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0%대 내렸는데 대출금리 왜 올라…"유동성 증가는 무슨"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2020.03.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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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재무학]<301>금리인하, 양적양화(QE)로 정말로 시중에 돈이 넘쳐날까?

편집자주 투자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알면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기준금리 0%대 내렸는데 대출금리 왜 올라…"유동성 증가는 무슨"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자 한국은행은 지난 16일 임시 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0.75%로 낮췄다. 이로써 사상 첫 0%대 기준금리 시대가 도래했다.

여기에 정부는 19일 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코로나19 피해가 심한 중소기업,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1.5% 수준의 초저금리로 긴급경영자금 12조원을 공급하는 지원책을 내놨고, 24일 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그 규모를 2배로 늘렸다. 이로써 1%대 초저금리 신규 대출 24조원이 시중에 풀리게 됐다.



그리고 26일 한국은행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3개월간 금융회사에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한은은 매주 RP(환매조건부채권) 매입(91일 만기)을 통해 입찰금리 0.85%(기준금리+10bp) 상한으로 금융기관이 필요한 유동성 수요 전액을 제한없이 공급할 방침이다. 한국판 양적완화(QE)다. 나아가 RP매매 대상증권에 한국전력 등 8개 공기업 특수채를 추가하고 공개시장운영 대상기관에 11개 증권사를 추가했다. 한마디로 한은이 국내 주요 금융기관에 모두 무제한으로 돈을 풀겠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정치권과 여러 지자체들이 앞다퉈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생계지원 명목으로 국민들에게 선별적 혹은 전면적인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만약 재난수당이 전 국민에게 지급된다면 최대 50조원의 현금이 시중에 풀리게 된다. 재난기본소득은 대출이 아니기에 상환의무가 없다.



기준금리는 0%대로 낮아져 초저금리시대에 접어들었고, 정부는 1% 초저금리 신규 대출 24조원을 시중에 풀겠다고 하고, 한국은행은 국내 주요 금융기관에 무제한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한다. 게다가 최소 10조원 이상의 재난기본소득이 빠른 시일 내에 지급될 가능성이 높다.

위에서 말한 게 모두 실현된다면 조만간 시중에 돈이 넘쳐날 게 틀림없다. 역사상 한 번도 보지 못한 규모의 돈이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한은이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인 0%대로 낮춰 돈을 무제한 공급해도 시중은행이 그 돈을 쓰지 않으면 돈은 돌지 않는다. 한은이 유동성을 아무리 풍부하게 공급해도 실제로 대출 리스크를 짊어지는 은행 등 민간 금융기관이 가계와 기업 등 실물부문에 자금공급을 원활하게 하지 않으면 실물경제에서의 소위 돈맥경화 현상은 해소되지 않는다. 실물경제는 완전 별개다.


한은이 무제한 RP 매입을 통해 금융기관이 필요한 유동성 수요 전액을 제한없이 공급하면, ELS(주가연계증권), PF(프로젝트파이낸싱) 지급보증 문제가 터져 유동성 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증권사는 도움이 되겠지만 은행은 달라지는 게 없다. 애초 은행은 유동성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은행은 코로나19 사태로 부도위험이 높다고 생각하면 대출을 늘리지 않고 늘어난 유동성을 그대로 초과지준으로 넣어버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돈은 실물부문으로 흘러가지 않고 은행에 그대로 쌓이게 된다.

결국 한은이 기준금리를 낮추고 민간 금융기관을 통해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려 해도 이는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한 유동성 공급에 그칠 뿐 가계와 기업 등 실물부문에 대한 자금공급으로 이어지지 않을 우려가 높다. 실제로 코로나19로 부도위험이 높아진 상황에서 민간 금융기관 창구에서 리스크를 책임지고 선뜻 자금을 빌려주기가 어려울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실제로 직장인이 주로 이용하는 시중은행 신용대출 금리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0%대로 낮춘 이후에 하락하기는커녕 오히려 오름세로 돌아섰다. 신용대출 금리가 오르면 직장인들의 대출 수요는 자연스레 억제될 수밖에 없다.

하나은행의 신용대출 상품 ‘하나원큐신용대출’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0.75%로 내리기 전인 16일 최저금리가 연 2.688%였으나 2주일이 지난 27일 현재 연 2.720%로 0.032%포인트 올랐다. 이는 지난달 27일 신용대출 금리 2.566%보다 0.154%포인트나 높은 수준이다. 하나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직후 소폭 내림세를 보이다가 차츰 오름세로 전환됐다.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의 신용대출 금리도 하나은행 신용대출과 비슷한 추이를 보이고 있다. 카뱅의 신용대출 최저금리는 27일 현재 연 2.66%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직전 연 2.63%보다 높다.

