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대한민국 경항모 시대에 부쳐

머니투데이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2021.02.04 01:31
글자크기
[기고]대한민국 경항모 시대에 부쳐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이 수직이착륙기 탑재가 가능한 한국형 경항모 도입을 재가하고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전략기동함대 보유를 천명한 후 고비마다 시기상조론에 부딪친 경항모사업 추진이 드디어 지난해 말 공식화했다.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33년쯤 전력화가 가능할 것이다. 본격 추진에 앞서 우리 군에 몇 가지 당부하고 싶다.
 
우선 앞으로 10여년에 걸쳐 항모 건조(2조5000억원)와 전투기 구입(2조5000억원)에 드는 5조원을 허투루 쓰지 않기를 바란다. 협의의 시장논리로 보면 방위비는 세금낭비다. 올해 국방예산이 52조원가량인데 공공재인 안보를 지키는 60만 장병과 고가의 무기는 평화 시에는 비생산적 투자로 비친다. 그러나 가외성(redundancy)이 특징인 공공재는 여분(餘分)을 둘 수밖에 없다. 당장 쓰이지 않는 여분 ‘때문에’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여분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것이 공공재다. 광의의 시장논리로 보면 방위비가 제공하는 ‘억지력’의 실제 가치는 훨씬 크다. 그렇다고 국민의 세금을 당연시하면 안 된다. 5조원은 눈먼 돈이 아닌 눈뜬 돈이라 생각하길 바란다.
 
움직이는 해상기지인 항모는 해군만의 자산이 아니다. 육군, 공군, 해병대와 합동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생길 수 있다. 유사시 상륙작전에 활용한다는 계획에 지상군은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항모 탑재 수직이착륙기는 공군이 운용해야 하지만 해군 배에서 하는 것이 탐탁지 않은 눈치다. 해군은 해군대로 다른 군과 항모를 공유하는 방안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 군 내부에서 서둘러 풀어야 할 숙제다.
 
초기에는 정부부처 간에 일사불란한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안보와 예산부처의 갈등, 각 군의 엇박자는 어찌 보면 건전한 것이다. 치열한 논쟁을 통해 사업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하나의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7대3 법칙에 따라 다수가 그 정책에 찬성하더라도 반드시 소수의 반대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모두가 열광하는 인기영합주의 정책이나 아무도 관심 없는 정책은 꼭 실패한다.
 
이 사업을 주도하는 해군은 먼바다를 누빌 국가대표 함정으로 경함모 하나쯤은 꼭 만들어야 한다는 현시적 목표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이 사업에 비판적인 이들도 건설적 비판이 아닌 조직 이기주의를 반대논리로 포장하는 것은 아닌지, 막연한 직관이나 관성 때문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봐야 한다.
 
강대국간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의 가능성을 다룬 ‘예정된 전쟁’의 저자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과 소련의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도 있던 상황을 ‘해상봉쇄’란 선택을 통해 효과적으로 통제한 미 케네디행정부의 막전막후를 다룬 ‘결정의 본질’(Essence of Decision)로도 유명하다. 하나의 정형화한 방식이 아닌 유동적 상황에 맞는 탄력적 정책결정의 중요성을 다룬 이 책은 의사결정론의 고전이다. 그 앨리슨이라면 세계 군사력 순위 2위 러시아, 3위 중국, 5위 일본에 둘러싸인, 그래서 아직 ‘해상봉쇄’란 ‘함정’에 취약한 대한민국의 항모 도입 결정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사실 항모의 전략적 함의는 복합적이다. 항모가 시대에 뒤떨어진 전략자산은 분명 아니지만 압도적 억지력을 제공하는 ‘원샷원킬’의 무기체계도 아니다. 항모에 대한 과소평가만큼이나 과대평가도 금물이다. 그럼에도 주변국과 전략적 비대칭성이 커지는 가운데 항모전단은 선택이 아닌 필수 문제가 됐다. 북한의 위협만이 문제였던 30년 전에는 시기상조였지만 안보지형이 완전히 바뀐 지금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경항모 도입 결정을 다시 한번 환영한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