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6월 이건희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계열사 사장단 등 간부 200여명을 불러모아 이같이 말했다. 그는 캠핀스키 호텔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라며 대대적인 혁신을 주문했다.
훗날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알려진 이 회장의 발언은 당시 획기적인 것이었다. 국내 최고 기업으로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어온 삼성의 수장이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조직 현실을 냉혹하게 진단한 것이다.
그러나 '국내 제일'이란 자만에 빠져있던 삼성에서 혁신은 쉽지 않았다. 이 회장은 "우리는 자만심에 눈이 가려져 위기를 진정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가는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등허리에서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실제 당시 삼성의 제품은 동남아 등 일부 시장에서만 성공을 거뒀을 뿐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 싸구려 취급을 받았다.
이 회장은 그해 6월 프랑크푸르트 회의에서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양과 질의 비중을 5대 5나 3대 7 정도로 가자는 것이 아니다. 아예 0대 10으로 가자는 것이다", "나는 20년이 넘도록 '불량은 암'이라고 말해왔다. 삼성은 자칫 잘못하면 암의 말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등의 언급이 이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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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200여명의 임원들은 프랑크푸르트에 한 달여간 머물렀다. 이후에도 회의와 교육이 스위스 로잔, 영국 런던, 일본 도쿄, 오사카 등에서 이어졌다. 약 6개월에 거쳐 1800여명을 대상으로 회의와 교육을 실시했다. 이 회장이 임직원들과 나눈 대화는 350시간에 달했고 이를 풀어 쓰면 A4용지 8500매에 달한다.
이 회장의 위기경영은 계속됐다. 1996년 4월엔 "반도체가 조금 팔려서 이익이 나니까 자기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자만에 빠져 있다"고 경고했다. 신경영 10주년인 2003년엔 '천재 키우기'를 골자로 한 제2의 신경영을 선언했다.
이 회장은 2008년 7월 '삼성 특검' 문제로 법정에 섰을 땐 "삼성전자 같은 회사를 다시 만들려면 10년, 20년 갖고는 안 될 것"이라며 눈물을 내비쳤다.
2010년 3월 경영에 복귀해선 "지금이 진짜 위기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실적이 역대 최고를 구가할 때였다.
이 회장은 같은 해 5월 향후 10년간 바이오·태양광 등 신수종 사업에 23조원, 반도체와 LCD(액정표시장치) 등에 26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2014년부터 총수 역할을 하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6월 전자계열사 사장단을 소집해 주재한 회의에서 "지난 50년간 지속적인 혁신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어려운 시기에도 중단하지 않았던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고 말했다.
이는 시스템 반도체 1위 달성을 위해 133조원을 투자하는 '반도체 비전 2030', 차세대 디스플레이 13조원 투자로 이어지며 삼성전자의 미래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