KB국민은행의 신용대출 상품 ‘KB Star 신용대출’은 한은의 금리인하 이후에도 최저금리가 2.74%(기준금리 금융채 12개월 기준)으로 불변이다.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가 한은의 역사적인 기준금리 인하 발표 이후에도 하락하기는커녕 오히려 오르는 현상만 놓고 봐도 과연 민간 금융기관이 시중에 자금공급을 원활히 할지 의문이 들게 만든다.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대출리스크가 가장 낮은 직장인한테도 대출금리를 올려 대출수요를 억제하는 판에 다른 직종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 아파트 담보대출은 어떨까? 아파트 담보대출은 이미 강도 높은 대출규제로 꽁꽁 묶여 있는 상태다. 최대 한도가 1억원으로 제한돼 있는데다 사용처도 생활자금으로 국한돼 있다.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을 때 사용처에 대한 서약서를 써야 한다. 금리인하와 유동성 무제한 공급 이후에 아파트 담보대출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언강생심이다.

물론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신규 대출금리가 따라서 곧장 내리지는 않는다. 먼저 대출 기준금리가 단기냐 장기냐에 따라 한은의 기준금리 조정의 영향이 달라진다. CD 금리와 같은 단기 시장금리는 한은의 기준금리 조정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지만, 중장기 시장금리(금융채 3년물, 5년물 금리 등)는 경기동향, 향후 물가전망 등 다양한 외적 요인의 영향도 있기 때문에 한은의 기준금리 조정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

기준금리 0%대 내렸는데 대출금리 왜 올라…"유동성 증가는 무슨"
또한 한은의 기준금리 조정이 대출 기준금리의 변동에 반영되는 시차에도 차이가 있다. 일 단위로 고시되는 CD 금리 또는 금융채 금리 등에는 한은 기준금리 변동이 비교적 신속히 반영되지만, 주간 혹은 월간 단위로 고시되는 COFIX 등에는 한은 기준금리 변동이 반영되는데 한 달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 게다가 잔액기준 COFIX의 경우 시장금리에 비해 변동성이 낮은 특성이 있어 한은 기준금리가 변동하더라도 이 효과가 충분히 반영되는 데는 더욱 긴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기준금리 0%대 내렸는데 대출금리 왜 올라…"유동성 증가는 무슨"
현재 국내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는 상당부분이 금융채 금리, COFIX 등의 시장금리에 연동해 산정되는데, 3~6개월의 금리산정주기가 도래하면 기준금리 및 시장금리 변동에 따라 대출금리에 반영된다. 따라서 기준금리 인하분이 대출금리에 반영되기까지 일정기간 시차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점을 십분 감안해서 한 달 정도 지난 후에는 시중에 돈이 넘쳐나는 걸 기대해도 될까? 과거 사례를 보면 여전히 회의적이다.

지난 2008~2009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기준금리를 제로금리로 떨어뜨리고 대규모 양적완화(QE) 조치를 시행했다. 이 덕택에 유동성 부족에 몰렸던 미국 금융기관들은 파산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중에야 깨닫게 됐지만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와 과감한 양적완화(QE) 조치는 월가의 금융기관을 위한 구제책에 그치고 말았다. 가계나 기업 등 메인스트리트 구제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아직도 거세다.

결국 코로나19 피해 대책으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0%대로 낮추고 금융기관에 대해 무제한 유동성을 공급한다고 해도 앞으로 시중에 돈이 넘쳐날 것으로 기대하는 건 착각이다. 시중에 돈이 넘쳐나기보다 단기자금 경색이 빈번해지는 등 돈맥경화가 심해질 이유가 더 많다. 당장 91일 만기 CP 금리는 27일 현재 2.05%까지 급등했다. 3개월 물 CP 금리가 2%를 넘기는 2015년 3월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유동성 증가는 ‘개뿔’이다.

다만 민간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국민에게 직접 지급되는 재난기본소득은 시중에 곧바로 돈이 돌게 할 수 있어 단기자금 경색이 약간은 해소될 수 있다. 4월부터 도민 1인당 10만원의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발표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6일 밤 ‘재난기본소득 경제침체 위기 극복 방안’을 주제로 진행된 MBC 100분토론에 참석해 "정책을 집중할 방향은 (시중에) 돈을 돌게 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 지사의 말대로 지금은 시중에 돈이 실질적으로 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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