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트럼프의 '선택과 집중'

머니투데이 강민수 기자 2020.01.08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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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은 '선택과 집중' 예찬론자였다. 답 없는 과목은 버리고, 그 시간에 잘하는 과목에 힘써라. 나무랄 데 없는 기적의 논리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선택과 집중'의 끝판왕이었다. 비영리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CRF)의 리처드 하스 회장은 그의 외교 정책을 이렇게 평가한다. "이란과는 외교를 거부했고, 북한과는 외교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다." 2018년 5월 이란핵합의(JCPOA)를 일방적으로 탈퇴한 트럼프는 한 달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싱가포르에서 악수를 나눈다. 무엇을 선택하고 집중했는지 한눈에 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기적의 논리도 허점은 있다. 선택이 반드시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외교 정책은 채 2년도 되지 않아 밑천을 드러냈다. 김정은은 새해 첫날 "새로운 전략무기"를 언급하며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등 도발 가능성을 내비쳤고, 이란은 미군이 자국 군부 실세를 사살한 데 반발하며 "가혹한 보복"을 예고했다. 올해 재선을 앞둔 트럼프로서는 새해 초부터 역대 최악의 외교 악재가 겹친 셈이다.

가장 큰 맹점은 애초에 트럼프의 정책이 "전략보다는 희망에 가까웠다"(뉴욕타임스·NYT)는 것이다. NYT는 "경제적 인센티브만으로 모든 국가적 이해관계를 극복할 것이란 트럼프의 확신이 핵심 문제"라고 지적한다. 중동 지역의 군사 최강자로 다시 군림하겠다는 이란의 결단을, 독재·세습 정권을 유지할 유일한 보험은 핵무기라는 김정은의 믿음을, 트럼프는 과소평가했다. 결국 양국의 차이를 무시한 채 돈만 앞세운 '선택과 집중'은 "아무런 공포심도, 존경심도 자아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워싱턴포스트·WP)



트럼프가 외교 난관에 봉착한 이유는 단순히 북한을 선택하고, 이란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외교 상대국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 돈과 힘으로 밀어붙이는 태도, 모호하고 추상적인 약속과 보여주기식 외교 방식에 기인한다. 문제는 이러한 선택이 중동·미국의 수천만에서 수억명 인구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주요 동맹국까지 여파를 미친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잘못된 '선택과 집중'은 단순히 눈물 젖은 성적표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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