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동조자'를 자청하게 만드는 수작, '동조자'

머니투데이 정유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4.2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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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엣 타인 응우옌 작가의 동명 소설을 드라마화한 첩보물

사진=쿠팡플레이사진=쿠팡플레이


‘역시 박찬욱 감독!’이라는 찬사가 절로 나온다. 2022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이 ‘헤친자’들을 양산했다면, 2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동조자’는 이 드라마를 지지하는 전 세계 수많은 ‘동조자들’을 불러 모을 것으로 예상한다. 7부작 중에서 2화까지 본 소감치고는 호들갑스럽긴 하지만, 박찬욱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 쇼 러너를 맡은 미국 HBO 드라마 ‘동조자’는 박찬욱 스타일의 도전과 확장이 분명하다.

박찬욱 감독이 비엣 타인 응우옌 작가의 소설 ‘동조자’를 드라마로 연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한편으론 의문이 들었다. 2018년에 존 르 카레의 첩보 스릴러 소설 ‘리틀 드러머 걸’(BBC)을 걸출한 TV 시리즈로 완성했으니 같은 장르의 두 번째 드라마는 더 잘 만들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다. 반면에 연달아 원작 소설 바탕의 스파이물을 드라마로 선보이는 건 제작력이나 비교 평가에서 빡빡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일었다.



감독은 작품으로 말한다고 했던가. ‘동조자’는 첫 화 오프닝부터 박찬욱의 스타일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원작 소설의 첫 문장인 “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밀정, 두 얼굴의 남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주인공(호아 쉬안데)은 남베트남에 잠입한 북베트남 첩보원이다. 베트콩 재교육 수용소에 수감된 주인공의 현재 모습이 ‘올드보이’(2003)의 오대수를 잠깐 떠올리게 했다가, 자술서를 쓰는 그의 내레이션을 따라 이야기와 장면이 매끄럽게 과거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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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자’가 박찬욱의 새로운 첩보 스릴러인가를 가늠하는 1화는 솔직히 좀 놀랍다. 우선 촘촘한 편집이 ‘리틀 드러머 걸’과 한가롭게 비교하면서 볼 수 있는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박찬욱 감독의 전매특허인 장면 전환은 이번에도 흥미를 돋우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주연배우 호아 쉬안데를 호시탐탐 탐색할 겨를도 없다. 그의 연기와 목소리에 곧장 빠져들어 매료되고 마니까 말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제외하곤 베트남계 배우들을 대거 출연하는데도 낯설지 않다. 아이러니한 유머까지 통하게 하는 건 연출의 역량이다. ‘헤어질 결심’을 함께한 김지용 촬영감독의 과감한 카메라워크는 박찬욱의 새로운 스타일에 힘을 싣는다.

1화가 대위의 남베트남 첩보 활동과 사이공 탈출 과정을 다뤘다면, 2화는 임무를 위해 남베트남 장군, 군인들과 미국으로 건너간 대위의 첩보 활동을 그린다. 스파이 드라마답게 암호를 담은 편지를 작성하고, 암호를 해독하는 장면이 장르적 재미를 충족시킨다. 그러나 속도감 있는 전개는 박찬욱 감독의 선택지가 아니다. 대위의 이민자 생활부터 대위의 은사였던 동양학 교수(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교수의 비서이면서 대위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 ‘미즈 모리’(산드라 오)의 등장, 남베트남 장군에게 스파이 색출 임무를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쉴 틈 없는 전개인데도 여유로운 리듬을 타고 이야기가 펼쳐진다. 진행 속도를 의식하지 않은 채 대사, 연기, 촬영, 화면 구성을 충분히 살필 수 있어 드라마 보는 재미가 난다. 거장이 만든 드라마답다.

소설 ‘동조자’를 읽으면 박찬욱 감독이 이 작품을 택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위선과 이중성이야말로 박찬욱 감독이 줄곧 집요하게 다뤄온 주제다.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박쥐’, ‘친절한 금자씨’, ‘헤어질 결심’의 이중적인 캐릭터들을 돌이켜보면 ‘동조자’의 대위 또한 닮은 얼굴이다. 2화까진 인물 소개 정도에 그쳤지만 혼혈, 이중간첩, 이민자로 겪는 주인공의 정체성 혼란은 갈수록 극심해진다. 드라마에 총괄 제작자로 참여한 응우옌 작가는 소설 ‘동조자’를 통해 지금까지 미국이 그려온 베트남 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제시한다. 베트남계(아시아계) 미국인의 시각에서 베트남 전쟁의 비인간성뿐 아니라 미국의 위선을 신랄하게 고발하는 이야기를 ‘연출할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베트남과 닮은 역사를 가진 한국 감독으로서 동조의 제스처를 취한 것이라 풀이하고 싶다.


사진=쿠팡플레이사진=쿠팡플레이
‘동조자’가 박찬욱 감독의 도전과 확장이라는 건 제작 방식에도 해당한다. 돈 맥켈러 감독과 공동으로 쇼 러너와 각본을 맡았고, 7부작 연출은 두 명의 영화감독과 나눠 맡아 협업의 결과물을 내밀게 됐다. 할리우드 톱스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미국인 주요 캐릭터 4역을 맡기고, 한국계 캐나다 배우 산드라 오가 일본계 미국인 역할을 하는 ‘배우 챌린지’도 협업의 성과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그의 아내 수잔 다우니 주니어는 제작에도 함께 참여했다.

앞으로 ‘동조자’의 관전 포인트는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에피소드(1화~3화)와 다른 두 감독이 연출한 에피소드가 각자 어떤 특징을 드러내고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이다. 4화는 넷플릭스 영화 ‘두 교황’(2019)을 연출한 페르난도 메이렐리스 감독이, 5화~7화는 영국 드라마 ‘유토피아’ 시리즈로 알려진 마크 먼든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선발주자 박찬욱 감독의 레이스는 다음주 29일(월)에 끝나고 바톤을 이어받은 두 감독의 릴레이 경주는 5월 27일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 8시에 쿠팡플레이에서 관전할 수 있다. 매주 공개되는 에피소드가 전 세계 시청자들을 뒤흔들어 놓기를 바라며 ‘동조자’의 무사 완주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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