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언유착' 피해자의 '권언유착' 증언…"MBC 보도보면 알게 된다더라"

머니투데이 김태은 기자 2020.10.0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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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꼽히는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2020.07.17.  kkssmm99@newsis.com[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꼽히는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2020.07.17. [email protected]


'검언유착' 의혹 사건의 피해자인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 대표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로부터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리 혐의 폭로를 강요협박 받은 과정의 전모를 증언했다. 이 전 대표의 증언은 그러나 그동안 이 전 기자가 한동훈 검사장의 사주를 받아 유 이사장의 비리를 캤다는 MBC 보도와 이를 추종한 검찰 측 논리를 오히려 깨트린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MBC 보도가 준비된 후에야 검찰 고위 관계자가 한 검사장이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고 밝혀 한 검사장의 강요미수의 혐의의 선후관계가 바뀌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보자X' 지모씨가 이 전 대표에게 알리지 않고 MBC와 '단독 플레이'를 했다는 점도 이 전 대표의 증언으로 확인됐다. '검언유착'이 아닌 '권언유착'이라는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 측의 주장에 무게를 싣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검언유착' 프레임 깨졌다"…강요미수 부정하는 증언 속속
이 전 기자 법률대리인인 주진우 변호사는 7일 이 전 기자의 보석을 신청하면서 "이 전 대표의 어제 증언으로 '검언유착' 프레임이 깨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이 전 기자와 '제보자X' 지모씨가 만나거나 전화한 내용들은 이 전 대표에게 전달조차 되지 않았고, 범행 종료 이후인 3월 25일 경에서야 이 전 대표는 '한동훈 검사장'의 이름을 처음 전해들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이 전 기자가 검찰 수사 내용을 내밀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이는 한 검사장의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란 '검언유착' 주장과는 상당히 어긋난다는 점에서다.



이 전 대표는 전날 재판 증언에서 자신의 변호사인 이지형 변호사에게 이 전 기자가 편지를 보낸 사실을 알린 이후 지씨가 이 전 기자를 만나 한 검사자의 연관성을 캐묻는 과정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가 "언론보도를 보면 곧 아시게 될 거다. 엄청난 내용이 많을 거다"라며 MBC가 '검언유착' 의혹 보도를 준비 중이라고 얘기해줬고 그 밖에 이 전 기자가 지씨를 만나 이 전 대표를 통해 신라젠 취재를 하려했다는 내용에 대해선 "이 변호사가 전체적으로 말을 아꼈다"고 고백했다.

이 전 대표의 증언은 '검언유착' 의혹을 바탕으로 이 전 기자를 기소하고 한 검사장을 피의자로 수사하고 있는 검찰의 전체적인 수사 구조를 깨트리게 된다.

(과천=뉴스1) 안은나 기자 = 부산고등검찰청 차장에 발령이 난 한동훈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 10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보임 신고식을 마친 후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2020.1.10/뉴스1(과천=뉴스1) 안은나 기자 = 부산고등검찰청 차장에 발령이 난 한동훈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이 10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보임 신고식을 마친 후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2020.1.10/뉴스1


이철, MBC 보도 준비 마친 후 한동훈 이름 알게 돼


우선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의 강요미수죄 성립에 필요한 직접적인 협박 여부에 구멍이 뚫리게 됐다. 주 변호사는 "강요미수죄가 성립되려면 피해자에게 협박이 직접 전달돼야 하는데 이 전 기자가 지씨를 만나 한 검사장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협박을 했다는 논리는 깨지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요미수죄 성립 여부엔 피해자가 구체적인 해악을 고지받고 실제 일어날 가능성에 공포심을 느꼈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이 전 기자가 지씨를 세 차례 만나 한 검사장 개입을 암시하며 유 이사장 비리를 캐려했다는 검찰 측 주장은 힘을 잃게 된 셈이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이 전 기자의 편지 내용에 대해서도 이 전 대표는 실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다며 공포심을 일으켰다는 반응과는 상당히 다른 증언을 했다. 이 전 대표는 이 전 기자로부터 처음 편지를 받고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무시했고 두 번째 편지부터는 검찰 수사 진행 과정과 더불어 이 전 기자가 검찰 수사를 동원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와 언론 제보를 논의한 것도 이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전 대표는 이 전 기자의 편지와 이를 협박으로 받아들인 인과 관계에 대해선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과거 검찰 수사를 받았던 경험에 비춰 다시 검찰 수사를 받게 될 경우를 가정해 두렵고 화가 났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놓았다. 이 전 기자와 검찰 고위 관계자 사이의 유착 관계를 판단한 근거도 상당히 빈약했다. 일반적으로 알 수 없는 수사 정보를 이 전 기자가 알고 있어 '검언유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이 전 대표의 주장이었는데 실제 이 전 기자가 편지를 통해 알린 수사 정보는 틀린 내용이 많았고 나머지도 이미 언론에 알려진 내용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변호인 측이 증언의 허점을 파고들자 이 전 대표는 "과거 검찰 수사에서 안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 전 기자가 의혹을 제기하는 그 자체만으로 공포감을 느꼈다"는 엉뚱한 답을 내놨다. 이에 대해 재판을 진행하던 판사마저 "이 전 기자의 편지 내용이 검찰로부터 제보받은 게 아니더라도 공포감을 느꼈다는 것이냐, 의혹을 제기한 것만으로 공포감을 느꼈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이 전 대표의 증언을 의아해하기도 했다.

