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에 엉겨붙은 수십마리 대벌레…'따뜻한 겨울'이 보낸 경고

머니투데이 정한결 기자, 이강준 기자, 김주현 기자, 이정현 기자, 정경훈 기자 2020.07.26 05:10
글자크기

[주말 기획]벌레의 습격(종합)

23일 오전 9시 30분쯤 찾은 서울 은평구 봉산 해맞이 공원. 나무 의자에 대벌레가 엉겨 붙어 있다./사진=정한결 기자.23일 오전 9시 30분쯤 찾은 서울 은평구 봉산 해맞이 공원. 나무 의자에 대벌레가 엉겨 붙어 있다./사진=정한결 기자.


[르포] 산 오르자 나뭇가지가 꿈틀, 그것들은 다 벌레였다
전국 각지에서 돌발 해충이 발생하고 있다. 출현 장소는 실외와 실내, 도심과 외곽을 가리지 않는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수돗물에서조차 벌레 유충이 발견됐다. 인천, 경기와 서울, 부산까지 발칵 뒤집혔다.

도심과 도외에서는 대벌레, 매미나방, 노린재가 창궐한다. 매미나방의 경우 여의도 면적의 20배가 넘는 영역에서 활동 중이다. 정부는 관련 민원이 폭주하자 3주가 넘도록 방제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벌레 수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그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23일 서울 도심 내 해충 발생 지역 두 곳을 찾았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에도 벌레를 쉽게 포착할 수 있었다. 등산객들과 시민들의 산책로로 쓰이던 북한산과 봉산 일대는 벌레가 점령하다시피 했다.

◇수십마리 엉겨붙은 대벌레…"인간이 저지른 죄"



이날 오전 9시 30분 찾은 서울시 은평구 봉산 해맞이 공원 입구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최근 급격하게 불어난 대벌레의 방제를 위해 은평구청과 산림청 직원들이 비를 맞으면서 방제 호스와 물자를 정상으로 날랐다.

현장에 투입된 박일환 산림청 예찰단 단장은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가 아니다"라면서 "여름인데 잎을 다 먹어 치워 가지만 남아 있는 건 다 벌레라고 보면 된다. 위로 올라갈수록 심하다"고 설명했다.

대벌레는 성충일 경우 몸길이가 10㎝에 달하는 벌레다. 3월 말부터 부화해 11월까지 활동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은평구 20㏊ 지역과 제주도에서 집중 발생하면서 관련 민원이 폭주하고 있다.


실제로 이날 산림청 직원들을 따라 봉산 꼭대기로 향하는 길에서 대벌레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나무 계단 위 간간히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가 꿈틀거리면 벌레였다.

산 위로 올라갈수록 벌레 수만 아니라 악취도 심해졌다. 정상 인근 간이 쉼터에는 운동 기구 활용이 어려울 정도로 벌레가 쌓였다. 기구 옆에는 방제 작업으로 죽은 대벌레의 사체가 수북이 쌓였고, 그 썩은 내는 마스크를 뚫고 코를 찔렀다.

23일 오전 9시 30분쯤 찾은 서울 은평구 봉산 해맞이 공원. 나무 의자에 대벌레가 엉겨 붙어 있다./사진=정한결 기자.23일 오전 9시 30분쯤 찾은 서울 은평구 봉산 해맞이 공원. 나무 의자에 대벌레가 엉겨 붙어 있다./사진=정한결 기자.
거의 매일 이 곳을 찾는다는 은평구 주민 이상철(73)씨와 이모(73)씨는 나무 의자에 수십 마리 가량 엉겨붙은 대벌레를 밟아 죽이고 있었다.

이상철씨는 "이렇게 치워도 다음 날 오면 그만큼 또 쌓인다"면서 "오히려 오늘은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이씨도 "겨울에 다 얼어 죽었어야 했는데 (기후 변화 때문에) 살아남아 이런 것"이라면서 "인간이 저지른 죄"라고 거들었다.

'대벌레 대란'에 은평구는 지난 9일부터 4차례나 방제를 실시했지만 개체 수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이날 오전 정상 주변에서만 직접 손으로 나무에서 수거한 대벌레만 50ℓ 봉지 9개를 채웠다.

정상에서 만난 산림청 관계자는 "오전에만 수천마리 넘게 잡았는데 오후에도 그 정도를 예상한다"면서 "길가 위주로 방제 중이지만 산 속은 더 심각하다. 나무 반, 벌레 반이다"고 설명했다.

지난 13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국립공원 부근 '페로몬 트랩' 모습 /사진제공=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지난 13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국립공원 부근 '페로몬 트랩' 모습 /사진제공=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매미나방에 골머리…"밤에는 문 열기 겁난다"

같은 시각 찾은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일대는 매미나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주로 7~8월에 활동하는 매미나방은 성인 남성 엄지손가락만 한 곤충이다. 최근 전국 발생 면적은 총 6182㏊로 여의도 면적(290ha)의 20배가 넘는 수치다. 서울에서만 1656㏊에 이른다.

