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설리도 최진실도 종현도…악플에 무너진 그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한민선 기자, 최동수 기자, 임찬영 기자, 박가영 기자 2019.10.16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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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살인 上](종합)

편집자주 악플에 시달리던 가수 겸 배우 설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거대 포털사이트와 사회관계망(SNS) 등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악플들이 또다른 '설리'들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댓글망국론'이 나올 정도에 이른 악플 뒤에는 이를 양산하는 거대 포털 및 언론 생태계가 존재하고 있다.

설리가 떠났다, 그제서야 악플이 멈췄다
성희롱·비하·인신공격 등, 숨진 뒤에야 숨죽인 '악플'…SNS 실시간으로 나르던 기사들도

[MT리포트] 설리도 최진실도 종현도…악플에 무너진 그들


"삼류 XXX 같은 애. 덜 떨어진 X. 일부러 벗네."



"그냥 노출증 환자."

"완전 노리고 했던데?ㅋㅋ"



"일부러 저러는 듯."

'당당한 여성'이 되고 싶단 설리에게, 악성 댓글(이하 악플)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여성을 억압하는 브래지어를 당당히 벗은 그에겐 '성희롱'과 '조롱'이 쏟아졌고, 파격적인 패션엔 '노출증'이란 인신공격이 이어졌다. 기사에 악플을 단 이들은, SNS까지 따라가 비방을 일삼았다. 어쩌다 설리가 응수하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듯 더 심한 악플이 쏟아졌다. 나중엔 "욕하는 것도 지친다"고 비웃을 정도였다.

'악플'은 14일 오후 5시쯤, 마침내 숨을 죽였다. 설리가 숨진 것 같단 소식이 전해진 뒤였다. 그는 스물 다섯 평생에 걸쳐서도 못 들은 좋은 댓글을, 떠난 뒤에야 마음껏 받았다. 그러나 여기에 설리는 아무 말도 없었다. 매일 같이 활발하던 그의 SNS도 이미 멈춘 뒤였다.




◇활동 멈출만큼 힘들었대도…'악플'은 멎지 않았다

[MT리포트] 설리도 최진실도 종현도…악플에 무너진 그들
설리는 이미 악플로 인해 힘들었단 사실을 고백했었다. 2014년엔 악성 댓글과 루머 등으로 힘겹다며, 연예계를 잠시 떠나 있기도 했다.

이후 배우로서 집중하는 행보를 보였지만, 악플은 계속 이어졌다. 특히 '노브라(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것)'와 관련해 소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당당하게 사진을 찍었고, SNS에 올렸다. 방송에선 "노브라로 다니는 건 단지 편해서"라고 솔직한 의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설리를 향해 쏟아진 건 온갖 악플이었다. 기사 댓글과 SNS, 커뮤니티 등에 설리 사진이 오르내리며 비방의 대상이 됐다. 당당한 행보는 '관종(관심을 이끌기 위해 하는 행동)'으로 비난 받았고, 소신 있는 발언은 '건방지고 불편한 것'이 됐다. 불특정 다수의 대중 속에 숨은 악플러들은 점점 강도를 높여갔다. 설리가 의연하게 대처하려 할수록 더 그랬다.

애써 웃는 모습을 SNS에 올리던 설리도 괜찮은 게 아녔다. 그는 방송에 출연해 "바깥에서는 밝은 척 하지만, 인간 최진리의 속은 어둡다"고 힘들게 고백했다. 양면성 있게 살고 있다고 했다. '악플의 밤'이란 프로그램에서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악플'은 멈추지 않았다.

14일 설리가 숨진 뒤에야 악플은 잠잠해졌다. 악플 대신 '추모'가 이어졌다. 과거 악플이 달린 기사엔 "이런 댓글이 설리를 숨지게 했다"는 글이 이날 뒤늦게 올라왔다. 해당 댓글은 조용히 추천을 받았다.

