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121년 독점' 전력산업, 한전 해체 기로

머니투데이 세종=박경담 기자, 유영호 기자, 권혜민 기자 2019.11.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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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제자리걸음, 전력산업 구조개편]기형적 전력산업 구조에 사회·한전·소비자 모두 피해… 전문가 “판매경쟁 도입으로 시장 효율화 시급”

편집자주 한국전력이 지난해 6년 만에 적자를 내고 올해 상반기에도 1조 원에 가까운 손실을 보자 그 원인을 둘러싸고 정치·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탈(脫)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 국제 연료값 인상 등을 여러 요인을 놓고 공방이 치열하다. 하지만 독점적 전력시장이라는 구조를 빼놓고 적자사태의 원인을 생각할 수 없다. 우리 전력산업이 지속가능하려면 전력산업 구조개혁이 시급하다.

[MT리포트]'121년 독점' 전력산업, 한전 해체 기로


1887년 3월 6일 경복궁 건청궁. 저녁 어스름이 나직이 깔리자 작은 불빛 하나가 깜빡깜빡 거리다 이내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한반도 최초의 '전깃불'이었다. 11년 후인 1898년 1월 26일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되고 가정·공장 등에 전기 공급을 시작했다. 한국에도 전력산업이 태동한 순간이다. 121년이 지난 지금, 한국 전력산업은 눈부신 경제성장에 걸 맞는 혁신과 고도화를 이뤄냈을까.

한성전기를 모태로 한 한국전력은 세계적 전력 유틸리티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정작 전력산업 경쟁력은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한전 그룹사가 발전, 송·배전, 판매 등 전력산업을 독점하며 몸집을 불리는 사이 국가 경제의 뿌리가 되는 전력산업은 지속가능성이 위협 받고 있다. 한전 중심의 전력산업 구조 해체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1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업계에 따르면 전력산업은 크게 '생산(발전)→수송(송·배전)→ 판매' 부문으로 구분된다.

【광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23일 한전 광주전남본부에 따르면 5월 한 달간 전남 섬지역 주민들에게 무결점 전력공급을 위해 바다를 가로지르는 해월철탑 송전선로를 정밀 점검하고 노후설비 교체작업을 집중 실시했다. 2019.05.23 (사진=한전 광주전남본부 제공)   photo@newsis.com【광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23일 한전 광주전남본부에 따르면 5월 한 달간 전남 섬지역 주민들에게 무결점 전력공급을 위해 바다를 가로지르는 해월철탑 송전선로를 정밀 점검하고 노후설비 교체작업을 집중 실시했다. 2019.05.23 (사진=한전 광주전남본부 제공) [email protected]


121년 독점 전력산업, 지속 가능할까
국내 전력산업은 한전 그룹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발전 부문은 한전 6개 발전자회사 점유율이 80%를 넘고 송·배전 부문은 한전이 100% 독점한다. 판매 부문도 한전을 제외한 10개 구역전기사업자 비중이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기형적 구조 때문에 '한전의, 한전에 의한, 한전을 위한 전력산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독점적 전력시장 구조에 따른 부담은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된다. 독점시장이라는 이유로 정부 규제가 강하다 보니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체계가 고착화 됐다. 전기 요금체계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정책수단으로 활용하는 까닭에 '수요-공급'이라는 시장 기본 메커니즘은 작동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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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고 안전하면서 싼 에너지는 없다"
이는 한전 발목을 잡는 족쇄나 다름없다. 국제 유가 등 원가 변동이 요금에 반영되지 않는 탓에 흑자와 적자가 들쑥날쑥하는 비정상적 실적을 반복한다. 최근 한전 대규모 적자는 국제 원료 가격 상승과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 같은 정책비용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그 배경에는 전력산업 독점과 정부 규제로 한전이 모든 부담을 떠안는 구조가 있다.

소비자도 손해다. '싼 전기요금'이라는 착시를 걷어내면 개별 소비자는 비정상적 요금체계로 피해를 보는 일이 빈번하다. 특히 시간, 계절에 따라 가치가 다른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유인이 없다. 사회 전체적으로 외부비경제 효과도 크다. 자원 배분 왜곡이 이뤄지기 때문인데 2차 에너지인 전기는 파급력이 크다.

송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깨끗하고 안전하면서 싼 에너지는 없다"며 "지금 전력산업이 우리 경제에 걸맞지 않는 후진적이고 왜곡된 형태로 남아있는데 사회적 효용을 낮출 뿐 아니라 미래세대에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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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산업 구조개편, 2004년 중단…"다시 시작할 때"
정부도 부작용을 깨닫고 2001년 전력산업 구조 개편을 추진했으나 노조 반발 등으로 2004년 백지화됐다. 전문가들은 15년 전 멈춘 전력산업 구조 개편을 다시 시작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핵심은 공공재 성격을 가진 '송·배전' 부문을 분리하고 판매 부문에 완전경쟁을 도입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한전이 송·배전을 독점하는 구조에서는 판매경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판매 부문 완전경쟁을 위해선 송·배전망 접근을 중립적으로 차별 없이 개방해야 한다"며 "판매경쟁이 이뤄져야 전력시장이 효율화돼 정부 요금 통제 등이 없어질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수요 독점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우 건국대 산학협력중점교수는 "한전이 전력산업의 모든 것을 독점하는 상황인데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구조"라며 "다만 인위적인 분할을 통한 구조 개편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에너지 전환 정책 추진 과정에서 시장 변화, 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판매경쟁 도입을 촉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가운데)이 15일 경기도 안성시 신안성변전소에서 2019 국가안전대진단 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김 사장은 화재·붕괴·고장 등 비상상황에 대한 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해빙기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한 전력시설물의 안전 여부를 확인했다.(한국전력 제공)2019.3.15/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김종갑 한국전력 사장(가운데)이 15일 경기도 안성시 신안성변전소에서 2019 국가안전대진단 추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김 사장은 화재·붕괴·고장 등 비상상황에 대한 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해빙기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한 전력시설물의 안전 여부를 확인했다.(한국전력 제공)2019.3.15/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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