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권력 > 정치권력'이라는 특검...그럴까?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0.11.2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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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12월 21일 오전 인천 송도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기공식에 참석, 발파버튼을 누른 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뭔가 얘기를 하고 이 부회장은 허리를 굽혀 얘기를 듣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12월 21일 오전 인천 송도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기공식에 참석, 발파버튼을 누른 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뭔가 얘기를 하고 이 부회장은 허리를 굽혀 얘기를 듣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시대변화에 따라 경제적 권력이 우월적이거나 최소한 대등한 지위를 갖게 되었으며, 삼성은 국내 1위 재벌 기업을 넘어 초일류 재벌기업으로 성장해 최고 지위를 갖게 됐다."

지난 23일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5명의 뇌물공여 등 혐의에 대한 파기환송심 6차 공판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강백신 부장검사(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형사1부)가 한 양형 변론 중 일부다.



능동적 뇌물 vs 수동적 뇌물 다툼
그는 "최고 권력인 대통령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지위에 있었다"며 "재계 서열 1위인 이재용과 대통령 사이는 일방의 강요에 의해 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상호 윈윈의 대등한 지위에 있음이 명백히 확인된다"고 주장했다.

특검이 기업인의 지위를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 동일한 반열에 올려 놓으려고 한 이유는 파기환송심의 특성상 뇌물죄 자체의 유무죄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뇌물죄 양형의 경중을 다투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삼성 측은 뇌물을 인정하지 않지만, 이미 대법원에서 뇌물죄를 확정하고 양형을 다시 들여다보도록 한 만큼 뇌물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능동적인 역할을 했느냐, 수동적으로 강요에 응했느냐에 따라 감경의 여지가 달라진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1987년 11월 26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사진 왼쪽에서 두번째)을 비롯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고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이 타계한 지 1주일만에 이건희 삼성 회장이 참석해 전 전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사진제공=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1987년 11월 26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사진 왼쪽에서 두번째)을 비롯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고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이 타계한 지 1주일만에 이건희 삼성 회장이 참석해 전 전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사진제공=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특검 측은 이를 의식한 듯 이날 과거 고 이병철 삼성 창업자와 최근에 고인이 된 이건희 삼성 회장의 과거 사건까지 인용해 이 부회장의 뇌물 사건이 '수동적 뇌물'이 아닌 '능동적 뇌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시간을 쏟았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사례까지 동원
이 부회장의 재판에 특검이 이미 망인이 된 조부와 부친의 과거 정치자금 사건까지 끌어들인 것은 과거와 비교를 위한 것 외에도 부수적으로 '삼성가'의 안 좋은 이미지를 각인시키려는 효과를 고려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법조계에서는 나온다.

특검 측은 양형변론에서 고 이병철 회장이 1983년 12월부터 1987년 10월까지 약 4년에 걸쳐 정치자금 명목으로 220억원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제공한 뇌물공여사건를 소개했다.

이어 고 이건희 회장이 1990년 12월 하순부터 1992년 8월하순까지 약 2년에 걸쳐 정치자금 명목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100억원의 뇌물을 공여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뇌물 공여 명목이 삼성 그룹이 다른 경쟁 기업보다 우대를 받거나 최소한 불이익을 안받게 해달라는 취지였다며, 당시는 정치권력이 자본권력을 압도하는 시기라고 평했다. 이 시기는 수동적 뇌물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1996년 8월 9일 이건희 신임 IOC위원(삼성 회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접견하고 있다. 이보다 한 해 전 이건희 회장은 베이징 특파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발언으로 정권에 미움을 받으면서 문민정부로부터 거의 전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받는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사진제공=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1996년 8월 9일 이건희 신임 IOC위원(삼성 회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접견하고 있다. 이보다 한 해 전 이건희 회장은 베이징 특파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발언으로 정권에 미움을 받으면서 문민정부로부터 거의 전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받는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사진제공=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특검은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 시절 이건희 회장의 '베이징 발언(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 발언)과 2005년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라는 평가를 인용해 시대상에 따라 정치권력의 우월적 지위가 경제적 권력의 우월적 지위로 넘어가는 것이 확인된다고 주장했다.

