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무방비로 안 당해"… EU, 자구책 만든다

머니투데이 임소연 기자 2019.12.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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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우회, 독자 제재 가능케 하는 대안 마련…'러시아산 LNG' 갈등도 밀어붙이기

4일(현지시간)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신임 위원장이 브뤼셀 EU 회의장에서 연설하고 있다/사진=AFP4일(현지시간)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신임 위원장이 브뤼셀 EU 회의장에서 연설하고 있다/사진=AFP


유럽이 미국의 일방주의에 당하지 않겠다면서 살길을 찾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12일(현지시간) 국제 무역규정을 위반하는 국가에 EU가 독자적으로 제재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내놨다.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간 분쟁 최종심 격인 상소 기구가 미국의 ‘보이콧’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면서 EU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다.

필 호건 EU 무역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무방비로 있을 수 없다“며 "우리의 무역 상대국이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 기업과 노동자, 소비자들의 이익을 위해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WTO 상소 기구는 최근 미국의 상소 위원 선임 반대로 ‘정족수’가 부족해지면서 기능이 마비됐다. 7명 정원 중 정족수인 3명만 있었는데, 이중 2명이 임기가 끝났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WTO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며 자국에 불리한 결정만 한다고 주장해왔고 상소기구 위원의 후임 인선을 계속 거부해왔다.

WTO는 회원국이 독자적으로 대응 조치를 만들어 부과하는 걸 금지하고 있으나, 호건 집행위원은 EU는 자구책을 찾을 수밖에 없고 조치는 국제법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블룸버그통신은 EU의 이번 움직임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고 해석했다. EU식 대안은 내년 중순쯤 시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싼 미국산 보다 러시아산 LNG가 이득"
독일 루브민에 연결된 노르드스트림2 파이프라인의 일부/사진=AFP독일 루브민에 연결된 노르드스트림2 파이프라인의 일부/사진=AFP
EU는 또 거세지는 미국의 반발과 훼방에도 러시아 액화천연가스(LNG) 송유관 사업 ‘노르드스트림2’을 거의 완공했다.

11일 미 의회 하원은 파이프라인 사업에 자금 등을 지원하는 기업을 제재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하원은 ‘2020 국방 수권 법안 수정안(NDAA)’에 행정부가 파이프라인 사업에 관련된 기업과 개인의 미국 비자를 취소하고, 재산을 동결할 수 있는 권한을 담았다. 해당 안은 상원을 거쳐 트럼프 대통령 인가를 받아 발효된다.


1550억 달러(160조 원) 규모에 달하는 노르드스트림2은 러시아에서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서유럽으로 곧장 연결되는 파이프라인 건설 작업이다. 파이프라인이 연결되면 기존에 거치던 우크라이나를 우회해 서유럽으로 직접 매년 LNG 약 7000억 배럴 이상을 공급할 수 있다. 현 공급량의 2배다.

미국은 유럽의 대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높이고, 궁극적으로 러시아가 유럽 시장에 깊이 침투할 수 있게 만든다며 파이프라인 건설에 반대해왔다. 이는 공식적인 이유다.

그러나 EU 국가들은 ‘LNG 시장 패권’을 유지하려는 게 미국의 진짜 의도라고 본다. 티모시 애쉬 블루베이에셋의 선임 신흥시장 전략가는 “(사업에 반대하는) 미국 의원들은 표면적으로나마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도발 우려 때문에 사업에 반대한다고 말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순전히 경제 때문”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28개국 약 5억5000만 명의 인구가 있는 EU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수출지로, 특히 LNG 수출에 있어 가치가 높다. 그런 EU가 미국산 LNG 수입을 늘리긴커녕 러시아에서 더 많은 양을 빠르게 공수하겠다고 하니 미국은 애가 탈 수밖에 없다. 현재 EU는 천연가스의 69%를 수입하고, 그중 37%가 러시아산이다. 게다가 최근 중국도 러시아와 손잡고 3000km에 달하는 LNG 송유관 ‘시베리아의 힘’을 개통했다. 미국이 완공 직전의 ‘노르드스트림2’에 대유럽 제재안을 마련한 이유다.

EU는 미국에 굴복해 비싼 LNG를 쓰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특히 독일 정부는 미국발 제재에 진작 대비해왔고 ”독일과 유럽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외국의 제재를 거부한다“고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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