◇'가슴 노출' 등 자극적인, 실시간 기사들

[MT리포트] 설리도 최진실도 종현도…악플에 무너진 그들
이슈가 된단 이유로, 조회수가 많아진단 명분으로, 설리 SNS는 기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설리가 사진을 올릴 때마다 적게는 수십개, 많게는 수백개씩 비슷한 기사가 올라왔다.

제목도 자극적이었다. 지난달 28일, 실수로 설리가 인스타 라이브 방송서 가슴을 노출하자 '가슴 노출 논란'이란 제목을 달았다. 마치 설리가 잘못한 것처럼, 의도적으로 노출한 것처럼 비춰질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 기사가 올라올 때마다 댓글들이 수백, 수천개씩 달렸다. 설리가 마치 의도한 것 마냥 비하하고, 비아냥대고, 성희롱을 했다. 그 장(場)을 마련해 준 건 기자들이었고, 기사들이었다.

그런 이유로 설리 연관 검색어는 늘 자극적인 것들 뿐이었다. '설리 3초 삭제 사진', '설리 노출' 등이 주를 이뤘다. 한 연예인으로서, 배우로서, 그 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존중 따윈 없었다.

언론계 관계자는 "설리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던 언론들은, 설리가 숨지자 이제 숨진 것 가지고 또 다른 장사를 한다"며 "설리가 떠난 뒤엔 또 누구겠느냐.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자극적이고 조회수를 높일 기사 소재만 찾게 하는, 언론 생태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악플', 막으려면 법적 대응 뿐…"연예인도 사람"



/삽화=김현정 디자인기자/삽화=김현정 디자인기자
설리가 숨진 걸 계기로, 무분별한 '악플'을 막을 수 있는 구조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단 목소리도 비로소 커지고 있다.

그간 악플은 '표현의 자유'란 명분 하에 무분별하게 범람해 왔다. 익명의 공간에 숨어 특정인을 향해 악플을 퍼붓고, 이로 인해 연예인을 포함한 공인들이 고통을 호소해왔다. 심한 경우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하고,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그 때뿐이었다. 온라인상 자유를 해치면 안된다는 주장과 그래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단 찬반 여론 사이에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지 못했다.

현재로선 악플을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법적대응 뿐이다. '명예훼손' 등의 명목으로 적극적으로 고소해야 겨우 대응할 수 있는 것. 하지만 그마저 이미지를 중시하는 연예인들로선 쉽게 나설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와야 한단 목소리가 높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평론가는 "연예인이 공인이라고 해서 악플을 맘대로 달아도 좋은 건 아닌데, 우리나라에선 그게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인식이 퍼져있다"며 "연예인도 공인이기 이전에 감정을 가진 사람이다. 심하면 누군가 삶을 송두리째 뽑기도 한다.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남형도 기자

설리도 최진실도 종현도…악플에 무너졌다
쏟아지는 악플에 우울증·극단적 선택까지

배우 설리,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배우 설리,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고(故) 설리(본명 최진리·향년 25)가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그녀에 앞서 다수의 스타들이 악성댓글(이하 악플)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지만, 악플의 폐해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15일 경기 성남수정경찰서에 따르면 설리는 지난 14일 오후 3시21분쯤 자택인 경기 성남 수정구 심곡동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설리가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악플로 인한 괴로움이 컸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설리가 방송에 나오거나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릴 때마다 그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유니, 최진실, 종현…악플에 고통받은 스타들

고(故) 최진실. /사진=머니투데이DB고(故) 최진실. /사진=머니투데이DB
많은 스타들이 설리처럼 악플로 고통을 받다 세상을 떠났다. 고(故) 최진실은 2008년 10월2일 향년 40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최진실을 이혼 후 자녀에 대한 악플이나 사채설 루머 등으로 고통받으며 우울증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진실의 딸인 최준희양은 지금까지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 최양은 2015년 한 방송에 출연해 “인터넷을 통해 들으면 안 됐던 말들을 너무 많이 들었다”며 “그때 상처 받은 게 아직 마음이 아프다”고 언급했다.

