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남녀 갈등의 새로운 씨앗인가, 사회평등을 위한 통과의례인가.
영화가 개봉된 후, 갈등 논쟁도 심화했다. 더불어민주당 장종화 청년대변인이 남자도 ‘남자다움’이 요구된 삶을 살았다며 ‘남성도 차별받는다’는 취지의 논평을 내 남녀 갈등을 부추겼고 김나정 아나운서는 “불편하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김 아나운서는 특히 “여자가 불평등하고 매사에 부당하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너무 우울할 것 같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못살게 구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남자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그다음 여자는 가져도 되고 안 가져도 되는 구습에 박힌 본능이 움직인 셈이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속내는 여전히 ‘남성 중심’의 사고를 버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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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점 테러의 네티즌들은 “요즘 그런 시대가 아니다”며 “너무 구시대적 관습에 젖어 현실을 해석한다”고 비판한다. 또 영화에서 그리는 남성 캐릭터들이 힘든 내면의 모습보다 위선의 위로로 그려진 부분에 대해서도 현실을 도외시한 장면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일부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은 “극 중 남성 캐릭터들을 너무 멋있게 그려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쓴소리도 던져 남녀 갈등 논쟁을 도마에 올렸다.
반면 영화가 남녀평등, 나아가 사회평등의 통과의례라는 시선을 잘 투영했다는 목소리도 넘친다. 구시대적 가치관을 자주 등장시킨 비판에도 불구하고 영화 자체가 지닌 힘과 호흡, 우리가 돌아봐야 할 미래지향적 태도에 대한 얘기를 제대로 꼬집었다는 것이 호평의 배경이다.
남녀 능력은 동일한 잣대에서 평가되어야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달라져도 ‘가부장적 속성’은 무의식에서 여전히 꿈틀거린다. 이 무의식은 지영이 버스에서 성추행하는 남자를 피해 아버지를 만난 자리에서도 이어진다. “바위가 굴러오면 피할 생각을 해야지” 가해자의 공격보다 피해자의 방어 논리에 초점을 맞춘 아버지의 발언은 과거보다 줄었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은연중 내비치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현실적으로 젠더 문제를 들여다보면 많이 변한 것처럼 얘기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변하지 않은 게 더 많다”며 “무엇보다 ‘나’의 문제로 들어올 때 실감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지점을 영화가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비교적 덜 포용적인 소설과 달리, 영화적으로는 ‘기생충’ 버금갈 정도로 모든 캐릭터에 힘을 실은 훌륭한 작품”이라며 “구시대적 장치 사용이라는 비판을 넘어서는 ‘미래지향적 담론’이 온전히 살아 숨 쉰다”고 평가했다.
소설이 김지영을 중심축으로 놓고 나머지 인물들을 들러리로 내세운 반면, 영화는 김지영과 인물들을 수평적으로 내세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무게 중심을 잘 유지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대와 맞지 않는 ‘피해자 여성 코스프레’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역사적으로 여성들이 어떻게 당해왔는가를 인식하면 그 작은 비판들은 우리 사회평등의 통과의례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했다.
김지영은 가끔 ‘빙의’해 제 목소리를 내는데, ‘우리 사회가 지금 이렇다’는 상황을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전달한다. 그렇게 내는 목소리가 정답일 것 같은데, 아직 우리는 거울 속 자신에게만 ‘빙의’해 속삭이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