조마조마, 두근두근했다. 꽤 구석인데 동네 고양이들이 알고 와줄까, 사료는 입맛에 맞을까 싶어서.

다음 날 저녁, 밥자리로 가는 길이 떨렸다. 텅 빈 밥그릇을 본 뒤에야 맘이 놓였다. "와, 너네 잘 먹는구나!"하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후두두둑' 사료를 기운차게 부어 다시 채워놓았다. 얼굴도 모르는 동네 고양이에게 인사를 했다. '멀리 헤매지 말고 여기서 먹어. 우리 앞으로 잘 지내보자'.

너와의 '거리'를 두었다
연탄이와 처음 만났던 날. 떨려서, 멀리서 급히 사진을 찍었다. 행여나 놀랄까 싶어서./사진=남형도 기자연탄이와 처음 만났던 날. 떨려서, 멀리서 급히 사진을 찍었다. 행여나 놀랄까 싶어서./사진=남형도 기자
밥과 물을 채워두면 자연스레 비워지는 날이 켜켜이 쌓여갔다. 어두컴컴해지면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움직여 밥자리로 가는 날이 반복됐다. 15kg짜리 사료 포대가 한 달 정도 지나니 다 사라졌다. 3분의 1 정도 남았을 때 미리 주문해야 했다. 밥과 물은 매일 먹는 거니까.

밥자리 주변은 항상 깨끗하게 정리해뒀다. 내가 버린 쓰레기가 아녀도, 담뱃갑이며 비닐봉지나 음료수병 같은 게 떨어져 있으면 주웠다. 절대 지저분한 곳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동네 고양이가 머무는 소중한 공간이니까.

자주 마주치진 못해도 다녀간 '생(生)의 흔적'은 확인해야 맘이 편했다. 겨울 집 안에 조금씩 떨어져 있는 흙먼지, 줄어든 사료물, 눈 위에 난 발자국처럼. 그걸 보면 어딘가에서 또 하루를 잘 보냈구나 싶었다. 차가 쌩쌩 다니는데 치이진 않았을까, 사람에게 무슨 일 당하진 않았을까, 걱정이 많았기 때문에. 마음을 쓴다는 건 그런 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 동네 고양이와 만났다. 밥자리로 살금살금 걸어가는 걸 보고 멀리서 가만히 바라봤다. 얼굴에 까만 무늬가 있어 '연탄이'라 이름 지었다.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왜 이리 기쁘던지. 며칠 뒤엔 연탄이와 비슷한데 덩치가 제법 있는 녀석도 만났다. '뚱냥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름까지 짓고 나니 동네에 친구가 생긴 것 같아 좋았다.

좋아하지만 일부러 거릴 두었다. 이후에도 연탄이와 뚱냥이를 가끔 만나면,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츄르도 안 줬다. 사람에게 익숙해지면 경계심을 늦출까 걱정이 됐다. 다 잘해주는 건 아니니까, 나쁜 마음으로 해하러 올 수도 있으니까. 만지고 싶지만 가까이서 사진도 찍고 싶지만, 평온하고 무탈한 네 나날이 더 중요한 거라고.

여름 장마, 물에 젖은 밥을 안 주려고
여름 장마가 길어졌을 때 주차장 지붕 틈에서 비를 피하던 동네 고양이들. 비오면 비가 오는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대로 마음이 쓰였었다./사진=남형도 기자여름 장마가 길어졌을 때 주차장 지붕 틈에서 비를 피하던 동네 고양이들. 비오면 비가 오는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대로 마음이 쓰였었다./사진=남형도 기자
동네 고양이 아빠로 지내며 생긴 습관이 있다. 날씨를 확인하는 거다. 바깥에서 고스란히 영향을 받고 있으니 신경 쓰일 수밖에. 폭염주의보나 한파주의보, 폭우주의보 같은 긴급재난문자가 울렸을 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집안에 편히 있음이 미안할 때도 많았다.

여름에 긴 장마가 찾아왔을 땐 시름이 깊어졌다. 사료를 둘 때마다 물에 젖어 퉁퉁 불으니,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었다. 비가 그치면 밥을 줘야지 싶었는데 일주일이 넘도록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굵은 빗줄기가 우산에 떨어질 때면 어디서 비를 피하고 있나 싶어 시선이 분주해졌다.

초보 캣대디 아닌가. 잘 모를 땐 검색하며 방법을 찾았다. 비가 올 땐 비닐봉지에 사료를 넣어두면 고양이들이 가져가서 먹는다는 얘기가 있었다. 몇 번 따라 했으나 비닐봉지 쓰레기가 어딨는지 찾기 힘들고, 자칫하면 봉지까지 삼킬 수 있다는 말에 멈췄다.

