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 청구 간소화 반대하는 의료계, 겉으론 정보유출...속내는?

머니투데이 김근희 기자, 전혜영 기자, 박종진 기자 2020.11.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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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폰으로 다 되는 시대, 실손은 왜? (下)

편집자주 IT(정보기술) 강국 대한민국에서 스마트폰으로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다. 실손의료보험 보험금을 청구다. 아직도 일일이 종이서류를 챙겨야 한다. 3500만명이 가입한 실손보험은 왜 보험금 청구를 스마트폰으로 못 하는 걸까.

보험사 배불리는 일? 의료계 반대 진짜 이유는
의료계 "심평원 개입 부당…불필요한 행정부담 지게돼"

(왼쪽부터)김대하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 최대집 의협 회장, 송명제 의협 대외협력이사(왼쪽부터)김대하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 최대집 의협 회장, 송명제 의협 대외협력이사


의료계가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청구를 진료 병원에서 곧바로 진행하는 법 개정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보험 계약 당사자가 아닌 의료기관이 불필요한 업무부담을 지게 되고, 개인정보 유출 위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건강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전송망을 통해 진료기록을 전송할 경우 비급여 가격 통제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보험소비자가 보험료 관련 자료를 의료기관에 요청하면 의료기관이 직접 보험사에 자료를 전산으로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 실손보험 소비자는 진료를 받은 후 병원에 자료를 요청하고, 이를 다시 팩스나 우편으로 보험사에 보내야 했다.

앞서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각각 1건씩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을 발의하자 의료계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서울시의사회, 정형외과의사회는 잇따라 반대 성명서를 냈고,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도 성일종·윤재옥 국민의힘 의원과 만나 반대의사를 밝혔다.



의료계는 우선 민간보험 영역인 실손보험 청구를 계약 당사자도 아닌 의료기관이 맡아서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의료기관이 민간보험이 요구하는 대로 서류를 전송해야 하는 등 불필요한 행정업무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사와 소비자가 법적 분쟁을 벌일 경우 의료기관이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며 걱정했다.

정형외과의사회 측은 “환자 편의를 위한다면 보험사가 불필요한 서류작업을 간소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보험업법이 통과돼 의료기관이 청구를 대행하게 되면 이를 이용해 (보험사들이) 소송을 남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료계는 손실보험 청구 간소화 과정에서 심평원이 개입하는 것 역시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발의된 법안 중 윤창현 의원안과 고용진 의원안은 의료기관이 심평원 전산망을 통해 보험사로 서류를 전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료계는 심평원이 실손보험 데이터를 들여다보거나 건강보험 대상이 아닌 비급여 의료행위까지 심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의료 수가를 조정하는 심평원이 진료비 등의 데이터를 확보한 후 비급여 진료가격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대하 의협 대변인은 “중계 역할을 한다지만 심평원이 진료 내용에 관여하고, 심사까지 하게 된다면 또다른 문제가 발생한다”며 “심평원이 2013년 자동차보험심사업무를 맡게 되면서 생겼던 부작용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의료계는 당초 보험사와 공제조합이 맡았던 자동차보험심사 업무가 2013년 심평원에 이관된 후 진료비가 과도하게 삭감되는 일이 발생했고, 자동차 사고 환자들은 검사를 받고 싶어도 제한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과 더불어 어떤 정보가 보험사에 들어가는지 환자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김 대변인은 “보험사가 요구한 자료를 병원이 직접 넘겨줄 경우 정작 자료의 주인인 환자는 어떤 정보가 가는지 모른다”며 “보험사들이 환자의 다양한 정보를 취득하기 쉬워질 것”이라고 했다.

김근희 기자

실손청구 간소화, 보험사만 이득? "의료기관도 윈윈"
실손 청구 간소화 반대하는 의료계, 겉으론 정보유출...속내는?
의료업계는 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 보험금 청구가 간소화하면 보험회사만 이득이 되는 일이라고 반대한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그동안 번거롭다는 이유로 안 하던 청구까지 이뤄져 낙전수입이 줄기 때문에 오히려 손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구 전산화를 추진하는 건 업무 효율을 위해서다.

의료계는 실손보험이 민간보험인데 의료기관이 환자 대신 보험회사에 서류 전송을 해주는 것은 일종의 업무 대행이기 때문에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가입자와 보험회사 간 사적 계약인데 당사자가 아닌 의료기관이 법적 의무를 질 수 없다는 것이다.

