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성과급, 연봉의 50%…코로나에 월급 깎인 직장인들 '허탈'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강기준 기자, 오문영 기자 2021.02.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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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성과급의 민낯-동기 부여와 불공정 사이(上)

편집자주 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업간 실적 양극화가 확대되면서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은 더 증폭되는 양상이다. 대중소기업간 협업 시스템과 사내 소통, 공정 이슈도 성과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현주소다. 시장 경제의 한 축을 구성하는 성과보상주의의 신화와 현실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한다.

성과급이 드러낸 혁신의 그늘…회장님은 왜 고개를 숙였나
대기업 성과급, 연봉의 50%…코로나에 월급 깎인 직장인들 '허탈'


"4대 그룹 회장이 정규임금도 아니고 '보너스' 때문에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로 시대가 바뀌었다는 거죠.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산업구조나 소통방식의 맨얼굴이 드러났다고 봅니다."

SK하이닉스 (190,100원 ▲200 +0.11%)에서 시작된 성과급 논란에 대한 대기업 한 임원의 촌평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20여년 동안 연봉제와 성과보상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가도를 달려온 한국사회의 이면이 코로나19 사태와 80·90년생 직원들의 등장, 산업구조 재편과 맞물려 성과급 논란으로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SK하이닉스의 성과급 논란은 최태원 회장이 급여를 반납하고 이석희 CEO(최고경영자)가 사과한 데 이어 노사협의회에서 성과급 산정기준을 변경하기로 합의한 뒤에야 수습됐다. 점잖은 말로 수습이지 사측이 백기투항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SK그룹이 성과 측정의 기준으로 삼아온 EVA(경제적 부가가치·영업이익에서 법인세, 향후 투자금액 등을 뺀 이익)는 최 회장이 직접 주도해 도입한 개념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성과급의 역습'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동안 성과급이 자동차나 조선 같은 일부 산업을 제외하면 대개 소통이나 협의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측이 계산해 책정하면 그저 감사하게 수령하던 가욋 급여에 대한 문제제기가 SK하이닉스에서 SK텔레콤 (52,000원 ▲200 +0.39%), LG에너지솔루션, 삼성전자 (78,900원 ▲1,500 +1.94%) 등 다른 기업으로 번지자 재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다.



국내에 본격 도입된 지 사반세기를 맞는 성과급은 이제 단순히 회사가 주는 당근을 넘어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상징이 됐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성과보상주의 신화와 경제·산업시스템, 대기업과 협력사의 권력관계, 계열사간 역학구도, 사내 이익분배 시스템 등이 성과급을 통해 드러난 민낯이다.

대기업 성과급, 연봉의 50%…코로나에 월급 깎인 직장인들 '허탈'
올해 사태의 전조로 꼽히는 삼성디스플레이의 1년 전 논란에서도 이런 속살이 확인된다. 사측이 실적 부진을 이유로 2012년 삼성전자 LCD(액정표시장치)사업부에서 분사한 이후 처음으로 성과급 지급 불가 방침을 통보하자 직원들의 불만은 노조 설립으로 표출됐다.


지난해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의 삼성디스플레이 게시판에는 성과급에 대한 불만의 글이 올라왔다. 성과급 산정 기준의 불투명성과 함께 삼성전자와의 납품구조에서 비롯된 불만이 기폭제가 됐음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가속도가 붙은 반도체 등 국내 산업의 쏠림 현상도 올해 성과급 사태를 통해 재확인한 장면이다. 산업별, 업종별로 엇갈리는 성과급 규모를 두고 이제 막 표출되기 시작한 불만과 갈등이 혁신과 잠재 성장역량을 좀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과급 사태의 밑바닥에 깔린 공정과 소통에 대한 갈증과 별도로 젊은 직원들 역시 성과보상체계의 순기능과 경제산업 전반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과주의 모델을 가장 먼저 벤치마킹해 효과를 봤던 삼성은 2010년 전후로 과도한 경쟁 위주의 성과주의와 보상이 문제가 되자 '창조적 성과주의'라는 이름으로 개인 격차를 완화하는 방식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2021년 연초를 뒤흔든 뜻밖의 논란은 10여년 만에 다시 우리 사회의 성과보상 시스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도 성장기와 제조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큰 힘을 발휘한 성과 기반의 물질적 보상이 경쟁만큼 협력과 공정이 중요해진 창의와 혁신, 융복합의 시대를 맞아 변신을 요구받고 있다"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코로나가 들춘 성과급 민낯…"더 줘" vs "딴세상 이야기"
서울 종로구 SK 본사. /사진=홍봉진 기자.서울 종로구 SK 본사. /사진=홍봉진 기자.
SK하이닉스발 성과급 논란이 SK그룹을 넘어, 삼성, LG 등 대기업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업종에선 성과급이 아예 사라져 버리기도 해 양극화 현상으로 인한 박탈감을 호소하는 말마저 나온다.

지난달 28일 SK하이닉스가 연봉의 2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겠다고 공지하면서 시작된 이번 사태는 서로를 비교하는 상황을 낳았다.

SK하이닉스에선 연봉의 47%를 받는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DS) 직원들과 격차가 너무 크다는 불만이 나왔다.

그렇다고 삼성전자 반도체 직원들이라고 불만이 없는건 아니었다. 삼성전자 실적의 절반을 이끄는 DS사업부문의 공로를 감안할 때 스마트폰(IM)이나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가 받는 50%보다 3%포인트 적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들이 나왔다. 삼성전자의 초과이익분배금(OPI) 제도는 이익의 일부를 연봉의 50% 한도 내에서 지급한다.

