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송현동 땅 '헐값' 해명한 서울시, 그래도 남는 의문들

머니투데이 주명호 기자 2020.05.2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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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대한항공에 1조 2000억원의 자금을 신규 지원하기로 결정한 24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중구 대한항공 서소문사옥 앞을 지나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대한항공에 1조 2000억원의 자금을 신규 지원하기로 결정한 24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중구 대한항공 서소문사옥 앞을 지나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서울시가 대한항공이 경영정상화를 위해 내놓은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적정가격으로 매입하겠다"며 해명하고 나섰지만 적정가격 수준과 매입 능력에 여전히 의문부호가 남는다. 대한항공은 최초 매입가에 지금껏 발생한 비용 등을 감안하면 감정평가액 수준으로만 부지를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장 자금조달이 급한 만큼 서울시가 매입대금을 신속히 지불할지에 대해서도 우려가 크다.

29일 서울시는 전날 불거진 송현동 부지 헐값 매입 논란과 관련해 "공정한 감정평가를 통해 적정한 가격에 매입할 계획"이라며 "예산편성을 위한 사전절차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감정평가는 공원으로 지정되기 전 토지가치를 평가해 가격을 책정하는 만큼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공원부지로 지정하려는게 아니라는 해명이다.



송현동 부지의 공시지가는 3100억원이다. 올해 국토교통부의 표준공시지가 현실화율(65.5%)을 단순 적용하면 실제 감정가는 약 477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단순 감정가만을 최종 매각가격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방침이다. 대한항공은 당초 고급 한옥호텔 및 복합문화단지 개발을 추진할 목적으로 2008년 6월 2900억원에 송현동 부지를 매입했다. 하지만 규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12년 동안 부지를 방치해두어야만 했다. 그간 발생한 금융비용 및 세금부담금만 해도 수천억원에 이른다.



대한항공이 송현동 부지 가격을 최소 6000억원 수준으로 봤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한진그룹은 이 가격대를 전제로 지난해 2월 발표된 '비전2023'에서 부지 매각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안을 발표했다. 충분한 매입가를 못받고 부지를 넘기면 배임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헐값에 파느니 "계속 갖고 있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은 것도 같은 의미로 풀이된다.

서울시가 대한항공이 원하는 가격대를 맞춘다고 해도 당장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도 문제다. 당장 자본확충이 시급한 대한항공으로서는 매입가를 제때 받아야 하지만 서울시가 그만한 예산능력이 있는지는 미지수다.

앞서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의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2021년말까지 2조원의 자본확충을 요구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회사의 사활이 걸린 상황에서 정상화를 위한 자구책으로 최대한 빨리 (부지를) 매각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서울시가 곧바로 자금을 준다고 보장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대한항공에 송현동 부지 공원화 및 매입의사를 타진해왔다. 대한항공은 서울시가 제시하는 적정가격이 맞지 않을 뿐더러 향후 예산확보를 통해 매입대금을 맞추겠다는 방식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판단해 거절의사를 전달했다.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의 공원화를 추진하면서 현재 대한항공이 진행 중인 부지 매각도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워졌다. 공원 부지로 지정되면 건물 건축이 불가능해지는 만큼 해당 부지를 매입할 이유가 사실상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전부터 이같은 의사를 밝혀 왔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서울시가 대한항공의 매각 시도를 사실상 무산시킨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원화 계획을 밝힌 것은 그 자체로 다른쪽에서 매입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곳에 매각하는게 당연한데 공익을 핑계로 이를 가로막는게 적합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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