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촌놈, 서독 뺀질이"…30년이 지나도 여전

머니투데이 임소연 기자 2019.11.08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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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서독' 구분하는 프레임, 시민들 심리적 거리 벌리고…정치엔 도구로 활용

9월 1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전시/사진=AFP9월 1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전시/사진=AFP


"서독 실업률은 '독일 경제' 문제로 이어지지만, 동독 실업률은 '동독이 분노하는 이유'로 해석해버린다" -독일 공영 라디오 언론인

30년 전인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다. 이듬해 독일이 통일됐다. 베를린 장벽은 30년 전 무너졌고 동독.서독은 이제 과거의 필름이나 문서, 책 정도에 남아있지만, 독일인들은 여전히 ‘동독·서독’ 간 보이지 않는 벽을 느낀다. 독일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단순하게 설명하고자 정치와 언론이 사용하는 ‘프레임’ 때문이다.



◇같은 일도 동독서 일어나면 '확대 해석'

독일 공영라디오(DR)는 독일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고 분석하는 데 있어 ‘동독-서독’ 이분법을 쉽게 꺼내 든다고 지적했다. 특히 구 동독지역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을 보도할 때 이런 특징이 도드라진다고 꼬집었다. 최근 독일 튀링겐주 지방의회선거에서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 정당이 득표율 2위를 차지하며 약진하자 언론은 “동독인들의 불만이 극우를 부활시켰다”는 식의 분석을 쏟아냈다.



그러나 2016년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선거에서 AfD가 15% 넘게 득표하고, 북서부 도르트문트시 의회에는 네오나치를 표방하는 당이 입성했을 때 ‘서독의 극우화’ 같은 프레임은 없었다. 즉, 구 동독지역이 서독지역보다 여전히 낙후했다는 고정된 이미지를 재생산하면서 정치·사회적 문제를 ‘동독화’ 하는 경향이 짙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동-서독인들 간 심리적 격차를 더욱 벌리는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게 DR의 지적이다.

요르그 바그너 라디오아인스 저널리스트는 독일 언론 지형이 ‘서독적인’ 시각에 기울어있다고 지적했다. 바그너는 DR에 “주요 언론이 소위 ‘서독적인' 시각으로 독일 내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에 동독을 타자화하는 보도가 많다"며 “동독과 서독을 나누는 프레임은 더는 유의미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선거 보도를 예로 들며 “동독지역 선거든 그 외 지역 선거든 간에 그건 모두 정상적인 투표 결과”라고 강조했다.

관성적인 설문 조사도 프레임을 확산한다. 최근 독일 공영 ARD 조사에서 동독지역 작센주 유권자 66%가 자신들이 ‘2등 시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AfD 지지자 사이에서는 비율이 78%에 달했다. 여론조사기관 알렌스바흐는 구 서독지역 주민과 동독지역 주민에게 ‘자신을 독일인이라고 느끼는가’를 각각 따로 물었다. 서독에선 70%, 동독에선 44%가 ‘그렇다’고 답했다. DR은 이런 설문 조사도 시민들이 서로 이질감을 확인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동독지역 주민 스스로는 ‘자기비하’를 확인하게 만들고, 이외 지역 주민들로선 동독지역이 아직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독일 켐니츠주에서 반정부 시위 참가자들이 '우리가 시민이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사진=로이터지난해 11월 독일 켐니츠주에서 반정부 시위 참가자들이 '우리가 시민이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사진=로이터
◇동독의 '피해의식', 정치인에게는 '표'


정치권에도 ‘동독-서독’ 프레임은 편리한 도구다. 특히 동독지역 출신 정치인들은 지역 편차를 드러내는 수치를 인용하며 표몰이를 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 동독지역 경제력이 지난해 서독지역의 75% 수준이었고, 독일 주가지수 DAX 상위 30개 기업 중 동독지역에 본사를 둔 기업은 하나도 없다.

DR은 이런 수치를 이용해 동독지역 유권자의 감정을 부추길 뿐,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AfD가 작센 등 지방선거에서 “동독이 일어난다” “동독 주민도 독일인이다” 같은 구호를 앞세운 게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마리티나 레너 독일 중부 마인츠시 하원의원은 “나는 서독지역 출신에 좌파당 의원이지만, 동독지역 튀링겐과 에어푸르트 의회에서 일했다”면서 “이제 정치인이 어디 출신인지는 그의 정치 활동에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레너 의원은 오히려 언론과 정부 부처, 대학에서 동독지역의 경제·문화적 인프라 부족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대안 제시를 않는 게 “진짜 불이익이고 문제”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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