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지표 제각각… ESG 정보공개 '신뢰성 확보'가 관건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21.02.01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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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SG 표준화 원년] < 1 >-①

편집자주 올해도 ESG는 경영·투자의 핵심이슈를 넘어 규제 등 형태로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머니투데이는 법무법인 지평의 ESG센터와 함께 EU(유럽연합) 등의 규제가 직간접적으로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찰하고 국내 규제 제정 과정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를 전망하는 기획을 진행합니다.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도 없다.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시킬 수 없다."

현대 경영학의 대가로 꼽히는 피터 드러커(1909~2005)가 그의 명저 '자기경영노트'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정보를 유용한 것으로 활용하려면 해당 정보의 가치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절차가 전제돼야 한다는 의미다.

ESG(환경·사회·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리스크 요인을 경영과 투자에 접목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은 이미 오래 됐다. 국내에서도 이제 생소하지 않다. 관련 정보를 알리려는 움직임이 적잖았다.



ESG로 대표되는 다양한 비재무적 리스크·기회요인을 기업들이 얼마나 파악하는지, 잘 대응하는지 등을 알리고 이를 외부 투자자들이 투자 판단에 활용하도록 하기 위한 시도였다.

비재무적 정보의 외부공개 활동의 대표적 형태가 바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였다.



한국표준협회에 따르면 2000년부터 일부 기업과 시민단체 등이 하나둘씩 '환경(사회)보고서' '사회공헌활동 백서' '사회적 책임 보고서' '지속가능성 보고서' 등의 이름으로 비재무적 리스크 요인을 외부에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
기준·지표 제각각… ESG 정보공개 '신뢰성 확보'가 관건
삼성SDI가 2003년 초 '지속가능보고서 2003'(Sustainablity Report 2003)를 내며 ESG 관련 정보를 알린 한국 최초의 기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기아차, 홈플러스, 현대차, SK 등의 기업들이 뒤를 이었다.

2010년쯤까지 이처럼 보고서를 통해ESG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다만 그 수는 130개 기업 정도에서 정체되는 모습이었다.

다시 불이 붙은 것은 2020년이다. ESG 관련 이슈가 기업은 물론이고 국회·정부 차원에서도 본격화됐다. 기업들마다 ESG 지침을 세우고 ESG 경영을 한다고 선포했다. 지속가능보고서를 내는 곳들은 앞으로 증가추세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자율적으로 ESG 관련 정보를 알리려는 움직임 자체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정보 공유가 늘수록 해당 정보들의 유용성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는 게 현실이다. ESG 관련 정보의 가치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데다 비교가능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회계기준은 재무상태표, 손익계산서, 현금흐름표, 주석 등 재무제표 작성 기준을 명확하다. 기업의 재무정보를 정량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다른 기업의 재무정보와 비교할 수 있다. 외부 감사를 통해 해당 정보의 신뢰성도 높였다.



이같은 회계 인프라는 기업과 투자자 사이의 원활한 소통을 가능케 했다. 또 글로벌 기업들 사이의 비교 가능성을 높여 글로벌 자본시장을 하나로 묶는 데 기여했다.

반면 ESG 정보는 그렇지 않았다. 기업들이 아무렇게나 보고서를 작성해왔던 것은 아니다. 이미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IIRC(International Integrated Reporting Council) 등 글로벌 단체들이 지속가능보고서를 어떻게 작성해야 할 것인지 기준을 세웠다. 국내 기업들도 이들 기준에 맞춰 보고서를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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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검증이었다.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난무하다보니 유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검증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발간되는 지속가능보고서 다수가 3자 검증을 받기는 하지만 검증 수준이 낮다. 지속가능보고서 검증기관 중 하나인 영국의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가 만든 기준이 국내 지속가능보고서 검증에 주로 쓰인다.



국내 지속가능보고서들은 기업이 작성한 내용에만 의존하는 'Moderate Assurance'(중간정도 검증) 등급을 받은 게 대다수다. 해당 정보를 뒷받침할 객관적 근거까지 검증한 'High Assurance'(높은 수준의 검증) 등급을 받은 정보는 전무한 형편이다.

국민연금한 관계자는 "지속가능보고서를 일단 내기만 하면 그 보고서의 질(質)을 따지지 않고 ESG 평가등급 점수를 잘 받는 기형적 구조가 형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속가능보고서가 그린워싱(Green Washing), 즉 실제로는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더라도 친환경적인 기업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낳는 데 악용된다는 느낌까지 받는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예를 들어 산업재해율의 경우도 보고서 작성기준을 만든 단체마다 정량적 데이터 기준이 모호해 해당 정보를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인 경우가 많다"며 "부정적인 데이터는 거의 없는 자화자찬식 내용만 가득하고 해당 보고서에 기술된 내용의 진위여부와 관련한 3자 검증을 엄격히 받는 곳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했다.
기준·지표 제각각… ESG 정보공개 '신뢰성 확보'가 관건
최근 한국거래소가 내놓은 'ESG 정보공개 가이던스'가 주목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선 E(환경)·S(사회)· G(지배구조)별로 필요한 공개사항을 세부적으로 규정했다.

이 과정에서 GRI, IIRC, TCFD(기후변화 리스크의 재무공시를 위한 태스크포스) 권고안, SASB(지속가능 회계기준 위원회) 등이 세운 기준에 따라 보고서를 작성했다. 특히 해당 정보를 꼼꼼히 검증하라는 규정도 담았다. ESG 정보공개 방식의 표준화를 도모하기 위한 첫 걸음을 뗐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아쉬움도 남는다. UNEP FI(유엔환경계획 금융 이니셔티브) 한국대표를 맡고 있는 임대웅 에코앤파트너스 대표는 "이미 EU(유럽연합)에서는 ESG 정보공시 의무화는 물론이고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 녹색산업 분류체계) 구축 등을 통해 투자자와 기업을 압박하면서 EU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받거나 EU에서 영업을 하는 한국 기업들이 직간접적 영향권에 놓이게 됐다"며 "국내에서는 기업 준비상황, 부담 등을 감안해 ESG 정보공개 시기를 늦추도록 했는데 문제의 시급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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