계열사별로도 성과급은 희비를 가른다. 같은 삼성 그룹 내에서도 삼성중공업처럼 수년째 조선 업황이 안 좋아 같은기간 성과급을 받지 못한 기업이 있고, SK하이닉스가 속한 SK그룹의 SK이노베이션도 지난해 2조5000억원 수준의 적자를 기록해 전년과 달리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이달 중 성과급 규모를 공지할 예정인 LG전자에서도 직원들은 사업부문별 성과급 차이에 따른 불만이 나오진 않을까 우려한다. LG전자는 지난해 사업부별로 성과에 따라 최대 기본급의 50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는데,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전장 사업 등 적자를 기록한 부문은 성과급 없이 격려금 100만원을 지급했다.

대기업 성과급, 연봉의 50%…코로나에 월급 깎인 직장인들 '허탈'
코로나19로 지난해만 해도 연봉 동결 혹은 삭감을 요구 받거나 구조조정의 위기에 처할 것이란 위기감에 시달렸던 직장인들은 이번 논란이 더욱 박탈감이 느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특히 이들은 바이러스라는 외부 요인은 조직이나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어 무력감이 크게 다가온다고 한다.

2000년대들어 본격 확산된 성과급 제도는 그동안 삼성과 같은 기업을 1등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기밀'로 취급됐던 성과급 산정 기준은 이제 '공정성'의 도전을 받게 됐다.

한 재계 관계자는 "성과급 산정 기준은 외부적으로 공개하기 어렵다. 심지어 사내 게시판에 공지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면서도 "서로 어떤 기준으로 받는지 모르니 과거 사례와 비교하거나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와 비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이렇게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게다가 회사 입장에서는 코로나19와 같은 외부적 불확실성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성과급을 무작정 풀기도 어렵다. 또다른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는 당장 지난해 실적을 바탕으로 성과급을 지급하기 보다는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결정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서인석 공주대학교 교수는 '개인 성과급과 집단 성과급이 기업의 혁신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한국 기업에서 개인 성과급과 집단 성과급 모두 공정성에 의미 있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며 "한국 기업에서 성과급 시행이 더욱 정교화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번 사태의 되풀이를 막으려면 성과급 제도를 재정비하는 한편 투명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강기준 기자



"그저 부러울 뿐"…성과급 논란 바라보는 협력사들
대기업 성과급, 연봉의 50%…코로나에 월급 깎인 직장인들 '허탈'
성과급 논란은 우리나라 산업 구조의 또다른 민낯을 드러냈다. 대기업과 계열사간, 대기업 발주사와 납품 업체간의 이익 배분 문제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성과급 지급 시즌이 다가오자 터져나온 삼성디스플레이 내부 불만은 삼성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로 향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적자를 이유로 TV용 LCD(액정표시장치) 패널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가 삼성전자의 요청으로 생산을 유지해왔다. TV를 담당하는 삼성전자 VD(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는 연봉의 40% 정도를 초과이익성과급(OPI)으로, 삼성전자의 요청을 받아들인 삼성디스플레이는 연봉의 12%를 성과급으로 받았다.

삼성디스플레이가 LCD 사업 철수를 선언한 것은 지난해 초. 중국 업체들의 저가 물량 공세로 LCD 패널 가격이 끝없이 하락하고 있었다. 중국 쑤저우 공장을 매각했고 인력조정에도 나섰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상황이 변했다. 비대면 생활이 확산되면서 TV 판매가 늘었고 LCD 패널 가격은 반등했다. 중화권 패널 제조사가 LCD 생산 비중을 높여가는 시점에서 시장이 급변하자 삼성전자는 삼성디스플레이를 찾았다. 삼성디스플레이를 통해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하고 중국업체와의 협상력도 높이는 차원이었다.

결국 삼성디스플레이는 오는 3월로 예정됐던 LCD 생산종료 계획을 연장한 상태다. 미래 먹거리로 꼽은 QD(퀀텀닷) 디스플레이의 양산 시점도 당초 계획했던 올해 상반기에서 하반기 이후로 늦춰진 것으로 전해진다.

2018년 5월 서울 영등포구 LG 베스트샵 매장에서 모델들이 'LG 올레드 TV'를 살펴보고 있다.(LG전자 제공)/사진=뉴스12018년 5월 서울 영등포구 LG 베스트샵 매장에서 모델들이 'LG 올레드 TV'를 살펴보고 있다.(LG전자 제공)/사진=뉴스1
LG전자의 요청으로 LCD 사업을 유지하기로 한 LG디스플레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개인인사평가인센티브(PI)는 지급했으나, PS(초과이익 분배금)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급하지 못했다. 다만 올해의 경우 하반기 동안 상반기 적자 폭을 줄인 점 등을 평가해 고정급여 50% 수준의 격려금을 이날 직원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디스플레이 업계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SK는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별 성과급을 할당하고 계열사에서 다시 본부와 부서, 팀 등의 성과에 따라 배분한다. 현재 핵심 계열사인 SK하이닉스에서 발생한 성과급 논란은 또 다른 주력업체인 SK텔레콤으로 번지고 있다.

중소 협력사에게 대기업 계열사의 불만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구조적으로 대기업과 납품 단가 협상에서 우위에 서기 쉽지 않은 협력사들은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기 어려운 처지다.

성과급에 대한 대기업 계열사들의 불만은 협력사에 불안 요소로 작동하기도 한다. 기아차 노조는 지난해 말 기본급 인상 및 영업이익 30% 성과급 배분 등을 요구하며 부분파업에 나섰다. 완성차업체가 정상적으로 가동하지 않을 경우 협력사의 납품 역시 중단된다. 다양한 납품 경로를 확보하지 못한 중소 협력사들에겐 거래 대기업의 성과급 갈등이 또다른 '유탄'이 되는 셈이다.

오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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