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재구성] 신생아 매장 母 선처한 재판장 "비수 꽂지 마라"

뉴스1 제공 2020.12.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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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잠자리가 화근…중절수술 때 놓쳐 낙태약 복용
법원 "사회가 낳은 피해자"…1심 실형→2심 집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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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우리 재판부가 고민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어쩌면 사회가 낳은 피해자일 수 있단 생각에…"

지난 2일 영아살해 및 사체유기 혐의로 기소된 A씨(21·여)에 대한 항소심을 심리해 온 대전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윤성묵)는 판결 선고를 앞두고 고심을 거듭했다.

예정된 판결 선고 시간이었던 오후 2시를 좀 넘긴 시간. 재판장은 A씨를 호명해 법정에 세워두고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



침묵 끝에 재판장은 "아버지가 법정에 오셨냐"고 물었고, A씨는 대답과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방청석에 앉아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A씨의 아버지에게 재판장은 "어떤 사건으로 따님이 재판을 받는지 알고 계시냐"고 묻고는 판결 선고를 약 1시간 미루기로 했다.

A씨는 지난 1월 29일 경기 부천시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임신 약 6개월 만에 변기에 앉아 낳은 아기를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해 6월 부천의 한 술집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 가진 단 한 번의 잠자리가 화근이었다. 지난 1월에서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됐고, 뒤늦게 산부인과를 찾아 중절 수술을 받으려 했으나 불가능하다는 답을 들었다.

아이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제 막 성인이 된 A씨에게 엄마가 된다는 사실은 두렵기만 했다. 경제적 능력도, 기를 자신도 없었던 A씨가 첫째 아이를 입양 보냈던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A씨는 끝내 인터넷에서 불법 낙태약을 구매해 지난 1월 23일부터 약 1주일을 꾸준히 복용했다. 약을 먹어오던 29일 오후 1시께 복통을 느꼈고, 집 화장실 변기 위에서 아기를 출산했다.


뱃속에서 숨이 끊어졌다면 죄책감을 덜 수 있었을까. 아기는 살아있는 상태로 세상 밖에 나왔다. 당황한 A씨는 아기를 변기에서 꺼낸 뒤 낙태약 판매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판매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는 "아기를 다시 변기에 넣어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A씨는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실행에 옮겼고, 아기는 결국 변기 속에 잠겨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A씨는 숨진 아기를 꺼내 비닐봉지에 넣은 뒤, 신발 상자에 넣고는 흙을 채워 화장실 구석에 뒀다. 이후 판매자와의 끔찍한 상담이 이어졌다. "산에 묻는 방법도 있다"는 판매자의 말에 아기 시신이 담긴 비닐봉지를 신발 상자에 넣어 다음 날인 30일 현관 계단 아래 땅 속에 묻었다.

1심을 맡은 대전지법 형사4단독 이헌숙 판사는 A씨의 범행에 대해 실형 선고가 합당하다고 판단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A씨의 범행에 판매자의 지시가 크게 개입된 것으로 보이지만, 친모 스스로 갓난아기를 살해했다는 점은 죄질이 나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A씨를 한 번 선처하겠다며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면서, 사회봉사 80시간과 아동관련기관 취업제한 5년을 명령했다.

이 사건 판결에 고민이 깊었던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지낸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껏 어떤 고생을 해왔는지 알고 있느냐"며 방청석에 있던 A씨의 아버지를 다그쳤다.

이어 "비록 A씨가 어리지만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나이고, 숨진 아기는 소중한 생명"이라면서도 "죄가 무겁다고 해도, A씨가 이 사회 피해자일 수 있단 생각이 든다. 실형의 선고가 당연하나 이번 한 번만 선처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아버지가 지금부터라도 A씨를 잘 돌보겠다고 다짐하고 있고,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길 바란다"며 "선처한 재판부의 결정이 부끄럽지 않게 살아달라. 그렇지 않으면 재판장에게 비수를 꽂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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