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그린존'은 왜 계속 공격받을까

머니투데이 김수현 기자, 박준이 인턴기자 2020.01.0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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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존, 대사관뿐 아니라 이라크 관공서·의회 건물 등 밀집…반정부·반미 시위대 모두 공격 타깃 삼아

지난해 12월31일 미국 대사관이 공격받자 미군이 아파치헬기를 띄워 대사관을 보호하고 있다. /사진=AFP지난해 12월31일 미국 대사관이 공격받자 미군이 아파치헬기를 띄워 대사관을 보호하고 있다. /사진=AFP


이라크 바그다드 대사관 밀집 지역인 '그린존'에 로켓 2발이 떨어졌다. 해외 공관이 모여 있어 보안이 철저한 이곳은 안전지대(그린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최근 잇따른 공격을 받고 있다.

이슬람국가(IS) 격퇴 국제연합군(OIR) 대변인 마일스 카긴스 대령은 트위터를 통해 "현지시간으로 8일 오후 11시 45분 바그다드 그린존 안에서 로켓 두 발이 떨어졌다"며 "사상자나 시설 피해는 없다"고 확인했다.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악화하면서 그린존을 겨냥한 로켓포 공격은 지난 두달간 심심찮게 일어났다. 이날도 이라크 미군기지에 이란이 미사일을 발사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각별한 관심이 쏠린다. 로이터통신은 이란 경찰 관계자를 인용해 로켓 중 적어도 1발은 미국 대사관에서 100m 이내에 떨어졌다고 전했다.

전날 이란은 미군 주도 연합군이 주둔해 있는 이라크 내 아인 알 아사드 공군기지와 아르빌 군사기지 등 2곳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 지난 3일 미국이 드론(무인기) 공습으로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사살한 데 대한 보복 조치였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사망한 이튿날에도 그린존은 2발의 로켓포 공격을 받았다.



그린존, 왜 자꾸 공격받나?
그린존은 미군이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폭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정했다. 이라크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미국은 이라크 주둔 미국의 안전 문제를 들어 그린존 개방을 반대하고 있다. 앞서 2015년과 2018년 이라크 정부는 시민들의 그린존 개방 요구가 빗발치자 이 지역을 잠시 일반에 개방한 적 있지만 이내 다시 봉쇄했다.

외부와 차단돼 요새화된 그린존은 오히려 테러범들의 공격 대상이 돼왔다. 특히 미국과 이란 등 중동 저항세력 간 교전이 심화할 때면 그린존은 주요 타깃이 됐다. 미군 기지나 그린존 공격의 배후가 정확히 밝혀진 적은 없지만 미국은 이란의 사주를 받은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PMF)를 지목해왔다.

이에 대해 CNN은 "최근 몇 달동안 그린존과 주변 지역에 수많은 로켓 공격이 있었다"면서 "최근 2주간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그린존 내부는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라크 반정부 시위대의 공격 타깃 되기도
이라크 대학생들이 정부의 부패 청산과 경제난 해결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FP 이라크 대학생들이 정부의 부패 청산과 경제난 해결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FP
'그린존'은 정부에 불만이 쌓인 이라크 시민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린존에는 대사관뿐 아니라 이라크 중앙정부 관공서와 의회 등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부터 시작돼 넉달째 이어지고 있는 이라크 반정부 시위에서도 시위대는 이틀만에 그린존을 공격했다. 부패청산, 경제난 해결 등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는 "이라크 정부가 원유를 팔아 번 돈을 주민들의 복지로 전환하지 않는다"며 그린존으로 향했다. 군경의 유혈진압에 지금껏 시민 약 450명이 사망했으나 시위대는 그 기세를 꺾지 않고 있다. 앞서 2016년에는 반정부 시위대가 그린존에 침입해 의회 건물을 약탈하고 행정 운영을 중단시킨 바 있다.

이라크 내 반미세력의 구심점
이라크 반미 시위대들이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사살당한 지난 3일(현지시간) 성조기를 찢고 있다. /사진=AFP이라크 반미 시위대들이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사살당한 지난 3일(현지시간) 성조기를 찢고 있다. /사진=AFP
지난해 12월 31일과 새해 첫날에는 그린존 내 미 대사관에서 격렬한 반미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달 29일 미군이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조직인 카다이브 헤즈볼라(KH)의 군사시설을 폭격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친이란·반미 시위대 수천명이 미 대사관을 포위한 채 "미국 반대" "트럼프 반대" "미국에 죽음을"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부는 대사관 외벽과 감시초소에 불을 지르고, 차량 출입문과 감시 카메라를 부쉈다. 미군과 보안요원들은 최루탄을 쏘면서 내부에 진입하려는 시위대를 막아섰다. 아파치 헬기 2대와 해병대 100명을 투입되기도 했다.

그린존이 고도의 보안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시위대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라크 군과 경찰이 시위대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린존 내에서 반정부 시위와 반미 시위가 같이 벌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이란의 내정간섭에 반대하는 반정부시위대는 친이란·반미 세력과 거리를 두려 해왔지만 최근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폭사로 반미 여론이 높아지고 반이란 동력이 희석되면서 두 시위대는 점차 결속하고 있다.

이라크 바그다드 그린존 내 의회 건물 앞에서 이라크 시민들이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PMF) 부사령관 겸 카타이브-헤즈볼라 창설자를 추모하고 있다. 그는 솔레이마니와 함께 미군에 의해 사살당했다. /사진=AFP이라크 바그다드 그린존 내 의회 건물 앞에서 이라크 시민들이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PMF) 부사령관 겸 카타이브-헤즈볼라 창설자를 추모하고 있다. 그는 솔레이마니와 함께 미군에 의해 사살당했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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