2007년 1월 세상을 떠난 고 유니(본명 허윤)도 악플 피해자였다. 섹시한 콘셉트로 가수 활동을 했던 유니는 당시 약 20개월 만에 컴백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당시 유니의 소속사 관계자는 “자기 기사를 보며 댓글로 인해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았었다”고 고백했다. 이외에도 배우 이은주, 배우 정다빈, 그룹 SG워너비 출신 채동하 등도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는데, 무분별한 악플이 곧 우울증의 원인이기도 했다.

故 그룹 샤이니 종현의 발인식/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故 그룹 샤이니 종현의 발인식/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설리와 같은 아이돌 출신 가수들은 어린 나이 등으로 악플에 더 취약하다. 2017년에는 그룹 샤이니 출신 종현이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룹 카라 출신 구하라도 지난 5월26일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됐다. 구하라는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앞으로 악플 선처 없다”며 “제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여러분들께서도 예쁜 말 고운 말 고운 시선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악플로 인한 우울증을 고백한 스타들도 있었다. 그룹 소녀시대 멤버 태연은 지난 6월 SNS에서 “(우울증) 약물치료를 열심히 하고 있다”며 “조울증이든 우울증이든 쯧쯧, 거리면서 누구 말처럼 띠껍게 바라보지 말아달라. 다들 아픈 환자들”이라고 썼다. 가수 솔비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그냥 나 하나 없어지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땐 제가 소중하지 않았다”며 “엄마는 충격받아서 병원에 입원하시고 정신적으로 정말 안좋으셨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소속사 강경 대응 추세지만…악플 대처 쉽지 않아



모델 신재은이 지난 9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사진=신재은 인스타그램모델 신재은이 지난 9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사진=신재은 인스타그램
이외에도 지금까지 악플 피해를 호소했던 연예인은 셀 수 없이 많다. 방송에 출연하거나 이슈가 생기면, 관련 기사가 나오고 그 기사에 악플이 달리는 식이다. 방송에 나오는 비연예인이나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 악플의 대상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소속사 측에서 명예훼손·허위사실 유포로 ‘악플러’를 고소하며 강경 대응하는 추세다. 연예인 스스로 개인 SNS를 통해 경고하거나, 소송 의지를 밝히는 경우도 있다. 악플을 직접 캡쳐해 공개하며 심각성을 알린 스타들도 많다. 이번 달만 해도 축구선수 출신 스타 안정환의 아내인 이혜원, 모델 신재은, 걸그룹 티아라 출신 한아름 등이 SNS를 통해 악플로 인한 피해를 호소했다.

하지만 연예인들의 적극적인 대처만으로 악플이 완전히 사라지기는 어렵다. 악플을 남기는 불특정 다수를 모두 고소할 수도 없는데다 대중 스타로 이미지를 중시해 선처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설리는 악플러를 고소했다가 “동갑내기 친구를 전과자로 만드는 게 미안했다”며 선처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따듯했던 설리가 우리 곁을 떠난 지금, 이제 더이상 악플로 스타들을 아프게 하지 말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민선 기자

누가 설리를 죽였나…손가락 살인, 처벌은?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매년 증가…지난해 1만5296건 사상 최대

고(故) 설리(본명 최진리, 25) 자료사진.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고(故) 설리(본명 최진리, 25) 자료사진.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진짜 관심병 걸린 X"

"너희 부모님도 생각해"

아이돌그룹 f(x)(에프엑스) 출신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25)가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최씨가 세상을 떠난 지 하루,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는 여전히 최씨를 비난하는 악플(악성댓글)이 떠돈다.

최씨는 극심한 우울증을 겪은 것으로 알려진다.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도 우울증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최씨를 죽음으로 내몬 건 결국 악플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연예인 등 인기인과 공인을 향한 '마녀사냥이 아니냐'는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이 같은 악플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 온라인 명예훼손·모욕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5일 경찰청에 따르면 사이버 명예훼손·모욕죄 발생 건수는 2014년 8880건에서 2015년 1만5043건으로 증가한 이후 매년 1만5000건 내외로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1만5296건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서울 시내 일선 경찰서 한 수사과장은 "악플에 시달리는 연예인이 명예훼손· 모욕죄로 고소하는 사건이 늘고 있다"며 "예전에는 고소하지 않고 선처해 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그 수위가 심각해 고소까지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온라인 명예훼손·모욕이 늘고 있지만 처벌 수위가 낮다 보니 악플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도 낮을 수밖에 없다.

