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발 우려에…트럼프, 홍콩인권법 거부권 시사

머니투데이 뉴욕=이상배 특파원 2019.11.2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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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브리핑] 트럼프 "난 시진핑과 함께 서 있어"…시진핑 "무역합의 원하지만, 필요하다면 반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홍콩인권민주주의법안(이하 홍콩인권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법안 서명시 중국의 반발로 무역합의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 탓이다. 그러나 설령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의회의 재의결이 확실시된다는 점에서 법률 발효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트럼프 "난 시진핑과 함께 서 있어"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홍콩인권법안에 서명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우리는 홍콩과 함께 서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서 있기도 하다"면서 "잘 살펴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는 "한편으로 나는 홍콩과, 자유와 함께 서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상 최대의 무역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 있기도 하다"며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엄청난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인권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라고 해석했다. 앞서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무역협상을 고려해 홍콩인권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법안에 서명할 경우 중국과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미중 무역협상이 파산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전날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는 홍콩과 관련된 (미국의) 법안에 대해 단호하게 반격을 취할 준비가 돼 있다"며 법안 서명시 보복을 경고했다.

앞서 미 상·하원을 통과한 홍콩인권법안에는 미 행정부가 매년 홍콩의 자치수준을 평가해 관세·투자·무역 등에 대한 특별지위 유지 여부를 결정토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홍콩의 인권을 침해한 책임이 있는 인사들에 대해 미국 비자 발급을 거부하고 미국내 자산을 동결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안이 의회에서 행정부로 이송된 지난 21일로부터 10일째 되는 12월1일까지 이 법안에 서명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만약 서명하면 즉시 법률로 발효된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의회는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법안을 재의결할 수 있다. 이 경우 대통령은 더 이상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고 법안은 법률로 확정된다.

마켓워치는 "상원과 하원이 압도적으로 홍콩인권법안을 의결한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재의결에는 문제가 없다"고 전했다. 홍콩인권법안은 미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하원에선 찬성 417표 대 반대 1표로 가결됐다.

이날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홍콩에 대한 군 투입을 막지 않았다면 홍콩이 사라지고 수천명이 숨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콩인권법안 거부시 닥칠 비난을 피하기 위해 홍콩 문제에 대한 자신의 노력을 부각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은 홍콩 외곽에 군인 백만명을 배치해두고 있다"며 "그들이 (홍콩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내가 시 주석에게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무역협상에 엄청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아니었다면 홍콩은 14분 만에 소멸(obliterated)됐을 것"이라며 "내가 아니었으면 홍콩에서 수천 명이 숨졌을 것"이라고 했다.

미중 무역합의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안겼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무역합의가 잠재적으로 매우 가까워졌다"며 "결론적으로 우리는 합의를 이룰 아주 좋은 기회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 주석은 내가 바라는 것보다 훨씬 더 합의를 이루길 원한다"며 "나는 합의 여부를 놓고 불안하지 않다. 우리는 (대중) 관세로 수천억 달러를 벌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이 최근 '(미국과) 상호 존중과 평등에 기반해 1단계 합의를 이루고 싶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그의 '평등'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대등한 합의가 될 수 없다"며 "기존의 무역 불균형으로 인해 미국은 바닥에서 시작한 반면 중국은 이미 천장에 있다"고 주장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별도로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국과의 무역 합의가 임박했다"면서도 "하지만 난 합의를 할 준비가 되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에 추가 양보를 압박하는 발언으로 분석된다.

◇시진핑 "무역합의 원하지만, 필요하다면 반격"

앞서 시 주석은 같은 날 블룸버그통신 주최로 베이징에서 열린 신경제 포럼에서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등을 만나 "우리는 무역전쟁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미국과 무역합의를 위해 일하고 싶다"면서도 "필요하다면 반격하길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선임애널리스트는 "시 주석의 발언은 중국이 무역합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했다.

미중 고위급 협상단은 지난 10월11일 미국 워싱턴 협상에서 1단계 무역합의, 이른바 '스몰딜'(부분합의)에 도달했지만 아직 합의문에 서명하진 못했다. 양국은 당초 11월 중 서명을 추진했지만 실무협상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최종 타결이 미뤄지고 있다.

중국은 기존 추가관세 철회를 1단계 무역합의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반면 미국은 중국의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 강제 기술이전 방지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관세 철회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무역합의를 위해 홍콩인권법안 서명을 거부할 수 있다는 소식에 뉴욕증시는 사흘만에 반등했다.

22일 뉴욕증시에서 우량주(블루칩) 클럽인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109.33포인트(0.39%) 뛴 2만7875.62에 거래를 마쳤다. 대형주 위주의 S&P(스탠다드앤푸어스) 500 지수는 6.75포인트(0.22%) 상승한 3110.29를 기록했다. 나스닥종합지수는 13.67포인트(0.16%) 오른 8519.88에 마감했다.

인포마 파이낸셜인텔리전스의 라이언 노먼 전략가는 "트럼프 대통령은 몇주 전부터 1단계 무역합의가 가까워졌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합의문에 서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지금처럼 주식이 고평가된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불안해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뉴잉글랜드투자그룹의 닉 지아쿠매키스 회장은 "시장은 무역협상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황에 익숙해졌다"며 "다소 일찍 시작된 연말 '산타랠리'가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낙관론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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