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출입 막은 美식당…바이러스 숙주 취급, 왜?

머니투데이 뉴욕=이상배 특파원 2020.02.11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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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출입 막은 美식당…바이러스 숙주 취급, 왜?


미국 뉴욕 인근 뉴저지주 크레스킬. 최근 이 지역 식당 한곳에서 한국인들이 단체로 입장을 거부당하는 일이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을 퍼트릴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중국인이 아니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그들에겐 결국 같은 피부색을 가진 아시아인일 뿐이었다.

유럽에서 이런 바이러스가 발원했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이 식당이 백인들의 입장을 막았을까. 아시아인에 대한 입장 거부를 단순히 식당 주인의 투철한 방역 의식 또는 미국인 특유의 세균 공포증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 대우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일이 한인 사회에서 회자가 된 건 다른 곳도 아닌 한인 밀집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점 때문이다. 또 마음 속으로 차별을 하더라도 겉으로 드러내진 않는다는 미국 사회의 불문율을 깼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사회 저변에 인종주의(Racism)가 깔려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걸 입 밖에 내는 건 다른 문제다. 미국 정치인이 상대 후보의 인종적 배경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려면 자리를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얼마전 미국 텍사스주의 릭 밀러 하원의원(공화당)은 인종주의자란 비난 여론에 밀려 재선 포기를 선언했다. 지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내 경선 경쟁자들을 두고 "그는 한국인이다" "어쨌든 아시아인이다" 등의 발언을 했다는 이유였다.

이 인터뷰가 보도된 직후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밀러 의원은 "잘못된 언어 선택으로 용서할 수 없는 말을 했다”며 공식 사과했지만 사퇴 요구를 물리칠 순 없었다. 그의 지역구는 아시아계 인구가 약 20%를 차지한다.

특정 민족에 대해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쫓겨날 수 있는 건 학교 교사도 마찬가지다. 약 2년 전 뉴저지주 북부의 영재학교 버겐카운티 아카데미즈에서 한 교사가 수업 중 "나는 한국인을 싫어한다"(I hate Koreans)고 말했다가 퇴출됐다.


당시 교실에 있던 한국계 학생들과 자식으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들은 부모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 교사는 "인종적 편견에 대한 학생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예시를 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미국의 시각에서 볼 때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의 모친이 일본계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비난하는 우리나라가 어떻게 비칠까.

한국어에 능통할 뿐 아니라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이 있을 정도의 '친한파'인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조차 이런 모습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한미간 친선을 도모하는 미국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의 신임 이사장이 된 스티븐스 전 대사는 최근 뉴욕특파원들과 만나 "한국인들이 해리스 대사의 인종적 배경을 거론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unacceptable)"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식민지 총독을 연상케 하는 해리스 대사의 오만방자한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주재국의 차관 뿐 아니라 장관, 총리 또는 국회의원까지 하대하는 듯한 모습이야말로 용납할 수 없는 행태다. 그러나 그의 인종적 배경을 따지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그의 행태에 대한 불만을 미국 측에 전하고 개선을 끌어내고 싶다면 최소한 그의 핏줄이나 콧수염 문제는 거론하지 않는 게 오히려 효과적이지 않을까.

트럼프 시대를 맞아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는 미국의 인종차별도 문제지만, 우리나라가 과연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한국으로 건너와 기피 업종의 노동력 부족을 메우고 있는 남아시아인들을 우리는 과연 차별없이 대우하고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인 출입 막은 美식당…바이러스 숙주 취급,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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