(용인=뉴스1) 조태형 기자 =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관련 법무연수원 압수수색 과정에서 한동훈 검사장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의 담당 부장검사로부터 신체적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측은 한 검사장의 물리적 방해 행위 등으로 인해 오히려 담당 부장검사가 넘어져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사진은 29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압수수색을 한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의 모습. 2020.7.29/뉴스1(용인=뉴스1) 조태형 기자 =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관련 법무연수원 압수수색 과정에서 한동훈 검사장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의 담당 부장검사로부터 신체적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측은 한 검사장의 물리적 방해 행위 등으로 인해 오히려 담당 부장검사가 넘어져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사진은 29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압수수색을 한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의 모습. 2020.7.29/뉴스1
'검언유착'보다 '권언유착' 단서 드러나…'제보자X'는 증언 거부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 간 '검언유착'의 결정적 단서로 제시됐던 유 이사장을 타깃한 검찰 수사 동향 역시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 전 대표는 올초 서울남부지검 출정 조사에서 "유 이사장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을 받은 적 있느냐"는 질문에 "직접적인 질문은 받은 적 없다"고 답했다. MBC가 '검언유착' 의혹 보도에서 핵심 근거로 내세웠던 것 중 하나는 이 전 기자가 편지를 보낸 후 서울남부지검이 실제 유 이사장 등에 대한 현금 전달 여부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서울남부지검은 "범죄수익 은닉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송금 내역을 조사한 것이고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아 무혐의 처분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날 이 전 대표의 법정 진술은 당시 남부지검의 해명과 더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이 전 대표는 오히려 '검언유착'이 아닌 '권언유착'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언도 내놨다. 이 전 대표는 "지씨에게 정치권 인사 5명에 대한 송금장부가 있다는 내용을 확인해준 적이 있냐"고 묻자 "없다"라고 답했다. 지씨가 이 전 기자를 만나 여야 로비 장부가 있다면서 한 검사장의 보증을 요구한 게 이 전 대표와는 무관한 '단독 플레이'였다는 뜻이다.

법조계 역시 이 전 대표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이 전 대표는 이 전 기자의 편지나 지씨가 이 전 기자와 만나 한 검사장의 개입 여부를 전달받아 유 이사장 비리를 불도록 강요받았다는 '검언유착'의 전체적인 틀은 상당부분 무너졌다고 본다.

'검언유착' 수사 과정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이 전 기자가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을 뿐 아니라 검찰에 계류 중인 한 검사장의 혐의도 무너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향후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권언유착' 정황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날 여지도 있다. '권언유착' 의혹의 중심에 서있는 지씨는 증인 출석 통지서를 세 차례나 거부한 채 재판에 불출석했다. 이 전 기자 측은 지씨가 증언대에 설 경우 그동안의 '검언유착' 의혹 주장이 거짓말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우려해 지씨가 증언을 피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지씨는 재판 전날인 5일 저녁 '검언유착' 의혹을 보도한 장모 MBC 기자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페이스북에 알리기도 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은 처음부터 이 전 기자보다 한 검사장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였고 그러다보니 이 전 대표가 이 전 기자 등으로부터 공포심을 느낀 협박을 받은 앞단의 수사를 정교하게 마무리하지 못했다"면서 "이 전 대표조차 위증죄를 피하기 위해 '검언유착'과 반대되는 증언을 하게 되면서 검찰의 허술한 수사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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