다시 폭풍 검색. 지붕이 있어 비를 막을 수 있다는 고양이 밥그릇을 산 뒤, 사료를 직접 놓아보고 홀로 뿌듯해하던 기억. 마음이 쓰이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긴 찾는 거였다. 장마가 끝나고 햇볕이 쨍쨍 나던 날, 도로 가져와 씻은 뒤 잘 모셔뒀다. 올해 여름 장마도 두렵지 않다고.

게으름에, 죄책감에 자책한 날들
지난해 가을, 잔뜩 쌓인 낙엽 위로 모습을 드러낸 동네 고양이들./사진=남형도 기자지난해 가을, 잔뜩 쌓인 낙엽 위로 모습을 드러낸 동네 고양이들./사진=남형도 기자
매일 밥을 줘야 하는 건 생각보다 쉬운 건 아녔다. 기껏해야 집에서 5분 떨어진 밥자리였건만, 피곤하고 지친단 이유로 나가기 힘들었던 날들도 많았다.

기사 마감을 하느라 새벽 1시 30분에 나갔던 어느 가을날, 그대로 잠자리에 뻗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이겼던 그 날. 우리끼리만 아는 약속된 시간을 한참 넘긴 뒤에야 밥을 줬던 날. 한숨을 쉬며 나갔다가 번뜩 정신을 차린 건, 어느새 서늘해진 바람 때문이 아녔다. '몇 번씩 찾아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갔으면 어쩌나', '내겐 고작 귀찮음이지만 네겐 귀한 끼니잖아', 그런 미안한 마음에.

추석 연휴인 걸 미리 계산하지 못해, 사료가 다 떨어져 이틀 만에 밥을 주러 갔던 기억. 택배가 왔나 몇 번씩 문을 열어봤다가, 사료 배송이 오자마자 부리나케 밥을 챙겨서 밥자리로 갔었다.

연탄이는 인상파다./사진=남형도 기자연탄이는 인상파다./사진=남형도 기자
미안하단 말을 되뇌며 주섬주섬 주고 있을 때, 연탄이가 가만히 다가와 옆에서 빼꼼 고갤 내밀었다. 많이 기다렸구나 싶어 속상해 자책하던 순간, 맛있게 먹으며 이따금 빤히 바라봐주며 괜찮다고 토닥이는 것 같던 네 모습.

그러니 동네 고양이를 챙기는 건 단지 측은지심만으로, 동물을 좋아하는 것만으로 쉬이 되는 건 아녔다. 그게 일상이 된다는 것,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건 강한 책임감이 필요한 거였다.

비 오던 새벽, '새끼 고양이'의 죽음
비가 많이 내리던 가을날, 밤을 채 넘기지 못하고 숨진 새끼 고양이. 고단하고 힘든, 길 위의 삶이 그랬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사진=남형도 기자비가 많이 내리던 가을날, 밤을 채 넘기지 못하고 숨진 새끼 고양이. 고단하고 힘든, 길 위의 삶이 그랬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사진=남형도 기자
그리고 기어이 마음 아픈 일도 겪게 되었다.

지난해 가을이었다. 동네에 캣맘이 챙기는 또 다른 밥자리가 있는데, 출근하던 아내가 거기에 새끼 고양이가 죽은 듯이 축 늘어져 있다고 했다. 불러도 꿈쩍 않는다고, 숨은 쉬는데 상태가 너무 안 좋은 것 같다고. 병원에 데려가야 할지 말지 모르겠다며 전화가 왔다.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캣맘 지인을 수소문해 알아봤다. 잘못 데려갔다간 어미가 찾을 수 있으니, 일단 지켜보라고 했다. 그날 저녁엔 새끼 고양이가 다른 장소로 옮겨져 있었다. 사람이 차마 들어가기도 힘든, 수풀이 우거진 곳이었다. 어미가 물어다 놓은 모양이었다.

노을이 지고 컴컴해지도록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 밤엔 야속하게 비가 세차게 내렸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다음 날 아침, 수풀을 헤쳐 들어가 새끼 고양이를 꺼냈다. 녀석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차디차게 굳어 있었다. 아내는 울며 자책했다. 전날 병원에 데려가면 살았을 것 같다고. 차라리 돌보지 않았을 때가 마음이 편했는데, 걱정이 많아져 힘들다고.

새끼 고양이를 땅에 묻고, 힘들어하는 아내를 달랜 뒤 다시 생각하게 됐다.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길 위의 삶을 그저 돌보기만 할 게 아니라고.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그게 '중성화'가 필요한 이유였다.

