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처럼 타오르는 中 민족주의[광화문]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김명룡 특파원 2020.10.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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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약칭이다. 중화(中華)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미다.

중화사상은 '화이사상(華夷思想)'과 맥락이 비슷하다. 여기서 화는 한족이고 이(夷)는 이민족이다. 오래전 일이지만 중국은 우리나라도 당연하게 오랑캐로 여겼다.

전세계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아시아의 맹주였던 중국은 1842년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한 후 속절없이 몰락했다. 이후 일본과의 전쟁에서도 패하면서 중국의 수난시대가 이어졌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에는 이데올로기 함정에 빠진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였다.



그랬던 중국에서 다시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한 애국주의를 빙자한 민족주의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바탕엔 G2(주요 2개국)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1978년 개혁·개방이후 40년 동안 중국은 최빈국에서 G2 국가로 성장했다. 중국 GDP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가 넘는다. 명실상부하게 유일 강대국 미국을 위협하는 유일한 국가다. 중국 경제 규모는 2030년이면 미국도 따라잡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있다.

중국에 정통한 이들은 시진핑(習近平) 시대에 들어 중화사상이 힘을 얻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시 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내세우고 있다.



시 주석은 2017년 19차 중국공산당 당대회 연설 서두에 "아편전쟁 이후 치욕스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반드시 사회주의의 위대한 승리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당 강화만이 중국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런데 2018년부터 미국은 중국에 대한 전방위 견제에 나선다. 신냉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과격한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의 공격 초기 당황한 중국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올들어 내수를 중심으로 한 쌍순환(雙循環·이중순환)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국내에서는 첨단기술 자립과 14억명 인구에 기반한 국내시장에 의존해 미국의 공세를 이겨내려는 '지구전'에 돌입한 것이다.


그런 중국도 미국이 어지간히 밉고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23일 열리는 항미원조(抗美援朝·6·25전쟁을 부르는 중국식 용어)전쟁 70주년 기념행사에 시 주석이 참석한다. 이날 행사에는 시진핑 주석이 중요 연설을 하며 중국 전역에 생중계된다.

중국 공산당 군대(중공군)은 1950년 10월19일 처음 압록강을 건너 10월25일 첫 전투를 치렀다. 중국은 6·25전쟁을 자신들이 '승리'를 거둔(승리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전쟁으로 선전해 오고 있다. 이를 기념해 만든 전시전에 이례적으로 시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포함한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 등 중국 최고지도부 전원이 총출동했다.

그런데 항미원조 전쟁에 대한 중국인들의 자부심은 엉뚱하게 방탄소년단(BTS)로 튀었다.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이다. 양국이 공유하는 고통의 역사와 수많은 희생을 언제나 기억할 것이다." 최근 한 시상식에서 BTS 멤버의 발언을 6·25 전쟁때 희생된 중국군인에 대한 모독이라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생각하는 6·25전쟁의 적군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항미원조 띄우기도 미국을 상대로 한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들보다 국력이 약한 한국에서 나온 발언을 문제삼고 있다.

6·25전쟁은 우리에게 가슴 아픈 과거다. 중국에게 승리의 역사(라고 강변하)지만 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던 우리에겐 뼈아픈 장면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중국 측의 배려는 없다.

특히 세계적으로 고립될 위치에 있는 중국에서 과도한 애국주의를 넘어 민족주의가 다시 확산하고 있다는 우려도 적잖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내재돼 있던 중화사상의 DNA가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라며 "중국의 국력이 유지되는 한 중화사상은 더 강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불만을 밖으로 돌리고 내부의 단결이 절실한 중국 입장에선 민족주의를 강화할 것이고, 중화사상도 더 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불과 수백년 전 중국은 우리나라를 동쪽 오랑캐(동이·東夷)라고 부르며 얕잡아 봤다.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이웃나라 중국의 민족주의가 우리에게 또 어떤 민폐를 끼칠지 몰라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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