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16명 '전원 해고'…"우린 건강하고, 일하고 싶어요"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21.03.0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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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양시 A 아파트 경비원 16명, '고용 승계' 거부로 일자리 잃어…"정부 개입해 보호해달라" 靑 청원

경비원 16명 '전원 해고'…"우린 건강하고, 일하고 싶어요"


하루아침에 경비원 16명이 해고됐다. 일하며 잘못한 건 없었다. 그래서 "날 자르는 이유가 뭐냐" 물었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손때 묻혀 일하던 의자엔 새로 온 사람이 앉았다. 몸 담았던 직장은 그리 허망하게 끝났다.

실제 벌어진 일이다. 일터는 경기도 안양시 A 아파트. 경비 계약은 1년, 경비용역업체가 새로 바뀌었는데 경비원들을 다시 고용하지 않았다. 경비원들은 지난달 28일자로 이곳을 모두 떠났다.



경비 계약 1년, 합법 속 집단 해고
경비원 16명 '전원 해고'…"우린 건강하고, 일하고 싶어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랬다.

우선 A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이렇게 밝혔다. 새로 계약한 B 경비용역업체서 기존 경비원들에게 '일부 인원 승계''다른 사업장 근무'를 제시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경비원 측이 '전원 승계'와 'A 아파트 근무'를 제시해 협상이 결렬됐단 주장이다.



또 입주자대표위원회는 "전체 승계를 강요할 수 없고,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과를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경비원 측은 "관리 주체가 해결 의지가 없다"고 했다.

임정옥 경기중부아파트노동자협회 상임대표는 "동대표회장이 가장 불통이고, 입대위, 관리사무소, 용역업체가 하나로 움직인다"며 "제대로 대화 했으면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오히려 경비원들은 유연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개별 입장과 상황이 다르지만, 관리 주체가 중재해 대화하면 해결될 거란 입장이다.

주민들 포스트잇 응원 "힘내세요, 어르신들 지지합니다"
경비원 16명 '전원 해고'…"우린 건강하고, 일하고 싶어요"
A 아파트에 사는 많은 주민들도 함께해온 경비원들 응원에 나섰다. 경비초소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방식으로.

"아이가 학원 다녀오는 길에 '엄마, 안 좋은 일이 생긴 것 같아'라 하더군요. 아이들 눈에도 (경비원님들의) 절실함이 느껴졌나 봅니다. 힘내세요, 지지합니다."

"경비 아저씨, 힘내세요. 편지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와 함께 입주민들은 안양시에 경비용역업체 입찰에 부정이 있었는지 감사를 요청했다. 여기에 입주민 30% 이상이 동의했다.

취약한 노동자, 호소할 곳도 없다
경비원 16명 '전원 해고'…"우린 건강하고, 일하고 싶어요"
더 넓혀서 봐야 한다. 중요한 건, 이 같은 '16명 집단 해고'가 '계약 만료'란 합법 테두리 안에서 아무렇잖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마조마한 일자리는 불안하고 위태롭다. 스스로 '파리 목숨'이라 한다. 3개월마다 계약을 연장해 목숨을 부지하는 삶이다. 신영배 안양군포의왕과천비정규센터 사무국장은 "안양시 경비원들 중 3개월 초단기 계약을 하는 비율이 40%에 육박한다"고 했다.

그러니 주민 갑질에도 숨죽인다. 대개 항의도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유가 그래서다(故 최희석 경비원님). 환경이 열악해도 참는 수밖에 없다.

취약한 일자리, 그러니 행정 기관이 나설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 사무국장은 "아파트의 수많은 입찰 부정에도 솜방망이 조치 뿐, 형사 고발을 안하니 부정·분쟁이 끊이질 않는다"며 "제도 개선과 함께 조직화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경비원 16명 '전원 해고'…"우린 건강하고, 일하고 싶어요"
A 아파트 경비원들은 5일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서 이렇게 밝혔다. 청원 기간은 4월 4일까지다.

"경비원들은 '무법 지옥'에 버려져 있습니다. 내 잘못 하나 없어도 해고를 당합니다. 그 공포 속에 숨죽이며 평생을 일합니다. 갑질을 당해도 속으로 삭일 뿐, 대항할 힘이 없습니다. 정부서 개입해 보호해 주십시오. 우리에게 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우리는 아직 건강하고 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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