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희 국회부의장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양천 아동학대 사망사건은 발생 후 석 달이 지난 올 1월에야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아이를 살릴 기회는 최소한 세 번 있었다. 책임 있는 누군가가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개입했다면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그러나 기존 대응체계는 기회를 놓쳤고, 국민은 “왜 시스템이 작동되지 못했나”며 깊이 분노하고 있다.
지난 1월 정부가 발표한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방안>에는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에 ‘중대사망사건분석팀’을 설치한다는 계획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산하기관의 팀 단위로는 조사에 데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대책도 특정 부처의 업무 범위에 제한될 수밖에 없다.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조사와 대책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조사를 전담할 더 상위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특히 법무부·행안부·교육부·복지부·여가부 등 여러 부처에 분산된 아동정책 전반을 점검하고 대책의 이행력을 담보하기 위해, 조사기구를 대통령 직속 조직으로 설치토록 한 것이 특징이다.
영국은 2000년 빅토리아 클림비라는 8세 소녀가 학대로 사망한 후, 정부와 의회가 진상조사단을 꾸려 2년간 275명을 상대로 조사를 벌인 바 있다. 조사단은 클림비가 사망하기까지 아동보호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료진과 경찰의 대응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등을 조사해 <클림비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열두 번이나 아이를 살릴 기회가 있었지만 관련자 모두 소관 업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못 본 척하거나 무관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영국은 이 보고서를 토대로 「2004년 아동법」을 제정했다. 아동복지, 의료서비스, 경찰 대응체계를 대대적으로 개선하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이 시각 인기 뉴스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차원의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따져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우리는 아이들의 죽음에서 배울 의무가 있다.
말로만 저출산을 걱정할 게 아니라, 낳은 아이부터 잘 기를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번 특별법 제정은 정부 주도의 진상조사를 통해 ‘어떤 경우에도 멈추지 않는, 빈틈없는 아동보호 시스템’을 구축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