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지난해 가계소득 동향을 보면 소득 하위 10%의 지난해 1~3분기 소득은 전년동기 대비 20% 이상 줄었지만 상위 10%는 1분기와 3분기에 오히려 늘었습니다.
세상은 80대 20 사회에서 점점 90대 10, 99대 1, 99.9대 0.1의 사회로 옮겨갑니다. 부와 권력이 극소수 엘리트에 집중됩니다.
이낙연 대표는 코로나 이익공유제에 대해 “공동체 정신으로 방역에 나서 선방했듯이 경제의 양극화도 공동체 정신으로 대처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문제가 많습니다. 실효성에도 의문이 듭니다.
경제계의 반박처럼 우선 개념이 모호합니다. 지난해 기업이익이 증가했다면 그게 코로나19 사태 때문인지 다른 요인에 의한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단적으로 삼성전자가 지난해 36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둔 게 전적으로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기업 경영진 입장에서 보면 이익공유제는 취지는 좋더라도 주주권 침해나 배임 이슈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지금처럼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한 해 이익이 늘었다고 바로 나누는 것도 부담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정치권이 최근 중대재해법 같은 자신들에 큰 부담을 주는 법안들을 통과시켜 놓고선 뜬금없이 이익 공유제를 들고 나온 게 아주 못마땅하고 이상할 것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이익공유제 정책들이 모두 실패했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1차 재난지원금 집행 때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했지만 1.9%만 기부되는 데 그쳤습니다. 임대료를 낮춘 건물주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착한 임대인 제도’ 역시 별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낙연 대표의 지적대로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양극화 심화는 ‘미래 불행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팬데믹을 겪은 우리 경제가 올해부터 회복국면에 들어간다 해도 개인과 기업 모두 격차가 확대되고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는 ‘K자형 회복’이 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상대가 매력적이거나 운명적이어서가 아니다. 주말이나 저녁에 혼자 있어야 했던 외로움 때문이다. 따라서 그 남자 그 여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고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건 그 상대가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이다.” 사랑과 연애의 대가라고 할만한 작가 알랭 드 보통의 말입니다. 이익 공유제도, 양극화의 해소도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나와 내가 몸담고 있는 기업을 위한 것이고 나와 우리 기업을 사랑하기 때문에 고민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는 당장 해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풀리지 않는 과제들에 대해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지금은 대다수 기업에서 ESG경영이 보편화 되었듯이 지속가능발전사회에 한 발 더 다가서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가 초래한 현재의 위기를 낭비하지 말고 잘 활용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