기업의 정치공포
그 결과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이익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뇌물을 제공했다는 게 특검 측의 주장이다.

'갑과 을이 바뀔 때도 있다'는 특검의 주장은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갈취하던 정치권의 오랜 악습과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된 기업인들에 대한 조사와 압박의 트라우마를 간과한 것이다.

광복과 한국전쟁·5.16 군사정변, 신군부와 이후 정부를 거치면서 정치권력의 경제권력 지배력은 공고했고 그 이후로 한국사회에서 이 체제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5.16군사정변 때 기업인들을 잡아들여 재산을 사회에 헌납토록 하고, 신군부는 말을 듣지 않는 기업은 공중분해시키는 등 공포를 심었다. 이는 민주 정부 들어서도 정치자금 사건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오른쪽)이 1962년 12월 22일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중앙)으로부터 5.16장학금 1000만원을 기증받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사진제공=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오른쪽)이 1962년 12월 22일 이병철 삼성물산 사장(중앙)으로부터 5.16장학금 1000만원을 기증받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사진제공=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특히 신군부의 새마을헌금 요구를 거절했던 국제그룹이 1주일만에 공중분해되는 것을 본 기업의 정치에 대한 트라우마는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또 IMF와 글로벌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사라지고, 그 과정에서 정치권에 대한 경제계의 두려움은 더 심해졌다.

말 한마디에 그룹 전체 흔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3월 이건희 회장은 전경련 행사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만난 기자들이 "정부의 경제 성적이 어느 정도로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낙제는 아닌 것 같다"는 평가를 했다가 청와대와 여당으로부터 치도곤을 당하고, 세무조사 등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했다는 이유로 설화를 겪은 것이다.

앞서 1995년 베이징발언으로 거의 전 삼성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받았던 삼성은 이같은 후폭풍을 우려해 이 회장이 해당발언을 출국길에 수정하는 등의 헤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이제는 고인이 된 구본무 LG 그룹 회장은 지난 2016년 12월 16일 국회 청문회에 당시 정치권의 금전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기업의 현실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는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당시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같은 준조세를 내겠느냐"는 질문에 "한국 현실에서 기업은 돈을 달라면 줄 수밖에 없다"며 "(준조세를) 법으로 아예 막아달라"고 당부했었다.

앞서 1988년 5공 일해재단 비리 청문회 당시 노무현 민주당 의원이 "왜 돈을 냈느냐"는 질문에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달라니까 줬다"며 "또 달라면 줄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의 데자뷔였다.

2016년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개명 최서원)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하는 재계 총수들. 앞줄 왼쪽부터 고 구본무 LG 회장, 허창수 GS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뒷줄 왼쪽 먼쪽 첫번째 고 조양호 한진 회장, 손경식 CJ 회장(뒷쪽 신동빈 롯데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2016년 12월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개명 최서원)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하는 재계 총수들. 앞줄 왼쪽부터 고 구본무 LG 회장, 허창수 GS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뒷줄 왼쪽 먼쪽 첫번째 고 조양호 한진 회장, 손경식 CJ 회장(뒷쪽 신동빈 롯데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 회장은 이런 법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지난 2018년 향년 73세로 영면했다. 또 청문회에서 여러 억울함을 호소했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지난해 향년 70세를 일기로 별세해 정치권이 바뀌는 것은 보지 못했고, 여전히 정치권력은 경제권력을 억누르고 있다.

정치권력의 위상 한번도 변한 적 없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15년 7월 2차 면담에서 영문도 모르고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승마협회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야단을 맞은 기억을 그는 당시 이렇게 진술했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에게 야단을 맞은 것 빼고는 살면서 누구에게 혼나본 기억이 없다"며 "여성 분에게 싫은 소리를 들은 것도 당시가 처음이라 매우 당황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권력의 위치가 어떻게 돼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진술이다.

검찰도 현재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다양한 상황만 봐도 정치권력이 위인지, 경제권력이 위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정치권의 검찰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 기업인들을 줄줄이 소환해 구속시키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누가 갑인지는 검찰 스스로 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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