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코로나는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먼저 공격했다. 까림을 고용한 공장은 코로나가 터졌을 때 이주노동자를 가장 먼저 내쳐버렸다. 3개월 무급휴가를 받았다. 다른 회사로 옮길 수도 없었다. 사장은 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공장에 있어 달라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하지만 다시 고용을 하기에는 절차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까림은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
"쓰다 버리는 일회용 컵이 된 것 같았어요. 우리 사회에서 저희가 필요해서 쓰긴 쓰죠. 그리고 그냥 버려버려요. 사람을요."
까림이 돌격대원이, 유령인 존재가 되어도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는 까닭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고용주인 사장의 판단에 의해 한국에서 더 체류할 수 있는지 못하는지가 모두 결정된다. 사장의 눈밖에 나면 그날로 한국 생활은 접어야 한다. 까림을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은 국가와 사장의 허가가 있어야 고용되는 '고용허가제'를 준수해야 한다.
때문에 회사 안에서 임금체불이 있거나 성폭력 사건이 있어도 고용센터에 신고를 하고 회사를 바꾸기도 어렵다. 한번 신고를 하면 고용센터에서 수사를 하러 나오는 과정이 2~3개월은 걸린다.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에 이주노동자들은 사장 갑질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차라리 갑질을 꾹 참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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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열악한 신분이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이들은 사업장이 어려워져 제일 먼저 쫓겨났고 또 외국에 사는 친지들과 더욱 만날 수 없어 신세가 처량해졌다. 또 다른 방글라데시인 리마(27·여·가명)는 해외에 친지를 보고 왔다가 자가 격리 통보가 아닌 해고를 당했다. 리마는 인천에서 포장박스를 만드는 일을 4년 넘게 해왔다.
"2월에 오랜만에 부모님 만나려고 방글라데시에 간다고 하니까 갔다오면 코로나 때문에 2주 격리를 해야한다고 하더라고요. 합의하고 고향에 다녀왔는데 사장이 갑자기 너는 아예 회사로 오지 말라고 말을 바꿨어요. 발열도 없고 격리도 했는데요. 다 사장 마음인거죠. 사장이 재계약을 안 해주면 저는 이제 한국을 영영 떠나야해요"(리마의 이야기)
이들의 쉼터도 사라지고 있었다. 이주노동자들은 보통 일자리를 잃게 되면 이슬람교 사원이나 힌두교 사원 등 기도방이라는 커뮤니티에 간다. 그 곳에서 동료를 만나고 정보를 얻어 다른 취업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는 이들의 유일한 탈출구였던 기도방도 모두 닫게 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이들은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허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사장의 판단에 따라 체류가 결정되는 현 제도로는 갑질을 폭로하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사업장 변경을 하지 못해 2017년 한 이주노동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에는 경북 양파밭 사업주가 가짜 돈을 주며 임금체불을 한 사례도 있었다.
섹 알 마문 이주노조 부위원장(46)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 하나만 보장해줘도 많은 노동자들이 이 지옥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사회도 이주민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지 35년째인데 이주노동자를 일회용 컵이 아니라 문화다양성의 길에 가는 동반자처럼 봐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뉴스1과 인터뷰중인 섹 알 마문 이주노조 부위원장(46) © 뉴스1 서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