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맨'스위스는 어떻게 확전을 막았나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020.01.1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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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WSJ 등, 지난 10여일 긴박했던 이란~스위스~미국 간 '백채널' 비밀메시지 교환에 '주목'

/사진=AFP/사진=AFP


지난 3일 이란 군부 최고 실세 사망 이후, 이란은 미군 기지를 공격했지만 사상자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당장 군사 보복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알리며 긴장 고조의 고삐를 잠시 풀었다. 전세계가 감당치 못할 확전을 막은 데에는 스위스의 물밑 중재력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추가 공격 없다'…이란→스위스→미국 메시지 전달에 단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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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미군 드론(무인기) 공격으로 사망한 뒤 몇 시간 후, 트럼프 행정부는 '백채널'을 통해 이란에 긴급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에 담긴 내용은 '확대하지 말 것(Don't escalate)'이었다.

또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만일 드론 공격에 대해 이란이 보복에 나선다면 그것은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군사 행동을 촉발할 것이란 경고도 함께 보내졌다. 그러면서 "만일 복수를 원한다면 우리가 한 만큼만 하라"는 메시지도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백채널이란 주(駐) 이란 스위스 대사관을 뜻한다. 1979년 이란의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직원 인질사건 이후 미국과 이란의 외교관계는 단절됐다. 주 이란 미국 대사관의 역할을 현지에 있는 스위스 대사관이 대리하고 있는 셈이다.

WSJ가 인용한 미국과 스위스 관계자들에 따르면 솔레이마니 사령관 죽음 이후 마르쿠스 라이트너 주 이란 스위스 대사는 곧장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에 미국 메시지를 전했고 자리프 장관은 분노를 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불량배"라며 "미국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백채널은 이후 일주일여간 긴박하게 작동했는데 지난 8일, 이란의 이라크 내 미군기지 두 곳에 대한 미사일 공격이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NYT에 따르면 해당 미사일 공격 이후의 추가 공격은 없을 것이란 내용의 이란 측 메시지를 주이란 스위스 대사관이 받았고, 주이란 스위스 대사관은 이를 다시 주미 스위스 대사관에, 주미 대사관은 이를 다시 백악관, 즉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에 알렸는데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5분이었다.

소식을 전달 받은 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침착하자"며 "이제 공은 우리 코트에 있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곧장 반격하지 않은 데에는 에스퍼 장관의 이같은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스위스, 모든 게 타버렸을 때 환영할 만한 다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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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비밀메시지 교환에 대해 스위스나 이란, 미국 측이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다만 UN 주재 이란 대표부 대변인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만일 필요로 한다면 효과적인 채널을 제공코자 하는 스위스 측의 어떤 노력에 대해서도 우리는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란 정부 관계자는 "사막에서는 물 한방울도 문제가 된다"며 "모든 게 다 타버렸을 때 백채널은 환영할 만한 교량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WSJ는 이란과 미국사이 공식적인 외교채널이 단절된 상황에서 "스위스 (중재 역할이) 이번처럼 시험받은 적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2003년 미국 주도의 이라크 침공 때나, 2015년 오바마 행정부 시절 핵합의를 이끌어 낼 때 모두 스위스가 소통의 중간다리 역할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주 이란 스위스 대사관 내에는 밀폐된 방이 있으며 이 방의 특수 암호화된 팩스 기기를 통해 이란~스위스~미국 간 물밑 소통이 이뤄지는 것으로 추측되다. 대사관 내 최고 선임만이 기기 운영 권한을 갖는다.

미국과 이란 양측은 이같은 운영 방안에 만족감을 표해온 것으로 보도됐다.

미국 정부 관계자는 WSJ에 "우리는 이란과 그리 많이 소통하진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양국간 대화에) 오해를 피해기 위해 스위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죽음 이후 표면적으론 양측 사이에 거친 말이 오갔지만 실제 물밑 채널을 통해서는 상호 오해를 피하기 위해 극도로 신중한 언어들이 오갔던 것으로도 보도됐다.

전직 스위스 외교관들은 또 WSJ에 "이러한 외교 채널은 미국과 이란 간 메시지 교환이 비밀리에, 빠르게 이뤄지고 오직 의도된 수신자에게만 도달할 것이라 믿어지기에 효과적"이라며 "백채널에서의 진술은 항상 정교하고, 외교적이며 감정이 배제된 채 이뤄진다"고 전했다.

스위스가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는 데에는 세계 평화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자국의 이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제 정세와 관련한 정보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인데 WSJ는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 해제 당시 스위스 기업들이 경쟁국들보다 앞섰다"고 전했다.

아울러 최근 스위스 외교관들은 스위스 은행들로하여금 제재 대상이 아닌 품목들에 한해 이란에 수출 자금을 댈 수 있도록 미국으로부터 허가를 얻는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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