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더? 삼성 美반도체 '셧다운 책임'은…"손실 수천억대"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1.03.0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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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미국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이 한파와 폭설에 따른 단전과 용수 부족으로 셧다운(일시 가동 중단) 보름째를 맞으면서 손실 규모가 이미 1000억원대에 달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이 이 정도로 오랜 기간 멈춰선 것은 초유의 사태다.

다음달 중순까지 가동 못할 수도…전력·용수 문제 심각
한달 더? 삼성 美반도체 '셧다운 책임'은…"손실 수천억대"


2일 삼성전자 (76,700원 ▲400 +0.52%)에 따르면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이 지난달 16일 오후 단전 조치로 가동 중단된 뒤 이날까지 재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오스틴 공장 가동 중단은 텍사스주를 덮친 한파와 폭설로 전력 사정이 악화되자 시정부가 난방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 내 산업단지에 사흘 동안 전력을 끊기로 하면서 벌어졌다.



전력은 예정대로 사흘만에 다시 공급됐지만 용수 문제로 재가동이 늦어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지에서는 한파로 식수원까지 얼어붙으면서 반도체 공정에 투입해야 하는 깨끗한 물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를 세정하는 등 공정 과정에서는 순수한 형태의 물이 대량으로 필요하다.

가동 중단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주 미국 현지에 급파된 국내 기술진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달 중순까지 재가동이 늦어지는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책을 마련 중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오는 4월 중순까지 두달여 동안 셧다운 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고개를 든다.



매출 손실 1000억 이상…사태 장기화 땐 피해 눈덩이
지난 2월15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트리니티 강이 거의 얼어붙었다 /AP=뉴시스지난 2월15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트리니티 강이 거의 얼어붙었다 /AP=뉴시스
오스틴 공장의 지난해 매출은 3조9000억원 수준이다. 올해도 비슷한 수준의 매출을 올린다고 가정하고 단순 계산하면 하루 동안 가동을 중단할 경우 100억원가량의 매출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런 계산을 따르면 최근 가동 중단으로 이날까지 1000억원 이상의 매출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달 중순까지 한달 가까이 가동 중단 사태가 이어질 경우 매출 손실이 수천억원에 달할 수 있다.


반도체 공정 특성상 생산라인이 재가동되더라도 수율(생산효율, 완제품에서 불량품을 뺀 합격품의 비율)을 정상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매출 손실 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매출 손실과 달리 영업이익 손실은 이보다 적을 수 있다"며 "최근 전세계 반도체 공급 부족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반도체 가격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 데다 기존 재고 판매가 이뤄지는 만큼 영업이익 타격은 수십에서 수백억원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현지 수요 대응 위해 건설…2011년부터 위탁생산
지난 2월15일(현지시간) 눈에 쌓인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주택가. 텍사스주가 30년만의 한파로 알래스카보다 더 낮은 온도를 기록하면서 겨울폭풍 경보가 발효됐다. /AP=뉴시스지난 2월15일(현지시간) 눈에 쌓인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주택가. 텍사스주가 30년만의 한파로 알래스카보다 더 낮은 온도를 기록하면서 겨울폭풍 경보가 발효됐다. /AP=뉴시스
오스틴 공장은 삼성전자의 유일한 미국 현지 반도체 생산기지다. 1996년 건설이 시작돼 1998년 준공식에 당시 텍사스 주지사였던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현재까지 총 투자액이 170억달러(약 19조원)에 달한다.

설립 당시에는 메모리반도체가 주력이었지만 2011년부터 시스템반도체를 위탁생산했다. 2014년 14㎚(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 핀펫 공정을 세계 최초로 도입해 애플의 A9 칩셋을 수주했다.

삼성전자가 30여년 전 미국 현지 반도체 공장 건설을 결정한 것은 현지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반도체는 크기가 작은 데다 항공기로 운송하기 때문에 반드시 고객사 근처에 공장을 세울 필요는 없지만 고객사 입장에서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여러 곳에 생산시설을 갖춘, 특히 자사 근처에 공장이 있는 업체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협회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가전이나 휴대폰은 인도, 베트남 등 세계 각 지역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반도체 공장은 한국 외에 미국과 중국에만 세웠다"며 "미중의 막대한 수요에 대응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기후 탓하지만 결국 현지정부 책임"…해법 시급
지난 2월1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한 재활용 센터에 땔감을 구하려는 차량이 길게 대기하고 있다. 남부 텍사스를 강타한 폭설과 혹한에 정전까지 이어지면서 사람들이 땔감을 구하러 나선 가운데 이 센터는 한 번에 최대 13명까지 입장을 허용해 6분 동안 목재를 가져갈 수 있게 했다. /AP=뉴시스지난 2월1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한 재활용 센터에 땔감을 구하려는 차량이 길게 대기하고 있다. 남부 텍사스를 강타한 폭설과 혹한에 정전까지 이어지면서 사람들이 땔감을 구하러 나선 가운데 이 센터는 한 번에 최대 13명까지 입장을 허용해 6분 동안 목재를 가져갈 수 있게 했다. /AP=뉴시스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이 있는 텍사스주는 북미 대륙의 최남단 지역으로 연평균 기온이 20℃ 안팎에 달해 한겨울에도 영하의 날씨를 보기가 쉽지 않다. 겨울 낮기온이 20℃까지 오르는 날도 드물지 않다. 올해 같은 추위와 폭설은 이상 기후에 따른 북극 한파가 일으킨 이변으로 기록된다. 오스틴 공장 가동 중단은 예상치 못한 기후 변화에 당한 셈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다만 기후 이변이 현지 정부의 책임 면피가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한 인사는 "혹한과 폭설이 기후 변화 탓이라고 해도 결국 단전과 용수 공급 불량으로 현지 공장을 수일째 멈춰세운 책임은 주정부 전력관리 당국과 수도관리 당국에 있는 것"이라며 "주정부가 실효적인 해법과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부터 텍사스 주정부, 오스틴시 정부와 미국 현지공장 추가 건설 협상도 벌이고 있다. 20조원 안팎의 추가 투자를 두고 삼성전자가 현지 정부에 부동산 및 재산 증가분에 대해 최대 20년 동안의 세제 감면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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