보험업계는 반박한다. 조용운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의료법 상으로도 환자가 요청하면 요양기관은 환자의 진료기록 사본을 환자가 지정하는 곳으로 즉시 전송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의료기관에 새로운 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게다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방안은 의료기관이 환자 대신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진료를 받은 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의료기관의 자료를 선택해 보험사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의료기관이 환자가 전자 진료기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면 시스템을 통해 환자가 직접 청구하는 것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이뤄지면 서류발급 업무가 전산으로 대체되고 청구 시스템 구축 비용은 보험사가 댈 것이므로 의료기관은 오히려 부담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환자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제공을 원하지 않는 정보까지 보험사로 무분별하게 넘어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본다. 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고 것이다. 그러나 보험업계는 현재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전송하는 방식과 같이 전송하는 문서를 암호화하면 개인정보 누출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실손보험금 지급을 위해 필요한 기초자료는 △진료비 영수증 △진료비 세부내역서 △처방전에 기재된 질병분류번호 등이다. 이는 서류로 제출할 때나 전산으로 제출할 때나 같다. 보험업계는 의료계가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안전장치를 요구할 경우 전산화 대상 정보를 진료비 영수증, 진료비 세부내역서, 처방전상의 질병분류번호로 한정해 법률안에 명기하는 방안도 검토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의료계는 보험사들이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 시스템을 보험금 지급 거부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청구 절차를 간소화한다고 해서 보험금 지급 거부 수단으로 악용하는 할 근거가 없다고 항변한다. 필요하다면 일종의 보험중계센터를 신설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각 보험사와 의료기관을 연결하는 보험중계센터를 만들고 이곳을 경유해 의료기관이 증빙서류를 보험사에 직접 전송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진료비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진료정보가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의료계의 우려도 불식할 수 있다고 본다.

조 위원은 “심평원의 전산망을 이용하고 업무기능은 심사나 평가의 기능이 없는 신설 보험중계센터가 담당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의료기관의 신설이나 폐업 시에도 즉시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혜영 기자

실손보험 '자동 청구법', 올해도 어려울듯
[the300]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등에 대한 종합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2020.10.23/뉴스1(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등에 대한 종합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2020.10.23/뉴스1
제20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폐기됐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법이 제21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된다.

소비자 편의를 높인다는데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 통과 가능성이 높지만 법안처리에 시간은 걸릴 전망이다.

12일 국회 의안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은 제21대 국회에서 3건 발의됐다.

주요 내용은 △보험회사에 실손의료보험의 보험금 청구 전산시스템을 구축·운영하도록 하거나 △이를 전문중계기관에게 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 △보험계약자·피보험자 등이 요양기관에게 의료비 증명서류를 전자적 형태로 보험회사에 전송토록 요청할 수 있게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제20대 국회에 이어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월에 일찌감치 법안을 재차 대표 발의했다.

곧이어 같은 달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도 법안을 냈다.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IT(정보기술)를 활용해 비효율을 없앤다는 측면에서 여야 모두 법안 취지에 공감은 하는 셈이다.

윤 의원은 "종이서류 기반의 보험금 청구로 병원이나 약국에서도 관련서류를 발급해 줘야 하는 행정부담이 발생하고 있으며 보험회사도 연간 수천만건에 달하는 보험금 청구서류를 수기로 입력·심사할 수밖에 없어 보험금 지급업무에 과도한 비용이 발생하는 등 사회적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소비자가 편리해지는 건 물론 보험사도 인건비 절감, 피보험자 진료 데이터베이스 활용 등 혜택을 누린다.

그러나 의료계 반발은 여전한 숙제다. 당장 증빙서류를 보험회사에 보내줘야 하는 일이 추가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등에 위탁하더라도 실질적으로 병원의 핵심 수익인 비급여 진료항목 등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게 부담이다.

이 때문에 지난달 발의된 고용진 민주당 의원의 개정안에는 이 같은 우려가 반영됐다.

고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개정안의 내용처럼 중계기관을 심평원에 위탁하게 되면 의료계는 심평원이 정보를 집적하거나 향후 비급여 의료비용을 심사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따라서 심평원이 서류전송 업무 외에 다른 목적으로 정보를 사용 또는 보관할 수 없도록 하고 위탁업무와 관련해 의료계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개정안에 추가했다"고 밝혔다.

의료계의 반대와 별개로 법 자체가 논리적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소관 상임위인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실손보험은 기본적으로 보험계약자와 보험회사 간에 계약인데 제3자에 해당하는 병원에 사실상 증빙서류 제출의 의무를 떠안기는 게 정당한지에 대한 지적이 적잖다"고 밝혔다.

법안 처리에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야 간에 첨예한 쟁점이 있는 법안은 아니지만 우선 처리 대상도 아니다.

이달 19일부터 시작되는 이번 정기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논의 대상 안건으로 올라갈지도 미지수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처리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다만 통과 전망 자체가 어두운 것은 아니다. 정무위 소속 국민의힘 관계자는 "3500만명이 가입된 실손보험의 편의성 문제에 언제까지 국회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박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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