대벌레와 달리 매미나방은 민간 거주 영역마저 침범했다. 북한산국립공원 입구 인근 카페를 운영하는 박모씨는 "손님들이 창에 들러 붙은 나방에 혐오를 느껴 가게에 오래있지 않고 나간다"면서 "밤에는 아예 문을 열기가 겁날 정도"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카페 지붕에는 갈색 모양의 매미나방 알들이 수북이 붙어 있었다. 박씨는 "청소를 주기적으로 하지만 너무 높이 위치해 치우기 힘들다"고 말했다.

인근 사찰인 도산사 직원들도 벌레 대발생으로 인한 고초를 호소했다. 관리 직원 김모씨는 "요즘 매미나방 뿐 아니라 작은 귀뚜라미 같은 벌레들도 갑자기 늘어나 사찰 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며 "꼬리에 가시가 달려 물린 사람도 있다"고 밝혔다.

북한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는 쏟아지는 매미나방 민원에 기존 50여개 있던 매미나방용 '페로몬 트랩'을 지난 13일 130개를 추가 설치했다. 페로몬 트랩은 암컷 매미나방을 페로몬으로 유혹해 하단부에 설치된 끈끈이 필터로 나방을 잡는 기구다.

관리소 관계자는 "평년에는 3~4일만에 필터를 교체하지만 요즘은 하루 단위로 교체한다"면서 "이번 장마가 지나가면 알 제거 작업을 본격적으로 할 건데 나무 꼭대기 등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알을 낳아 제거가 어렵다"고 밝혔다.

정한결, 이강준 기자

46년 만에 가장 따뜻했던 그 겨울…벌레떼가 태어났다
벤치에 엉겨붙은 수십마리 대벌레…'따뜻한 겨울'이 보낸 경고
벌레들의 급습에 산림청과 방역업체는 비상이 걸렸다. 설상가상 수돗물 유충까지 발견되며 방역업체들에 과부하가 걸릴 정도다.

전문가들은 따뜻했던 겨울과 상대적으로 추웠던 봄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겨울이 포근해지면서 벌레들의 알은 폭발적으로 부화한 반면 이들의 천적인 조류 등은 추운 봄 활동량이 위축됐다는 설명이다.

◇도심까지 날아든 벌레떼…방역업체 신고건수도 늘었다



24일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국 10개 시·도 6183㏊(헥타르)에서 매미나방 유충이 발생했다. 서울 여의도의 20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산림청 실태조사 결과 지역별로는 △서울 1676㏊ △경기 1496㏊ △강원 1203㏊ △충북 759㏊ △인천 618㏊ △경북 387㏊ 등 면적에서 매미나방 유충이 발생했다. 전라남북도와 경남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매미나방이 퍼져나갔다.

매미나방은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성충으로 7∼10일 가량 산다. 불빛을 좋아해 도심지역에도 해를 입힌다. 나무나 가로등에 무더기로 산란한 알집은 도시 미관을 해친다. 유충이 가지고 있는 털이나 성충의 날개에 붙어있는 가루가 피부에 묻으면 두드러기나 빨간 반점이 생길 수도 있다.

돌발 해충이 창궐하면서 전문방역업체를 찾는 문의 전화도 평년보다 늘었다. 세스코 기술연구 관계자는 "1년 중 여름이 가장 신고 건수가 많은 계절이기도 하지만 올해는 평년과 비교해서도 건수가 더 늘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수돗물 유충 사태와 관련해서도 개인뿐 아니라 각종 기관에서 의뢰가 밀려와 업무량이 과중될 정도"라고 덧붙였다.

벌레떼가 급습한 이유 두 가지

박종호 산림청장이 17일 강원도 원주지역의 매미나방 방제 현장을 방문해 끌개로 매미나방 알집을 제거하고 있다./사진=산림청박종호 산림청장이 17일 강원도 원주지역의 매미나방 방제 현장을 방문해 끌개로 매미나방 알집을 제거하고 있다./사진=산림청
전문가들은 매미나방이 전례없이 폭증한 가장 큰 이유로 포근했던 지난 겨울을 지목했다. 온난한 날씨가 나타나면서 월동한 알의 치사율이 낮아졌고, 살아남은 알들이 폭발적으로 부화했다는 설명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겨울 전국 평균기온은 3.1도로 1973년 이후 가장 높았다. 시베리아 지역의 고온현상이 한반도로 부는 찬 북서풍의 영향을 약화시킨 탓이다.

정종국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가장 분명한 원인은 평년대비 높았던 지난 겨울철 온도"라며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평균 온도가 평년보다 3도 가까이 높아졌다고 보는데 이 때 알의 월동 사망률이 굉장히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곤충의 알은 노출된 채로 겨울을 보내기 때문에 외부 기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기온이 낮아질수록 치사율이 높아지고 저온 노출 날짜가 적을 수록 생존율은 올라간다. 매미나방의 알은 나무에 붙어 있는 채로 겨울을 보내는데 따뜻했던 겨울 영향으로 생존율이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정 박사는 "매미나방 성충은 지난해 7월부터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서 많이 발생했다"며 "워낙 많은 성충들이 알을 낳은 데다 이 알들이 겨울을 온전히 보내면서 올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벌레 역시 마찬가지다.

