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폭언은 줄었지만 '카톡'은 계속 옵니다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2019.12.16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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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50일

상사 폭언은 줄었지만 '카톡'은 계속 옵니다






#1.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A씨(33)는 지난 8월부터 상사의 은근한 괴롭힘에 시달렸다. 상사는 별다른 이유 없이 A씨의 근태를 수시로 지적했고, 타 부서에서 A씨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는 없는 말도 지어냈다. 2달간 스트레스를 받은 A씨는 결국 회사에 해당 사실을 알렸고, 그제야 상사의 괴롭힘도 멈췄다.



#2. 4년째 홍보회사에 근무하는 B씨(27)의 내년 소원은 부서 이동이다. 부서장의 시도 때도 없는 전화와 업무지시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다. 지난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으로 나아질까 기대도 했지만, 그것도 한순간일뿐. 연말이 되니 다시 상사의 전화가 기승을 부린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50일이 넘었지만, 업무 현장에는 여전히 제도가 안착하지 못한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갑질 근절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조직문화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1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7월16일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이후 11월21일까지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총 1619건이다. 신고된 사례 가운데 8건은 고용부 조사로 사업주가 검찰에 기소의견 송치됐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로 향하는 갑질 상담 건수도 늘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전 갑질 상담 이메일은 일평균 10~15건이었지만, 최근에는 약 30%가 늘어 일평균 20~25건이라고 한다.

은근한 괴롭힘 계속…최고는 '지나친 업무지시'
직장인 대부분은 폭언·욕설 등 이른바 '대놓고 갑질'은 줄었지만 은근한 괴롭힘이 계속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회식 참석을 강요하거나 업무시간 종료 한참이후에도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이용해 업무지시를 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10월 직장인 72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직장 갑질 경험 비율은 69%에 달했다. 응답자 가운데 18.3%가 '업무과다' 갑질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어 △욕설·폭언 16.7% △근무시간 외 업무 지시 15.9% △행사·회식참여 강요 12.2% △사적용무·집안일 지시 8.6% △따돌림 6.9% △업무배제 6.2% △성희롱·신체접촉 5.4% 순으로 나타났다.

수행기사 경력 15년의 C모씨(54)도 상사의 은근한 갑질에 못 이겨 일을 그만뒀다. C씨의 상사는 주행 중 끼어들기를 강요하거나 세차 상태가 맘에 안들면 불같이 화를 냈다.

C씨는 "다음 날 출근 시간이 당겨졌다는 카톡을 새벽 1시가 넘어서 보내기도 하고, 뒷좌석에서 혼잣말로 계속 나에 대해 불평하는 등 갑질을 당했다"며 "직접 욕설은 없어도 은근한 스트레스 때문에 병에 걸렸다"고 말했다.

김현정디자이너 / 사진=김현정디자이너김현정디자이너 / 사진=김현정디자이너
인식 변화는 '긍정적', 제도 안착 위해서는 노력 필요
사회 곳곳에서 현재진행형 갑질이 벌어지고 있지만, 공감대 형성과 인식이 제고되는 등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 직장갑질119가 조사한 결과 지난 6월 33.4%에 머물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인지도는 10월 조사에서는 2배 가까이 증가한 77.2%로 집계됐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법 시행에 대한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졌고, 폭언·폭행·모욕은 줄었다는 느낌은 받고 있다"면서도 "직장 내 일반적 부당한 지시 등 은근한 괴롭힘은 여전하다는 것이 제보자들의 반응"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갑질 근절을 위해서는 꾸준한 의식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직원들을 대상으로 갑질 사례나 폐해 등을 교육해 모호하게 남은 영역을 줄여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병규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신고 건수가 늘어나는 것은 기존에 사람들이 모르거나 감수하던 것들을 법 시행 이후 적극성 띄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며 "가장 필요한 것은 정부 차원에서 관리자·직원 교육을 의무화하는 식으로 직장 갑질 근절 계도·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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