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워치 '에임핵'은 왜 악성프로그램이 아닐까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20.10.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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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L][친절한 판례씨] FPS 게임 '오버워치' 에임핵 불법 판매한 30대 사건

오버워치 게임화면./ 사진=뉴스1오버워치 게임화면./ 사진=뉴스1


FPS(1인칭 사격게임)에서 이기고 싶어하는 게이머들이 흔히 쓰는 '꼼수'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자동으로 게임 내 움직임을 조작해주는 '에임핵'이다. 이 에임핵을 쓰면 총구가 상대방을 향해 자동 조준돼 사격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무조건 명중한다.

이 에임핵은 암암리에 유료로 팔리기도 한다. 정상적인 게이머들은 건전한 게임플레이를 해친다며 제대로 규제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에임핵을 대거 유통한 30대가 재판에 넘겨져 관심을 모았다.



검찰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인기 FPS 게임 '오버워치'에서 작동하는 '에임핵'을 유통해 2억원 가까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A씨(30)를 기소했다. 법정에서 쟁점은 A씨가 판매한 에임핵이 정보통신망법 상 '악성프로그램'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정보통신망법 상 악성프로그램은 정보통신시스템, 데이터, 프로그램 등을 훼손·멸실·변경·위조하거나 그 운용을 방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리킨다.

1심은 이 에임핵을 악성프로그램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은 "좀 더 쉽게 상대방을 저격할 수 있게 되기는 하나 게임 자체의 승패를 뒤집기에 불가능한 정도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면서 "정보통신시스템이 예정하고 있는 기능의 운용을 방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반면 2심은 악성프로그램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2심은 "개발자가 예정하지 않은 프로그램을 통해 게임에 중요한 요소를 자동수행으로 대체하도록 하는 것은 운용을 전반적으로 해치는 것"이라며 "다른 이용자들에게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하고, 게임에 대한 흥미와 경쟁심을 잃게 만든다"고 했다. 이 지점에서 1·2심 판단은 엇갈렸지만 형량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같았다.

2심 판단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에임핵을 배포하는 행위는 불법이라고 판단하면서도 이 프로그램을 정보통신망법이 규제하는 악성프로그램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프로그램은 이용자 본인의 의사에 따라 해당 이용자의 컴퓨터에 설치돼 그 컴퓨터 내에서만 실행된다"라며 "정보통신시스템이나 게임 데이터 또는 프로그램 자체를 변경시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 프로그램은 정보통신시스템 등이 예정한 대로 작동하는 범위 내에서 상대방 캐릭터에 대한 조준과 사격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줄 뿐"이라며 "프로그램을 실행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일반 이용자가 직접 상대를 조준해 사격하는 것과 동일한 경로와 방법으로 작업이 수행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프로그램이 서버를 점거해 다른 이용자들의 서버 접속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접속을 어렵게 만들고, 대량의 네트워크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등으로 정보통신시스템 등의 기능 수행에 장애를 일으킨다고 볼 증거도 없다"고 언급했다.

다만 "이 사건 프로그램이 정보통신망법에서 정한 악성 프로그램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온라인 게임과 관련해 일명 '핵'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등의 행위가 형사상 처벌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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