천적들이 힘을 못쓴것도 매미나방의 습격에 또다른 이유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해충이 발생하면 해충을 잡아먹는 곤충들도 함께 나오게 되는데 매미나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속도에 비해 천적들의 활동량이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정 박사는 "딱정벌레와 새(조류)가 매미 나방류를 잡아먹는다"면서 "새들이 알을 낳고 번식하는 시기였던 4월의 기온이 평년보다 낮아지면서 활동량이 위축됐다"고 분석했다.

충북 남부지역에서는 노래기까지 창궐했다. 노리개는 지네처럼 다리가 여러개 달린 벌레로 사람이나 농작물에 직접 피해를 주진 않지만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 관계자는 "이상기후가 이어진다면 해충 발생은 지속될 수도 있다"며 "매미나방이 전국적으로 대발생해 단기간에 많은 피해를 준 것은 올해가 처음인 만큼 관련 조사를 적극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현 기자

"초기 박멸만이 살 길" 벌레떼의 습격을 막아라
(서울=뉴스1) = 박종호 산림청장이 17일 강원도 원주지역의 매미나방 방제 현장을 찾아 포충기로 잡은 매미나방을 살펴보고 있다. (산림청 제공) 2020.7.17/뉴스1(서울=뉴스1) = 박종호 산림청장이 17일 강원도 원주지역의 매미나방 방제 현장을 찾아 포충기로 잡은 매미나방을 살펴보고 있다. (산림청 제공) 2020.7.17/뉴스1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로 예년보다 벌레 숫자가 늘어나 지자체 및 농민들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벌레 숫자가 증가하는 초기에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리 가능한 부분이라고 적당히 넘어갔다간 상황이 돌이킬 수 없게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초기 박멸 안했다가는 위협 해충 될수도

국립산림과학원 남형우 박사는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돌발해충을 초기에 잡지 못하고 계속해서 대처에 실패하면 해충으로 자리잡아 지속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나무재선충도 1988년도에 크게 증가했는데 당시 주요해충이 아니라고 방제에 힘쓰지 않았다가 지금은 위협적인 주요해충이 됐다"고 했다.

지자체와 산림청은 현재 이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산림청은 현재 2000여명의 인력을 동원해 돌발해충 제거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산림청 산림병해충방제과 김창현 사무관은 "매미나방의 경우 지금 90%이상 성충이 됐다"면서 "유화등을 설치해 밤에 날아드는 매미나방을 그물 등을 이용해 잡고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페로몬 트랩을 설치해 수컷 매미나방을 유인하고 끈끈이를 나무와 나무 사이에 1~2m 간격으로 설치해 잡고 있다"고 말했다.

23일 공무원들이 은평구 봉산 해맞이 공원에서 살충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봉지에 담긴 것이 모두 대벌레이다. /사진=정한결 기자23일 공무원들이 은평구 봉산 해맞이 공원에서 살충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봉지에 담긴 것이 모두 대벌레이다. /사진=정한결 기자
김 사무관은 "매미나방은 성충이 되자마자 산란을 하는데 도심에는 가로등 전주, 민가에는 처마 밑에 알을 낳는다"며 "도구를 이용해 알을 긁어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알 400~500개가 들어있는 난괴가 있는데 난괴를 제거해야 매미나방 번식을 억제하는데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벌레의 경우 인력이 투입돼 물리적으로 제거하고 있다. 김 사무관은 "대벌레는 날지 못하기 때문에 인력을 동원해 직접 잡거나 화학약품을 살포하고 있다"면서 "기상 상황 등을 고려해 수시로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벌레가 집단으로 발생한 경우 화학약품 공중 살포도 가능하지만 양봉업자 등 이해당사자의 협의가 필요하다"면서 "협의에 시일이 오래 걸릴 수 있어 친환경적인 인력 제거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사회적으로 빠른 벌레 제거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게 하려면 화학적 방제가 필수적"이라면서 "하지만 법적으로 농약을 뿌릴 수 있느 나무 등이 제한돼 있어 빠르게 벌레를 제거하려면 어느 정도 규제 조정은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곤충들 겨울 추위에 취약온난화 대응 필요

전문가들은 '벌레때의 습격'을 막을 근본적인 해법을 지구 온난화 방지에서 찾고 있다. 기후변화로 지구가 벌레들이 살기 좋은 환경으로 바뀌어가는 흐름을 되돌리지 못하면 돌발해충이 끊임없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남 박사는 "추운 겨울은 벌레들의 생존에 있어 굉장히 취약한 시기인데 날씨가 따듯해져 죽어야 할 알들이 죽지 않고 부화해 벌레 수가 급증한 것"이라면서 "올해 벌레 숫자 증가도 이상기후로 지난 겨울이 예년에 비해 따듯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관도 "돌발해충은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전년도 겨울이 1973년 기상관측 이후 가장 따듯했다"면서 "겨울철 영하권 기온이 계속된다면 자연폐사로 이어져 부화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현, 정경훈 기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