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경에는 신탁업을 규율하고 있는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작업이 9년째 멈춘 데 있다. 2011년 신탁재산 범위를 확대한 신탁법이 개정됐지만 '신탁업자'를 별도로 규율하고 있는 자본시장법에 이를 반영하지 못하면서다.
ELT란 증권사가 발행하는 주가연계증권(ELS) 등을 은행이 특정금전신탁 계좌에 편입시켜 판매하는 신탁상품을 말한다. 시중은행은 ELS를 직접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신탁'이란 포장지에 담아 판매한다. '1대1 맞춤상품'이라는 신탁의 본래 모습과 달리 고위험상품을 담는 도구로 변질된 것이다.
◇2012년→2017년→2020년…자본시장법 개정 '하세월'정부도 몸집만 커진 신탁시장이 '종합 자산관리서비스'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신탁제도 전면개편안을 수차례 꺼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이 시각 인기 뉴스
2011년 신탁법이 개정된 이후 정부는 2012년 이를 반영한 자본시장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신탁법이 개정돼도 실제 신탁업자들의 행위를 규율하는 자본시장법이 바뀌지 않는 한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
신탁법은 신탁재산의 범위를 제한하지 않는 반면 자본시장법은 신탁재산을 금전·증권·부동산 등 7가지 외의 재산을 수탁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다양한 신탁상품이 나오기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후 5년의 시간이 흐른 2017년 금융위원회는 △수탁재산 범위 확대 △자기신탁·재신탁 운용방식 허용 등 신탁제도 전면개편안을 내놨지만 이해관계자들의 이견이 커 결국 불발됐다.
그리고 2020년, 금융위는 신년업무계획에 2017년 개편안과 함께 전문신탁업 인가단위(스몰라이센스) 신설을 통한 특화 신탁사 진입을 촉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는 "신탁법 개정내용을 업자규율로 어떻게 할지는 검토하고 있다"며 "올 하반기까지 개편안을 마련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가보지 않은 길'…신탁업계 기대감↑신탁업계는 제도변화 없이도 시장이 빠르게 성장해온 만큼 이번 금융위 개편방안에 큰 동요는 없는 분위기다. 오히려 기존 신탁업무에 더해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신탁은 원래 위탁자의 특성에 맞게 1대1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맞다. 하지만 지금은 은행들이 신탁을 상품처럼 팔다 보니 '신탁스럽지' 않은 모습이 분명히 있다"며 "오히려 이번 개편으로 신탁업계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금융위 개편방안에 담긴 '재신탁'이 업계의 주요 관심사다. 재산을 신탁받은 수탁자가 각 분야별 전문업자들에게 이를 다시 신탁해 보다 체계적이고 다양한 서비스제공이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고가의 미술품을 위탁받은 수탁자가 이를 미술전문업자에게 '재신탁'을 한다. 대신 수탁과정에서 나오는 재산관리나 투자운용은 전문성이 있는 금융업자가 맡으면서 신탁목적에 맞는 다양한 운용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
또 다른 금투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신탁을 금전이나 부동산에 한정해 생각하는 경향이 컸다. 여러 계약을 맺다 보면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나올 것으로 본다"며 "남북관계가 무르익던 2년 전 한 금융회사는 남북통일이 되면 수탁재산을 이산가족에게 전달하는 내용의 '이산가족신탁'을 만들기도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