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재판부 "공소사실 어디부턴지 의문" 검찰, 시작부터 난관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20.10.2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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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L] 이재용 부회장 '경영권승계 의혹' 사건 첫 공판준비기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기범 기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이기범 기자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승계 의혹 재판을 맡은 재판부가 "공소사실이 어디부터 시작인지 의문"이라며 검찰 공소장이 명확히 작성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재판에서 처음부터 난관을 맞게된 것이다.

변호인단은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임정엽·권성수·김선희) 심리로 진행된 이 부회장의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공소장 132쪽에 많은 사실관계 행위들이 있는데 어떤 게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보는 것인지 특정이 안 돼있다"며 정확히 이 부회장의 어떤 행동이 범죄라고 보는 것인지 명확히 해달라고 검찰에 요청했다.



검찰은 삼성 에버랜드 시절부터 그룹이 거쳐온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나열하고, 이 부회장이 미래전략실(미전실)과 그룹 사장단을 공모해 불법행위를 지시했다는 식으로 공소장을 작성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지배력을 안정화하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제일모직-옛 삼성물산 합병이 추진됐고, 배후에는 이 부회장과 미전실이 있었다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합병 추진, 성사, 사후 대처까지 쭉 연결해 불법행위를 부분별로 나누고 이 부회장을 피의자로 지목했다.



변호인단은 이런 식의 공소장 작성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다. 이 부회장의 어떤 행동이 법 위반이 된다는 것인지 공소장에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재판부도 "공소사실이 어디부터 시작되는지 의문"이라며 적용 법조도 명확히 기재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 듯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변호인단은 공소사실에 적힌 혐의에 대해서도 "통상적 경영활동인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의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가 범죄라는 검찰의 시각에 전혀 동의할 수 없고 공소사실도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날 검찰과 변호인단은 재판 계획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검찰은 최대한 빨리 준비절차를 마치고 주 2회씩 공판 절차를 시작하자는 의견을 냈다. 변호인단은 이제 겨우 수사기록 복사를 마쳤다며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맞섰다.


검찰이 수사 단계에서부터 변호하면서 기록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느냐고 따지자 변호인단은 "1부만 복사됐고 다른 변호인들과 공유하지 못했다"며 "기록이 19만 페이지에 달해 (검토에) 짧게 잡아도 3개월이 필요하다"고 했다. 3개월도 하루에 2000쪽 넘게 검토해야 빠듯하게 맞출 수 있는 일정이다.

재판부는 변호인단 의견을 받아들여 내년 1월14일 오전 10시에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열기로 했다. 오전은 검찰이 공소사실 요지를 정리해 프레젠테이션하고, 오후는 변호인단의 의견 진술이 있을 예정이다.

이날 검찰은 김영철 부부장검사 등 10명이 법정에 나왔다. 김 부부장검사는 국정농단 특검 때부터 이복현 부장검사와 함께 삼성 수사를 맡았던 인물이다. 이 부장검사는 이날 나오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판사 출신 김앤장법률사무소 안정호 변호사와 법무법인 태평양 송우철 변호사 등 16명이 출석했다. 이 부회장 등 피고인들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 출석 의무가 없다.

한편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할 목적으로 옛 삼성물산 주가를 억지로 끌어내리고 제일모직 가치는 부풀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골드만삭스, 워렌 버핏 등 해외세력까지 끌어들이려 했다는 내용을 공소장에 적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도 합병과 연관돼 있다.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에피스와 관련해 불리한 내용을 숨겨 제일모직 주가가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했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제일모직의 자회사였기 때문에 두 회사의 주가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았다.

삼성은 매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합병비율은 법이 정해준 대로 계산했을 뿐인데 왜 죄가 되느냐는 것이다. 상장사 간 합병 방법을 규정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5조의5 제1항,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이 합병을 결의한 2015년 5월26일 당시시장가격에 따라 계산하면 약 1:0.35의 합병비율이 산출된다. 기업가치를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은 주가라는 것, 이렇게 숫자와 공식이 정해진 계산식에서 뭘 부풀리고 뺄 수 있느냐는 것이 삼성의 항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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