'중성화'를 한다는 것
병원에서 중성화를 기다리는 치즈 냥이. 이렇게 얼굴이 보이게 사진을 찍어야 중성화 비용이 지원된다고 한다./사진=남형도 기자병원에서 중성화를 기다리는 치즈 냥이. 이렇게 얼굴이 보이게 사진을 찍어야 중성화 비용이 지원된다고 한다./사진=남형도 기자
어쨌거나 고양이가 좋은 이들과 불편한 이들이 함께 살아야 하는 세상 아닌가. 마음이 앞서 돌보다가 고양이가 늘어나서 피해를 준다고 하면 그 또한 바람직한 '공존'이 될 수 없으니.

그러니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해서라도 중성화가 필요하다. 그로 인해 서울시에 사는 길고양이 숫자가 25만마리(2013년)에서 11만6000마리(2019년)로 줄었다.

중성화를 한 뒤엔 "고양이가 불편한 이들에게도 떳떳해질 수 있다"고, 한 캣맘이 그랬다. 울음소리를 낮추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단다. 임신의 고통과 힘듦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그래서 연탄이와 뚱냥이도 중성화를 시켜주기로 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동네 고양이 중성화를 한다는 안내문을 붙였기에, 밥자리를 알려주며 진행해달라고 했다. 비용은 지원되기 때문에 무료다.

중성화를 원하는 캣맘이나 캣대디는 관할 지자체에 신청하면 된다. 포획해서 중성화 수술(TNR)을 한 뒤, 원래 있던 자리로 방사한다. 귀를 커팅하는데, 중성화를 마쳤다는 표식이다.

다만 나이가 너무 적거나 많고, 임신했거나 수유 중인 고양이는 중성화 수술을 하면 안 된다. 돌보는 고양이 상태가 어떤지 잘 살펴서 신청해야 한다. 상처가 다 나을 동안 충분히 입원시켜주는 것도 중요하다(암컷 기준 2박 3일). 회복이 신경 쓰인다면 입원 기간을 며칠 더 연장해주고, 항생제를 투여해달라고 하면 된다(비용이 추가로 든다).

함께 겨울을 견디고, 봄을 맞았다


겨울집을 조립하는 남기자. 내부를 더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보완 작업을 해야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겨울집을 조립하는 남기자. 내부를 더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보완 작업을 해야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늦가을 단풍이 알록달록 들고 스산해질 무렵부터 겨울 집 장만에 나섰다. 이번엔 고양이 보호 단체서 파는 걸 샀다. 소재가 단단해서 부서지지 않고 따뜻하단다. 색이 까매서 눈에 덜 띄고, 눈비가 들이치지 않게 지붕도 있고, 드나드는 입구엔 비닐 커튼도 있어 제격이었다. 여기에 단열재를 사서 집 바닥과 내부에 여러 겹씩 붙였다. 추울까 싶어서.

그래도 안심이 안 돼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엔 맘을 졸였다. 핫팩 한 달 치를 사서 집안에 하나씩 넣어뒀다(진짜 추운 날은 두 개). 매서운 바람 소리가 들려올 때면 '부디 잘 견뎌달라'고 마음으로 빌었다.

동네 고양이가 마실 물이 계속 얼어서, 겨울엔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그릇에서 빼낸 얼음이 순식간에 쌓였다. /사진=남형도 기자동네 고양이가 마실 물이 계속 얼어서, 겨울엔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그릇에서 빼낸 얼음이 순식간에 쌓였다. /사진=남형도 기자
겨울엔 물이 자꾸 꽁꽁 어는 게 고역이었다. 얼지 않는 그릇 등 파는 게 있었으나 결국 부지런한 게 최고였다. 하루에 세 번씩은 가서 얼음을 빼고 물을 갈아줬다. 그때마다 그릇 모양의 동그란 얼음이 옆에 차곡차곡 쌓였다. 집 지붕에 쌓인 눈을 몇 번이나 쓸어내렸다. 추위가 대체 언제쯤 끝날까 자주 혼잣말을 했다. 겨울이 참 길었다.

달력을 몇 번 넘긴 어느 날, 모아뒀던 얼음이 스르르 녹았다. 물도 더는 얼지 않았다.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들이, 바깥에서 햇볕을 쐬고 몸을 핥고 기지개를 켰다.

내게 봄이 오는 광경은 주로 꽃망울이 보이거나, 입김이 사라지거나, 마른 잔디 사이로 보이는 초록빛이었는데, 올해는 이런 거여서 좋았다.

