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도 사람... "창녀 같다 악플에 살인충동"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9.10.1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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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인내만으로 한계 다다른 ‘악플’…“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감정 소용돌이”

지난 14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수 설리. /사진제공=JTBC지난 14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수 설리. /사진제공=JTBC


클래식계 중견 스타인 A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룹 에프엑스 출신 설리(본명 최진리·25)와의 기억을 이렇게 더듬었다. “데뷔 초기였던 때로 기억하는데, 화장실에서 설리가 먼저 ‘선생님, 외로우시죠?’라고 물었어요. ‘왜’라고 반문하니, ‘외로운 사람 눈은 금방 알아보거든요’라고 말하더라고요.”

A씨는 그때 설리는 위축되고 우울하고 외로워 보였다고 회상했다. 설리가 죽기 1주일 전 A씨가 다시 만났을 때 설리는 어느 때보다 쾌활하고 반가워했다고 했다.



“소식을 듣고 외롭고 슬픈 감정을 숨기기 위해 더 쾌활한 척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별일 없느냐’고 한 번 더 물어봐 주고 다독였어야 했는데….”

끊임없는 ‘악플’에 시달리며 자신의 감정조차 왜곡해야 했을지도 모를 어느 소녀의 죽음은 누가, 언제 또 그런 비극과 마주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증폭시켰다. 자신은 죽을 만큼 힘든데, 공적 자리에선 웃어야 하는 역설이 ‘악플’이라는 간단한 손장난 하나로 탄생한 셈이다.



취재 중 만난 연예인들은 대부분 “솔직히 말하면 ‘악플’ 하나에 가슴이 떨린다”고 입을 모았다. 개중 ‘강심장’을 가진 연예인들은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넘어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일반인과 똑같거나 더 민감할 것”이라고 이들은 전했다.

A씨도 “설리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었고 그래서 ‘악플’에 더 민감했을 것”이라며 “연예인이라고 해서 특별한 멘탈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페이스북 등 SNS 팔로워만 10만명이 넘는 연예인 B씨는 ‘선플’의 주인공이다. 악플이 거의 없는데도, 팩트와 다른 얘기를 하거나 추측만으로 한마디 던지는 댓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B씨는 대형 무대에선 어쩔 수 없이 립싱크하는 극소수 사례를 들어 “립싱크 가수”라고 단정한 댓글이 있는 영상을 아직도 못 본다며 “유별나다고 할 수 있지만, 대중 앞에 나름 피땀 흘리며 노력한 대가를 깡그리 무시하는 것 같아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연예인 C씨가 전한 톱 여배우 D씨의 악플에 대한 얘기는 섬뜩할 정도다. C씨에 따르면 D씨는 평소 의연하게 악플에 대처하지만, “하는 짓이 꼭 창녀같다”는 댓글에는 “살인 충동이 일어난다”고 전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이라도 달려가서 해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C씨는 “그런 면에서 설리는 마음이 굉장히 약한 연예인”이라고 말했다.

'나인뮤지스' 멤버인 경리. /사진=뉴시스'나인뮤지스' 멤버인 경리. /사진=뉴시스
여성 연예인을 향한 성적인 악플은 무법천지다. 지난 2013년 9인조 걸그룹 나인뮤지스 멤버 경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올라온 성적 수치심이 가득한 글을 보고 결국 서울 마포경찰서에 고소했다.

한 트위터리안이 올린 트위트에는 ‘너 덮치고 싶어’ 등의 내용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악플이 갈수록 대담해지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습관성 악플이 반복되면서 연예인, 특히 여성 연예인들은 댓글 자체를 피하는 걸 일종의 해법으로 모색한다. 하지만 지인이 관련 악플을 전해주거나 불가피하게 보게 될 경우 받는 상처는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연예인들은 꼬집는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부분 실명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악플러들은 스토커에 가까울 정도로 적극적인 대응을 구사하기 때문에 사실상 (사전) 규제할 방법이 없다”며 “악플러에게 받은 심적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유명인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소송이라는 법적 구제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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