인터넷이나 SNS에 악플을 달면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명예훼손죄와 형법상 모욕죄가 적용이 가능하다. 사실 여부에 따라 명예훼손죄와 모욕죄가 구분된다.

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거짓을 적시한 명예훼손은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모욕죄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소송에 가면 처벌은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다 대다수다. 2017년 30대 A씨가 여자 연예인의 결혼 소식을 접하고 "결국 꽃뱀도 시집만 잘 가면 땡"이란 댓글을 달았다가 재판에 넘겨졌는데 법원은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2016년 세월호 유가족 인터뷰를 보고 "독하게 지랄하겠구먼. 시체장사"라는 댓글을 단 B씨는 유가족을 모욕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100만원을 받았다.

최씨처럼 목숨을 잃은 사람에 대해서는 모욕죄가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진짜 관심병 걸린 X 같음"이라는 댓글은 모욕죄에 해당하는데 사망한 뒤 달렸다면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목숨을 잃기 전에 달린 댓글이라면 유가족이 모욕죄로 고소할 수는 있다.

법조계에선 악플 피해를 줄이기 위해 형사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악플만으로도 최대 징역 3년9개월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김지훈 YK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대부분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는 약식기소되고 벌금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며 "대법원 양형위원회 기준에 따라 실제 적용 수위가 높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동수 기자

악플에 일상 사라진 사람들…'제2의 설리' 막으려면
SNS 활성화로 일반인 대상 악성댓글 증가…30% 가량 사이버 폭력 경험, 교육 외에 인터넷실명제 도입 재검토

[MT리포트] 설리도 최진실도 종현도…악플에 무너진 그들
#1.직장인 3년차 A씨(30·여)는 1년전 친한 동료에게 '불륜을 고발한다'는 글을 받고 깜짝 놀랐다.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에 등장한 여성의 회사와 부서, 나이가 자신과 같아서였다. 댓글에는 '죽어라', '나쁜X' 등 입에 담지 못할 악플 수십개가 달렸다. 악플과 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A씨는 결국 우울증에 빠졌고 6개월 휴직 신청을 했다.

#2.대학교 3학년생 B씨(23·여)는 지난해부터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있다. 발단은 대학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라온 '00과 0반 여신 알고 보니 성형미인'이라는 글이다. 실명은 없었지만 자신으로 특정될 만한 내용이었다. '성괴(성형괴물)였네', '과거 사진 찾아 봐라' 등 댓글을 보고 상처를 받았다. 불안감에 시달린 B씨는 지난달부터 정신과 병원을 다니고 있다.

악성댓글(악플)은 더 이상 연예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터넷을 통한 소통이 활발해짐에 따라 일반인들도 악성 댓글의 표적이 되고 있다.

15일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방통위가 6162명을 대상으로 사이버폭력 경험률을 조사한 결과 32.8%가 온라인에서 사이버폭력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는 전년 대비 6.8%포인트 증가한 수치로 10명 중 3명이 사이버 폭력을 경험한 셈이다.

서울 일선 경찰서 한 수사과장은 "예전에는 연예인 등 유명인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대학교 SNS나 사내 인터넷 게시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저격 글이나 악플에 시달려 경찰서를 찾아오는 일반인들도 꽤 많다"며 "피해자들도 10대 청소년부터 대학생, 직장인, 주부까지 다양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악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적 측면이 강조돼야 한다고 말한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공교육 차원에서 온라인상 교육 커리큘럼을 강화해야 한다"며 "도덕적인 규범과 인식에 대한 교육이 아직 없는 상황이어서 공교육에서부터 인성 교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단순히 해당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넘어 교육적인 법률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징역이나 벌금 외에 강제로 인성 교육을 받도록 만들어 인식의 틀을 바꿀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병철 선플운동본부 이사장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선플(착한 댓글) 의무 교육을 시행해 인성 교육을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며 "교육적인 정책이 시행될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터넷 익명성이 이런 상황을 심화시키는 원인이라며 '인터넷 실명제' 재도입도 얘기한다.

