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달라는 돈, 다 줬을 때 생기는 일

머니투데이 뉴욕=이상배 특파원 2019.09.09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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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미국이 제시한 방위비 50억달러엔 중국 견제 비용도 포함…경제·안보 '패키지딜' 시도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년 전 이맘 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앨라배마주 헌츠빌에서 연설을 했다. 여느 때처럼 그는 원고를 무시하고 즉석에서 의식의 흐름대로 얘기했다. 내용은 대부분 자화자찬과 정적들에 대한 비난이었다.

별난 대통령을 보기 위해 몰려든 청중들도 연설이 1시간반을 넘기자 지루해하기 시작했다. 일부 청중이 자리를 뜨려 하자 급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느닷없이 화제를 바꿔 육두문자를 날리기 시작했다. 타깃은 NFL(북미 프로미식축구 리그)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의 쿼터백 콜린 캐퍼닉이었다.



그가 인종차별에 항의해 경기 전 국가 연주 때 한쪽 무릎을 꿇었다는 이유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구단주가 이런 비(非)애국적인 선수를 당장 해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바란대로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호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언행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백악관 부비서실장을 지내며 트럼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케이티 월시는 그 이유를 ‘애정 욕구’에서 찾았다. 월시는 "트럼프 대통령은 너무나도 사랑을 필요로 한다"며 "그에겐 모든 게 사랑을 받기 위한 몸부림일 뿐"이라고 했다.



재선이 걸린 내년 대선을 앞두고 그의 애정 욕구는 표에 대한 갈망으로 치환됐다. 조 바이든을 비롯한 민주당 유력 주자들과의 가상 양자대결에서 밀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조바심에 꺼내든 게 아프가니스탄 철군이다. 탈레반에게 아프간을 갖다 바치는 것이란 비난에도 그는 밀어붙였다.

그에게 해외 미군 감축 또는 철수는 단순한 돈 문제 이상이다. 내년 대선의 승패를 가를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경합주의 백인 노동자들을 사로잡기 위한 카드다. 모병제인 미국의 사병은 대부분 노동자 계층의 자녀들이다. 전쟁과 해외 주둔은 곧 미국 노동자들의 자녀를 희생하는 것이란 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스티브 배넌이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에 심어둔 프레임이다.

주한미군도 예외가 아니다. 미 국가안보팀은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는 전초기지인 주한미군의 감축 또는 철수에 반대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법은 다르다. 노동자들의 자녀인 주한미군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면 재선을 위한 표에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미국이 우리에게 내민 50억달러(약 6조원) 짜리 방위비 분담금 청구서도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전략이다. 자신이 외국으로부터 큰 돈을 받아냈다고 트윗으로 자랑해 표를 긁어모으는 데 목적이 있다.

50억달러는 주한미군 주둔비 뿐 아니라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 운용비 등 관련 부대비용까지 얹은 금액이다. 문제는 이 태평양 함대가 중국의 해양 진출 저지를 주된 목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미국의 분담금 인상 압박에 대해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의 역할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미국에 50억달러를 주는 순간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에 적극 협력하는 셈이 된다. 중국을 자극해 '제2의 사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수용해도 마찬가지다.

주한미군 철수에 거리낌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방위비 인상을 막아내려면 그가 선거에서 생색을 낼 수 있는 다른 거리를 주는 수밖에 없다. 국내 자급이 거의 안 되는 옥수수나 천연가스를 미국에서 더 사오는 것도 방법이다. 경제와 안보를 아우르는 '패키지 거래'를 담판 지을 수 있는 자리는 정상회담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설 차례다.

트럼프가 달라는 돈, 다 줬을 때 생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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