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맨’에서 장성규는 재미를 위해 무엇이든 보여줄 수 있다. 회사의 철학을 모호하게 설명하는 이사에게 “이런 이사님께서 회사 이끌어가시는 거 맞아요?”라고 일침을 가할 수도 있고, 공익 출신이면서도 해병대를 나온 사장이나 직원에게 “대가리 박아”라고 말하며 군대 문화를 조롱할 수도 있다. 때때로 직원들에게 일을 하지 말자면서 태업을 종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워크맨’은 직장 상사들을 놀리기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장성규가 자신이 겪는 모든 순간마다 ‘막 던지는’ 멘트가 핵심이다. 그가 ‘막 던지는’ 멘트들은 반드시 위만을 향하지 않는다. 그는 소개팅 앱에 시범으로 사진을 등록하는 인턴 PD나 호텔 직원의 사진을 보고 “실물과 다르다”라며 품평을 하고, 직원식당에서 돈까스를 두 개 떠오라는 무리한 요구에 자신의 것을 같이 먹자고 말하는 여성 직원에게 “착해 빠져가지고”라며 공격한다. 키즈카페에서는 홍고추를 들고 있는 아동 앞에서 “오 고추 크다 부럽”이라는 성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워크맨’에서 장성규는 직장생활의 애환을 보여주며 직장의 문제들을 꼬집기도 하는 ‘슈퍼히어로’ 같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콘셉트 안에서 ‘빌런’처럼 누구나 공격할 수 있다는데 있다.
JTBC에서 아나운서로 재직 중이던 2016년, 장성규는 아침 뉴스를 그만두고 유튜브 채널 ‘짱티비씨’를 통해 1인 크리에이터에 도전했다. 스스로 “처음으로 내 의견이 많이 반영되고 대본에 얽매이지 않았던 콘텐츠”라 밝힌 이 채널에서 그는 이미 ‘선을 넘는’ 개그를 보여주고 있었다. “(JTBC ‘아는 형님’에서 서장훈이) 계속 말을 걸어준다”라는 말을 하다 “(질문을) 따먹으라고?”라는 질문을 받자 “어 따먹으라고? 누구를?”이라고 답했고, ‘예쁜 후배가 내 가슴을 만진다면’이라는 상황을 가정하고 여성이 남성의 가슴을 만지는 행동이 호감인지 성희롱인지를 구별하는 콩트를 보여주기도 했다. 여성을 음식에 비유하며 성적 대상화하고, 실제로 여성이 성희롱을 경험하는 비율이 훨씬 높은 현실을 왜곡하면서 웃음의 소재로 삼은 것이다(여성가족부의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희롱 행위자 성별은 남성이 83.6%다). 또한 그는 편의점 음식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씨유세끼’에서도 트레이닝을 위해 그의 신체 상태를 설명하는 여성 필라테스 강사에게 “불쾌한데요? 112 좀 눌러봐”라고도 말했다. 그가 여성을 “따먹는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누가 약자이고 강자인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장성규는 오히려 스스로를 약자의 위치에 두며 이를 ‘선 넘기’의 명분으로 삼는다. ‘워크맨’에서는 하루 종일 힘든 노동을 한 뒤에 얼마 벌지 못했다고 한숨 쉬는 ‘을’이고, ‘아는 형님’이나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에서는 인기 예능인들 사이에서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아나운서 출신 프리랜서 방송인이다.
그러나 그는 약자처럼 보이는 자신의 위치에서 여성 출연자들의 외모를 반복적으로 품평하거나, 재미를 가장해 자신의 “팬”이라 밝힌 참가자의 얼굴을 향해 발길질을 할 수 있다. 장성규의 위치는 ‘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약자로 놓으며 더 약한 이들을 비웃거나 괴롭힐 수 있는 치사한 ‘갑’에 있기도 하다.장성규는 ‘워크맨’에서 맞지 않는 유니폼에 대해 “지퍼 열고 다녀도 돼요?”라고 묻거나 반바지 복장을 지적받자 “벗고 할까 그냥?”이라고 반문하면서 웃음을 유도한다. 대다수의 여성들이 불법 촬영을 두려워할 때, 그는 자신의 신체를 드러내는 데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농담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보다 약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은 채 모든 이들을 일관되게 웃음의 대상으로 삼는다. 장성규는 JTBC의 아나운서 출신이자 인기 예능인이면서도 방송에서는 약자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타인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해 인기를 얻는다. 그리고 자신은 약자든 강자든 누구나 가져야할 품성은 무시한다. JTBC ‘방구석 1열’에서 장성규가 박신양의 연기를 희화화하며 흉내냈을 때, 배우 전도연은 박신양이 이 신을 촬영할 때 했던 고충을 설명하며 “그렇게 가볍게 해서는 안 되는 대사”라고 지적했다. 당시 장성규는 전도연의 말에 “이거는 편집을 해야겠다”라면서 황급히 자신의 행동을 수습했다. 그러나 최선은 일단 선을 넘은 후 뒤늦게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개그를 하기 전에 웃음의 소재가 되는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이다. 열심히 살고 아내를 사랑하며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이 타인에게 무례할 수 있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순발력도 유머 감각도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 내 마음이 열려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언제나 완전히 열려 있는 사람으로 있으려 한다.” 장성규가 자서전 ‘내 인생이다’에서 쓴 문장이다. 실제로 그는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악플과도 소통”해야 한다는 신조를 밝혔고, 자신을 향한 악플에 직접 반박을 달아 인스타그램에 게시하기도 했다. 그가 자신을 향한 비판에 대해 직접 해명하는 것은 좋은 소통의 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SNS에서 경직된 말투를 썼다는 것만으로 사과를 해야 했던 하연수의 사례나, 자신의 자유로운 일상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악플에 시달렸던 故설리의 사례를 떠올리면 악플에 직접 답을 달 수 있는 것은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계를 꾸리는 자영업자의 사업장에서 규정을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타인의 외모를 지속적으로 품평하는 것, 혹은 항공사의 가족 할인 제도에 대해 “배다른 자식도 되느냐”라고 묻는 것처럼 당사자들에게 상처가 되는 발언을 하는 것이 모두 ‘선넘규’라는 아이콘 아래 합리화된다. 그러나, 지금 ‘선넘규’에 웃는 이들이 언젠가 그 웃음의 칼날이 자신을 향할 때도 웃을 수 있을까. 지금의 장성규에게는 선을 넘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