'인터넷 실명제'는 실명과 주민등록번호가 확인된 사람만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 있는 제도다. 2007년 시행됐지만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제기돼 5년 만인 2012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져 효력이 상실됐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도 "우리 사회가 민주화됐고 언로도 열려있는데 과거 우울했던 시절 생각만 가지고 익명성을 보호해주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익명에 숨어 본인이 하는 일에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명제를 통해 이런 부분이 정제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인터넷 실명제'가 다시 도입돼 악성 댓글로 인한 피해와 균열을 막아야 한다"며 "인권과 명예가 훼손당하고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현 상태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이유로 묵인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임찬영 기자

'하루 86만 개' 달린다…포털은 '댓글공화국'
9월 한 달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 추산치 총 2570만6003건…악플 비율은 80%

/사진=설리 인스타그램/사진=설리 인스타그램
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25)가 짧은 생을 마감하고 하늘의 별이 됐다. 아직 정확한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설리가 생전 수많은 악성댓글에 시달렸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다.

11살에 데뷔해 인생의 절반 이상을 대중 앞에 선 채로 보낸 설리. 그는 주관이 뚜렷한 행보로 늘 주목받았다. '독보적 이슈메이커'였던 만큼 그에겐 항상 댓글이 쏟아졌다. 설리의 인스타그램 게시글에는 1000개 넘는 게시글이 달리곤 했다. 넘치는 댓글과 그 안의 악플에도 설리는 "무서워하고 숨을 수도 있었다.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많은 사람들의 편견이 없어지길 바랐기 때문"이라며 소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댓글은 설리의 인스타그램뿐 아니라 온라인 전반에서 넘쳐난다. 포털사이트에는 하루에만 수십만건의 댓글이 달린다. 수많은 댓글 중 상당수는 '악플'이다.

15일 포털사이트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지난 9월 한 달간 네이버 뉴스에는 총 1583만4898건(삭제 건 포함)의 댓글이 등록됐다. 일평균으로 환산하면 하루에 52만7830개의 댓글이 달린 것이다.

이는 일부에 불과하다. 네이버 외의 포털사이트 뉴스에서도 댓글이 달리기 때문. 인터넷 통계 데이터 전문기업 인터넷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 9월 네이버의 포털사이트 점유율은 61.6%로 나타났다. 네이버를 제외한 다음, 줌 등 포털사이트의 점유율을 종합하면 38.4%다. 점유율에 따라 단순 계산하면 네이버 외 포털사이트 뉴스에는 지난 9월 987만1105개의 댓글이 등록됐다고 볼 수 있다.

[MT리포트] 설리도 최진실도 종현도…악플에 무너진 그들
종합하면 지난 9월 한 달 포털사이트 뉴스에 달린 댓글 추산치는 2570만6003건. 하루 평균 85만6866개다. 댓글을 작성하고 등록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1분이라고 가정했을 때, 한 달 동안 댓글에만 약 42만8000시간이 소요된 셈이다. 여기에 사회연결망서비스(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등록된 댓글을 더하면 이 수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넘치는 댓글 중엔 '악플'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의 저서 '모멸감'에 따르면 한국의 댓글 중 악플 비율은 80%로 추정된다. 이는 네덜란드(10%)와 일본(20%)의 악플 비율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평소 갖고 있던 분노를 온라인상에서 손쉽게 악플로 배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악성 댓글을 써도 '익명'이란 도구에 숨어 쉽게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악플'이 많아지는 것"이라며 "악플 피해 사례가 많아지고 있는 만큼 강력한 법적 처벌과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박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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