그리고 찾아온 봄. 견디느라 참 고생 많았다고. 초록빛을 보니 맘이 놓인다./사진=남형도 기자그리고 찾아온 봄. 견디느라 참 고생 많았다고. 초록빛을 보니 맘이 놓인다./사진=남형도 기자
'동네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건
동네 고양이와 함께한 사계절. 함께 사는 존재에게 마음을 조금 나눠주는 것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걸 볼 수  있음이 매일 감사했다./사진=뭉클한 남형도 기자동네 고양이와 함께한 사계절. 함께 사는 존재에게 마음을 조금 나눠주는 것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걸 볼 수 있음이 매일 감사했다./사진=뭉클한 남형도 기자
동네 고양이를 돌봤던 1년간 마음이 그랬다.

지구라는 별, 거기서도 대한민국, 그 안에서도 서울, 하필 지금 이 시대에 우리 동네에서 만났다는 건 대단한 인연(因緣)이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실은 미안했다. 이 땅은 인간만이 쓰는 게 아닐진대, 함께 살아갈 좋은 곳을 우리가 다 차지했으니. 그러니 불쌍해서 돕는 게 아니라, 응당 살아가게끔 배려하는 것뿐이라고.

고양이들도 어쩌다 보니 여기에 태어난 거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했다. 그런데 커다란 건물이 들어서 있고, 차는 쌩쌩 달리고, 사람들은 두렵고, 날씨는 너무 덥거나 춥고, 먹을 게 도통 없어 헤맸을 거라고.

소소하게 마음을 기울여 사계절을 함께할 수 있다. 주차장 지붕 위, 아지트에 고양이들이 몸을 기대고 낮잠 자는 풍경이 좋다. 매일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음이 감사하다. 시선이 닿으면 무탈한지 확인하고 고요히 응원한다. 차로 다닐 땐 어느 동네 골목길을 가든 더 천천히, 주의 깊게 운전을 한다. 로드킬로 숨진 사랑이를 떠나 보낸 뒤 생긴 트라우마이기도 하다. 약간의 관심만으로도 귀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연탄아, 집에 들어가. 추워." 한겨울에 만났던 녀석. 집을 만들어줬음에 할 수 있었던 말./사진=남형도 기자"연탄아, 집에 들어가. 추워." 한겨울에 만났던 녀석. 집을 만들어줬음에 할 수 있었던 말./사진=남형도 기자
험난한 길 위의 삶에, 집이 생겼다는 것도. 이른 아침 찾아갔을 때 연탄이가 집에서 빼꼼히 고갤 내밀면 "추워, 집에 들어가 있어"라고,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좋았다. "힘들다, 집에 가서 쉬어야지." 그런 말을 다들 하니까. 고단한 누구에게나 따뜻한 하나쯤은 필요한 거니까.

길들이지 않겠다 했건만, 연탄이와의 거리는 1년 새 꽤 가까워졌다. 처음엔 부스럭 소리만 내도 저만치 도망가던 녀석이, 이젠 꽤 가까이 다가와 빤히 바라본다. 다른 동네 고양이들은 낮에도 좀처럼 보기 힘들다. 사람이 자주 다니는 걸 두려워한다. 피해주지 않고 조심조심 구석을 이어 피해 다닌다. 고양이들 눈높이에선 사람이 건물만큼 커보일테니.

어느 봄날, 멀리서 고양이를 바라보는데 노란 가방을 멘 한 초등학생 아이가 다가와 말했다. "어, 길고양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길고양이가 아니라 동네 고양이에요." 그러니 아이가 또 물었다. "아, 왜요?" 그래서 이렇게 설명해줬다.

"같은 동네에 사는 걸 동네 주민이라고 해요. 고양이도 그래요.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살잖아요. 그러니까 동네 고양이인 거예요."

"아, 동네 고양이!"라고 외치며 아이는 총총 떠났다. 공감하는 것 같아 참 좋았다.
눈 위에 난 동네 고양이의 동그란 발자국./사진=남형도 기자눈 위에 난 동네 고양이의 동그란 발자국./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연탄이가 갑자기 안 보인 적이 있었다. 사료가 줄어드는 양이 확연히 줄었다. 걱정됐다. SNS에 고민을 털어놓으니 "오래 떠나 있다가 돌아오기도 한다"며 기다려보라고 했다.

일주일이 흐르는 동안 온갖 상념이 오갔다. '그래, 길고양이 수명은 길어야 2~3년이었지. 언제 떠나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불안한 삶이었지. 질병도 많고, 차도 위험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걱정이고. 어딘가에서 죽으면 그럼 그냥 그걸로 끝인 거지. 이제 못 보는 걸까.'

풀이 죽어 있던 어느 날 밤, 밥자리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연탄이었다. 나도 모르게 "야, 연탄아! 너 어디 갔었어"하고 탄성을 질렀다. 사료를 듬뿍 채워주고 자릴 비켜주니 배고팠는지 열심히 먹었다. 저만치에 서서 나지막이 이렇게 말했다.

'많은 건 안 바랄게. 그냥 네가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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