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열병에 떠는 심장병 환자들, 왜?

머니투데이 유희석 기자 2019.11.13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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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항응고제 헤파린, 돼지 창자서 추출
ASF로 中 돼지 급감…헤파린 생산 차질 전망
내년 초쯤 부족 사태…WHO, "재고 확보하라"

돼지열병에 떠는 심장병 환자들, 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중국, 한국 등 아시아 곳곳을 휩쓸면서 제약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수천만 마리가 넘는 돼지가 한꺼번에 도살 처분되면서 돼지 창자에서 추출하는 중요한 약품 원료 생산에 차질이 예상돼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혈액 항응고제의 핵심 원료인 헤파린(heparin)이다. 1922년 처음 발견된 헤파린은 고등동물의 창자나 폐 등 내부 장기에서 생성되는 천연물질로 혈액의 응고나 혈전을 방지하는 효과가 뛰어나다.



헤파린은 특히 심장마비 환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약이다. 동맥이 막힌 심장마비 환자는 규칙적으로 헤파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주요 정형외과와 심장 수술 과정에서도 꼭 필요한 물질이다. 프로타민황산염이라는 해독제도 있어 부작용 우려도 적다.

중심정맥 카테터(중심정맥에 삽입되는 관의 일종)를 낀 환자나 수혈을 받는 환자, 인공투석과 인공심장 환자 등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 항응고제다. 협심증 치료를 위한 관상동맥 스텐트에도 헤파린이 들어간다.



헤파린은 보통 주사나 정맥주사를 통해 환자에 투약 되는데, 미국에서만 매년 1000만~1200만명이 처방받고 있다. 세계에서 거래되는 헤파린 규모는 연간 200t 정도로, 금액으로는 50억달러(약 5조8155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ASF로 유례없이 많은 돼지가 한꺼번에 사라지면서 헤파린 생산에도 비상이 걸렸다. 세계 최대 돼지 사육 국으로 그동안 헤파린 생산의 60~80%를 담당하던 중국에서 돼지 개체 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헤파린은 소나 양의 폐나 창자에서도 추출이 가능하지만, 1990년대 유럽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이후 대부분 돼지 창자를 통해 생산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소나 양 등 다른 동물에서 헤파린을 추출하려면 당국의 엄격한 품질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 시간이 걸리고 다른 혈액 응고제도 있지만, 헤파린보다 안전하지도 싸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지난 6월 각국에 "헤파린을 필수 의약품으로 여기고 충분한 재고를 확보하라"고 권고했다. 미 식품의약청(FDA)은 지난 7월 미 의회에 "앞으로 6~9개월 정도 뒤에는 (헤파린 부족이) 미국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했다. 내년 초에는 헤파린 부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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