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광의 디지털프리즘]통신사라 부르지 말라는 통신사들

머니투데이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2020.12.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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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통신사(통신사업자)들의 탈(脫)통신 행보가 거침없다. SK텔레콤은 이달 티맵모빌리티를 분사하기로 한 데 이어 자회사 SK인포섹과 AD캡스를 합병키로 했다. 각각 모빌리티와 보안 분야에서 기업가치 4조~5조원 규모 회사로 키우겠다는 야심에서다. 우버,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들과도 합작사 설립을 추진 중이다. AI(인공지능) 반도체까지 내놨다. 그야말로 광폭행보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4년 전 취임일성으로 “통신기업을 넘어 글로벌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고 이후 탈통신 사업에 공격적인 드라이브를 걸었다.

 KT도 구현모 대표 취임 후 디지털플랫폼 기업으로 도약을 선언했다. 현대중공업과 GS리테일 등 굵직한 기업들을 우군으로 확보했다. 구 대표는 “2025년까지 비통신 분야 매출을 2배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내친김에 이제는 통신사 브랜드마저 버릴 태세다. 10년 전 “빨랫줄 장사(통신)만으론 살아남을 수 없다”며 회사명에서 ‘텔레콤’을 뗀 LG유플러스에 이어 SK텔레콤도 사명을 바꾸기로 했다.



# 통신은 국내 ICT산업을 대표하는 업종이다. 한때 ‘황금알’ 사업으로 통했다. 정부 인가와 대규모 투자가 전제돼야 하지만 사업에 진출하기만 하면 고수익이 보장됐다. 지금은 마진이 예년 같지 않다지만 그래도 매년 쏠쏠한 이익을 낸다.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은 ‘꿈의 직장’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통신사 CEO(최고경영자)들은 왜 ‘텔레콤’ 간판을 애써 떼려 할까. 통신사업만으론 더이상 미래 성장가치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통신시장은 포화상태다. 이동통신 가입자 수(7000만명)가 전체 인구 수(5178만명)를 넘어선 지 오래다. 카카오톡이 등장한 후 범람하는 무료 모바일 서비스가 통신사들의 잠재 수익구조를 위협한다. 여러 차례 통신비 인하를 단행했지만 “비싸다”는 아우성이 그치지 않는다. 통신요금 인하는 선거철 단골공약이 됐다. 통신으로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다. 증권시장에서도 이런 사정을 잘 안다. 코로나19(COVID-19) 비대면사회 여파로 다른 디지털기업들의 주가가 치솟을 때 통신3사의 주가는 제자리걸음을 했다. 통신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탈통신”을 외친 이유다.

#탈통신 행보는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SK텔레콤이 라이코스코리아(2002년) 싸이월드(2003년) 엠파스(2006년)를, KT가 금호렌터카(2010년) 스카이라이프(2010년) BC카드(2011년)를 잇따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오래전부터 통신업계의 절박한 고민거리였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통신사들의 비통신 매출은 아직 3분의1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싸이월드·금호렌터카 등 인수타이밍은 적절했지만 제대로 시너지를 내보지 못한 채 아쉽게 철수한 사례도 있다. 싸이월드는 SK계열에 편입된 뒤 한때 3200만 이용자를 갖춘 국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반짝 영광’을 누렸지만 모바일 전환에 제때 대응하지 못해 몰락했다.



 문제는 통신 대기업 굴레를 벗지 못한 경영구조와 마인드였다. 과감한 혁신이 절실했던 시기에 모기업 눈치 보기에 급급해 PC 플랫폼과 도토리 수익모델에 안주한 탓이다. KT도 금호렌터카를 인수한 지 5년 만에 외부에 되팔았다. 3년마다 CEO가 교체되는 KT 지배구조 탓이다. 시세차익은 얻었지만 모빌리티 시장을 주도할 기회를 놓쳤다. 새로운 마인드로 접근했다면 아마도 페이스북을 능가하는 ‘SK판 글로벌 싸이월드’와 카카오를 넘어서는 ‘KT판 렌터카 모빌리티 서비스’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현재 진행되는 탈통신사업들은 과거와 다를까. 통신3사는 “넷플릭스 시대에 대항하겠다”며 지난해부터 유료방송사들을 앞다퉈 사들였다. 하지만 산업재편 효과로 기대됐던 콘텐츠 투자경쟁 대신 가입자를 뺏기 위한 ‘현금 뿌리기’ 경쟁이 시장에 난무한다. 당장 눈앞의 가입자 성과를 중시하는 습성을 떨쳐내지 못한 탓에 통신시장에서 벌인 소모전이 그대로 재연된다. 통신사들이 탈통신을 위해 버려야 할 것은 통신사 간판이 아니라 통신 대기업 마인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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