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는 독일 '중도 정치'...극단이 깨트린 연정

머니투데이 임소연 기자 2019.10.29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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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좌·극우 약진에 기존 연정구도 깨지고 '극우' 정서 불 붙어…유럽 내 '리더십'도 흔들

27일(현지시간) 독일 튀링겐주 의회선거 결과가 발표된 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 수뇌부의 표정이 굳은 모습이다/사진=로이터27일(현지시간) 독일 튀링겐주 의회선거 결과가 발표된 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 수뇌부의 표정이 굳은 모습이다/사진=로이터


독일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중도 연정이 연달아 무너지고 있다. 극우 정당이 약진하고, 중도 정당이 득표 지분을 잃으면서 온건좌파와 중도 정당만으로는 과반 연립을 할 수 없게 되면서다. 연정을 통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정치 환경을 꾸리던 독일마저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정치 양극화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유럽의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27일(현지시간) 독일 튀링겐주 지방선거에서 사회주의 좌파당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각각 득표율 31%, 23.4%를 얻으며 1, 2위를 차지했다. 전통적 중도 정당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당(CDU)과 사회민주당(SPD)은 3, 4위로 내려앉았다. 현재 좌파당과 SPD, 녹색당이 꾸린 튀링겐주 연정은 이번 투표로 과반이 안 돼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지난 9월 작센주와 브란덴부르크주 선거에서도 AfD가 각각 득표율 2위를 차지하면서 선거 이전의 기존 연정 구조를 깨트렸다.



최다 득표한 좌파당은 다른 정당과 연립해 과반을 차지해야 안정적으로 튀링겐 주의회를 운영할 수 있다. 그러려면 CDU(21.8%)나 AfD와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CDU가 좌파당이나 AfD 같은 극단과 연립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좌파당도 모든 정당이 연립을 거부하는 AfD와 손잡기는 꺼릴 수밖에 없다. 누구와도 연립하지 못하면 좌파당이 소수 정부를 단독 운영할 가능성도 있으나, 이는 ‘연정 정치’ 독일에서 거의 찾을 수 없는 시나리오다. 따라서 연정이 꾸려지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연정의 중도 정치가 약화하면 정책 안정성도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독일 비영리단체 베르텔스만재단 연구에 따르면 극단적 색채를 추구하지 않는 현 연방정부 대연정(CDU·기독사회당(CSU)연합+SPD)은 출범 후 지금까지 총선 입법 공약의 3분의 2 이상을 이행할만큼 국정 운영이 안정적이다. 그러나 울리히 존더만베커 독일 중부지역 공영방송 MDR 기자는 ”2014년 AfD가 주의회에 입성한 뒤부터 논쟁은 더 공격적이고 노골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면서 ”끝까지 갈 기세로 밀어붙이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27일(현지시간) 독일 튀링겐주 의회선거 결과가 발표된 뒤 뵈른 호케(가운데)가 이끄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 지역 위원들이 기뻐하고 있다/사진=로이터27일(현지시간) 독일 튀링겐주 의회선거 결과가 발표된 뒤 뵈른 호케(가운데)가 이끄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 지역 위원들이 기뻐하고 있다/사진=로이터


이번 독일 선거결과가 유럽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정치적으로 안정된 국가인 독일은 사실상 유럽의 ‘지도자’ 역할을 해왔다. 특히 메르켈 총리 재임 15년 동안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유로존 금융위기, 이민 증가 등 굵직한 이슈에서 독일이 해결을 주도해왔다. 트래거 교수는 ”이런 독일의 정당들이 과반을 차지하는 데만 몰두하면서 싸우면 유럽 내 중심을 잡아줄 독일 영향력이 저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fD의 영향력이 연정 지분을 비집고 들어올 만큼 점점 커지는 건 가장 큰 문제다. 2014년 튀링겐주 선거에서 약 10%대에 불과했던 AfD 득표율은 5년 만에 두 배 넘게 뛰었다. AfD가 과거 동독지역 시민들이 가진 ‘반이민’ 정서와 중앙정치로부터의 ‘소외감’에 불을 지르면서다. 뵈른 회케 AfD 튀링겐주 당위원장은 평소 친나치 성향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인물로, 홀로코스트에 대한 독일 반성 노력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 출당 위기까지 내몰렸던 적 있다.

보도 라멜로프 튀링겐주 총리는 "독일에서 ‘홀로코스트’는 일종의 도덕적 레드라인"이라며 "그러나 AfD와 회케가 힘을 얻으면서 그 라인이 지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과 선거 2주 전에는 튀링겐주 인근 작센안할트주 할레의 유대교 회당에서 유대인을 겨냥한 혐오범죄가 일어나 시민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편 AfD는 점점 늘어나는 지지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슈테판 묄러 AfD 튀링겐지부 대변인은 "다른 당이 우리와의 협력을 거부하는데, AfD는 이제 큰 정당이다.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NYT는 "AfD에 표를 던진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소외감에 기성 정당들은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다"고 해석했다. 선거 전 AfD 선거 캠페인에 참석한 은퇴한 미용사 바바라 피들러는 NYT에 "실패한 현 정부는 지긋지긋하다"면서 "투표는 모르겠지만 회케의 말을 들어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3일(현지시간) 독일 튀링겐주 의회선거를 앞두고 '독일을 위한 대안'(AfD) 선거 캠페인에 지지자들이 참여해 응원하고 있다/사진=로이터3일(현지시간) 독일 튀링겐주 의회선거를 앞두고 '독일을 위한 대안'(AfD) 선거 캠페인에 지지자들이 참여해 응원하고 있다/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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