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끈 재판 끝났는데 또 기다리고 있는 재판들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2020.12.2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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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발묶인 기업들-②]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이제 겨우 1라운드 끝난 거죠. 다음 재판도 최소 3~4년 걸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무려 4년을 이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이 내년 초 선고를 거쳐 마무리될 전망이지만 삼성의 표정은 밝지 않다. 지난 9월 검찰이 기소 방침을 발표한 경영권 승계 의혹 재판이 또 다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의 복잡성으로 볼 때 1심만 2년 이상 걸릴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4년 끈 재판 끝나면 또 '경영권 승계 의혹' 재판 '첩첩산중'
법조계에 따르면 삼성 관련 재판은 위에서 언급한 국정농단 뇌물 공여 혐의와 경영권 승계 목적의 시세조종·배임 혐의 재판 외에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 항소심 △에버랜드 노조와해 사건 항소심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행정소송(피고 증선위) △삼성바이오 증거인멸 항소심 △삼성물산 합병 주식매수청구권 가격 소송(민사)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이다.



이중 이제 막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경영권 승계 의혹 재판이 삼성 입장에선 가장 큰 부담이다. 검찰 기소의 적절성을 떠나 수사 속도가 워낙 더뎌 기업 경영의 발목을 계속 잡고 있어서다. 검찰이 기소하기까지 2년이 걸렸는데, 이 과정에서 압수수색 30여차례, 임직원 소환조사는 수백차례에 달했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에도 검찰은 두 달을 끌다 기소를 결정했다.

재판은 이보다 더 장기전이 예상된다. 삼성 임직원 수십여명의 증인신문이 기다리고 있고, 회계학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일 정도로 쟁점 공방이 치열해 재판부가 심리하고 판단하는 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릴 전망이다. 지난 9월 검찰의 기소 결정 직후 "삼성의 향후 5년이 발목 잡혔다"는 목소리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경영에 지나친 형사 개입, 재판·소송 '남발'…기업 존중 필요도
대법원 /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대법원 /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법조계는 삼성이 겪는 사법 리스크가 한국 기업들의 고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고 본다. 회사 경영에 대한 재량권 침해, 기업에 대한 처벌조항 남용, 경영권을 뒤흔들 정도의 상속세 등이 선진국과 다른 한국 법조계의 고질적 문제로 꼽힌다. 이는 기업인의 자율성과 창의성 위축으로 이어진다.

특히 '경영판단의 원칙'이 인정되지 않는 풍토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기업인이 기업 이익을 위해 판단했다면 예측이 빗나가 손해가 발생했더라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미국 판례에선 이를 인정하고, 독일 주식법에는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한국 상법에서 찾아볼 수 없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한국은 민사로 해결할 것을 형사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인 게 배임죄"라며 "기업에 대한 처벌 조항은 예방을 목적으로 한다고 보기엔 너무 과도하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은 경영판단의 원칙을 존중하는데 한국 법원은 이사회의 경영 판단을 자꾸 들춰보고, 잘잘못을 판단하니 자연스럽게 재판과 소송이 늘어난다"고 밝혔다. 사법 불신이 강해 소송 시 재판이 장기화되는 것도 문제다. 일본은 1심에서 재판이 끝나는 경우도 많다.

경제계 한 관계자는 "국회에서 기업을 응징하려는 포퓰리즘 법률을 발의하고, 검찰은 별건 수사로 재판을 늘리는 행태를 벌이고 있다"며 "사회 전체가 기업 활동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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