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집 나간 文 정부 혁신성장 DNA

머니투데이 세종=최우영 기자 2019.12.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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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차 혁신성장 전락회의'. /사진=김창현 기자 chmt@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차 혁신성장 전락회의'. /사진=김창현 기자 chmt@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철학을 뜻하는 'J노믹스'는 일자리경제·소득주도성장이라는 수요 정책과 공정경제·혁신성장이라는 공급확충 정책으로 이뤄진다.

취임 3년차를 맞아 일자리는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고용 상황이 개선되면서 저소득층과 중간계층을 중심으로 수입이 증가하는 등 소득 격차도 완화되고 있다. 대기업 순환출자 고리는 90% 이상 해소되고 대중소기업 상생협력기금이 지난 9월 1조741억원이 쌓이는 등 공정경제도 서서히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다른 세 바퀴와 달리 혁신성장은 헛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은 임기 동안 경제 분야 성패를 가르기 위해 남은 과제는 잃어버린 혁신성장 DNA를 찾는 것이다.



◇"혁신은 해야겠는데 타다는 안돼요"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은 답보상태를 넘어 역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차량호출서비스 '타다'다. 한국형 우버로 불리는 차량공유서비스 '카카오 카풀'이 택시업계의 반발로 사실상 중단된 데 이어 차량호출서비스 타다는 렌터카 업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검찰에 기소됐다. 지난 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사실상 타다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운수법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정부가 규제혁신을 외치며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신산업 창업은 규제 가시밭길을 걷는다는 게 스타트업 업계의 평이다. 심지어 타다처럼 기존 산업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없던 규제까지 만들기도 한다. 규제샌드박스를 통과한 유전자 검사기업은 명목상 검사항목을 12개에서 25개로 늘릴 수 있게 됐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기관생명윤리위원회 심의를 받아야하는데 이 조건이 규제로 작용한다.



데이터산업은 국회에 발목이 잡혀있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등 이른바 '데이터 3법'은 국회에 상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신산업 19개 분야 중 12개가 데이터 3법에 막혀있다. 핀테크, AI 고도화를 위한 빅데이터 활용, 원격진료 등에 대못처럼 박혀있는 규제는 다른 경쟁국과 한국의 혁신 격차를 점점 벌리고 있다.

실종된 컨트롤타워·방향 없는 혁신 전략
이 같은 혁신산업의 좌초는 신산업전략을 이끌 컨트롤타워의 부재 때문이라는 평이다. 지난해 6월 출범한 혁신성장본부는 미래차, 드론, 재생에너지, 인공지능, 핀테크, 스마트시티, 스마트팜, 스마트공장 등 '8대 핵심 선도사업 전략'을 주도한 컨트롤타워를 지향했다. 기재부 1차관과 국장급 4명을 포함해 각 실국의 핵심인력 30명을 배치했다.

하지만 본부에 이름만 걸어놓고 기존 부서 업무를 병행하는 인원이 상당수였다. 본부가 주도권을 쥐려던 규제혁신 작업은 문 대통령이 혁신성장 드라이브를 걸면서 각 주무부처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청와대 인사들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면서 임시조직인 혁신성장본부가 혁신성장을 컨트롤할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 혁신성장본부가 고립되다보니 정부부처 사이에선 '혁신 아오지'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지난 정부의 '창조경제'와 마찬가지로 이번 정부의 '혁신성장' 역시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해소되지 않았다. 8대 핵심 전략이라는 브랜드는 시간이 지나면서 시스템반도체를 추가한 '9대 전략'으로 바뀌었다가 지난 9월 DNA+BIG3(데이터·네트워크·AI+시스템반도체·바이오헬스·미래차)로 변경하며 말잔치에 그쳤다.

◇4차산업혁명 대비한 창조적 파괴가 관건
문재인 정부 초대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은 "J노믹스 중 혁신성장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4차산업혁명시대에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고, 공정경제는 중소·중견기업의 성장동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며 "슘페터식 성장전략 또한 이 정부의 경제철학"이라고 설명했다.

슘페터식 전략이란 기존의 기술과 제품, 시장관행 등 낡은 것을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질서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슘페터는 미국 일리노이 지역에 철도가 깔릴 당시 급속한 도시화로 주변지역 농업이 쇠퇴했지만 일리노이 중앙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업기회가 생겨나는 점을 강조했다. 기존 택시·렌터카 사업자의 기득권을 위해 신산업 규제에 앞장서는 현 정부의 방향은 이 같은 창조적 파괴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 교수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에서 근로자 등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 대한 지원은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면서도 "타다금지법처럼 신성장산업을 콕 찍어 제재하는 것은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혁신은 민간이 새 분야에 뛰어들어 부가가치를 창출하면서 소비자 후생과 일자리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며 "혁신성장을 포함한 경제 정책은 비경제적 논리의 개입을 막고 철저히 경제논리와 원칙에 의해 처리하면서 정부는 규제를 합리화하는 쪽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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