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1개 원전이 더 멈춘다...그 다음은"

머니투데이 세종=민동훈 기자 2020.06.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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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뉴클리어]②'그린뉴딜의 씨앗' 에너지 시프트 선언 3년

편집자주 한국 첫 상용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2017년 6월19일 0시 영구정지(콜드 셧다운) 됐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 원자력본부를 직접 찾아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청정에너지 시대, 이것이 우리 에너지정책이 추구할 목표"라고 말했다. 포스트 뉴클리어 시대를 여는 선언문이다. 이제 당면 현안은 사용후핵연료 처리의 해법을 찾는 것이다. 지리한 사회적 갈등을 넘어 포스트 뉴클리어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사용후핵처리 정책 과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앞으로 11개 원전이 더 멈춘다...그 다음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오는 19일로 3주년을 맞는다. 탈원전은 원전과 석탄발전 비중을 줄이고 태양광, 풍력, 수소 등 신재생에너지를 집중육성하는 '에너지 전환' 정책이다. 하지만 원전 가동 중단에만 초점을 맞춘 '탈원전' 프레임에 갇혀 3년째 이념 갈등으로 건설적인 논의는 실종됐다.고사위기에 처한 원전 생태계를 빠르게 복원하고 사용후핵연료 등 고준위 방사능폐기물의 중장기 관리방안을 조속히 확정하는 등 보다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19일 오전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고리 인근 초등학생들과 세리머니에 앞서 손을 잡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19일 오전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고리 인근 초등학생들과 세리머니에 앞서 손을 잡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17일 한국수력원자력 등에 따르면 정부가 2017년 6월19일 고리 영구정지 선포식을 통해 '탈원전'을 천명한 후 지난 3년간 정부는 원전 2기 가동을 중단하고 신규 원전 6기 중 4기(천지 1·2호기, 대진1·2호기)는 건설계획을 백지화했다.



신한울 3·4호기 등 나머지 2기도 건설도 보류한 상태인데, 사실상 재개 가능성이 희박하다. 당초 신한울 3·4호기와 함께 보류됐던 신고리 5·6호기 등 신규 원전 2기는 공론화 절차를 거쳐 건설이 재개됐다.

"앞으로 11개 원전이 더 멈춘다...그 다음은"
수명이 만료된 원전을 수명 연장 또는 계속 운전 등 방법으로 추가 가동하지 않고 순차적으로 폐지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방침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자문기구인 총괄분과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주요 내용을 보면 현재 25기(24.7GW)의 원전이 운영 중인데 2024년엔 총 26기(27.3GW)가 가동할 예정이다.

이후 수명을 다한 원전부터 가동을 중단하기 시작해 2034년에는 17기(19.4GW)로 줄어든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해 모든 원전의 가동을 일시에 중단하는 탈원전이라기 보다는 '감원전' 정책에 가깝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이명박·박근혜정부 거치며 과도하게 높아진 안전기준 탓에 정비일수도 급격히 늘어났고, 기술적으로 수명 연장도 쉽지 않아졌다"면서 "주민 수용성 등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원전을 늘리기 힘든 구조적인 면이 있는데 이를 외면하고 무조건 원전을 더 짓자는 것도 무책임한 얘기"라고 말했다.


원전 추가 건설이 백지화되면서 미래 일감이 사라진 원전 생태계가 위기감에 휩싸인 것은 사실이다. 당장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두산중공업의 사례를 보더라도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에 따른 부작용 최소화 전략이 보다 세심하게 준비돼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11개 원전이 더 멈춘다...그 다음은"
정부는 최근 3년간 △에너지전환 보완대책(2018년 6월) △원전 중소기업 지원방안(2019년 4월, 9월) △원전해체산업 육성전략(2019년 4월) △원전 전주기 수출 활성화 방안(2019년 9월) 등 수차례 대책을 냈다. 하지만 원전 대규모 수출은 UAE(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이후 멈췄다. 원전 해체 역시 국내 첫 가동중단 원전인 고리1호기의 해체계획조차 제대로 세우지 못한 상태다.



일단 정부는 올해 예산을 짜면서 원전업계 지원을 위해 원전 분야 연구개발(R&D) 예산을 지난해 대비 33% 늘어난 1415억원을 편성했다. 방사능폐기물 관리·처분 등 원전 후행주기 예산을 크게 늘렸다. 원전 해체 예산은 177억원에서 366억원으로, 방폐물 예산은 86억원에서 204억원으로 늘었다.

핵융합 등 미래유망 분야 예산도 지난해 320억원에서 올해 454억원으로 뛰었다. 공기업인 한수원 역시 2019~2023년 원전 R&D 예산을 2014~2018년 대비 70% 증가한 1415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2017년 6월19일 영구가동 중단된 고리 원전 1호기 전경 /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2017년 6월19일 영구가동 중단된 고리 원전 1호기 전경 / 사진제공=한국수력원자력
사용후 핵연료 중장기 관리방안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현재 사용후핵연료는 습식저장시설과 맥스터, 캐니스터 등 건식저장시설에 임시 보관 중이다. 임시저장시설 증설도 경주 월성 맥스터 증설 논란에서 보듯 주민수용성 등의 문제로 쉽게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 중장기 관리계획 재검토 위원회를 통해 공론화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원전의 운영도, 폐기도 추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노력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자력계 전문가는 "야당은 물론 집권여당 조차도 '탈원전'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에 갇혀서 에너지 백년대계의 근간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며 "에너지정책 핵심은 이념 아닌 안보·경제에 있는 만큼 탈원전 프레임을 깨야 건설적인 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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