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스캔들'에 드리운 47년 전 '워터게이트' 그림자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2019.09.2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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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人세계IN] '트럼프' 통화 메모 이번엔 고발 문서까지 공개…'군사원조 미끼 압박' 의혹에 이어 '은폐' 시도 정황까지 드러나 '파문'

'우크라 스캔들'에 드리운 47년 전 '워터게이트' 그림자


"나는 닉슨 탄핵에 투표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엘리자베스 홀츠만, 뉴욕타임스, 2019.9.25)

'워터게이트' 파문 당시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의 구성원으로서 닉슨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찬성했던 엘리자베스 홀츠먼 전 민주당 의원은 뉴욕타임스에의 기고에서 이같이 밝혔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47년전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내부고발, 재선에 성공하기 위한 술수, 백악관의 은폐 의혹, 탄핵안 제기 등 측면에서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백악관의 외면, 은폐, 축소 시도가 일을 더 키웠다=단순 절도죄로 묻힐 뻔한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게이트'로 비화시킨 것은 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였다.



1972년 6월 어느날, 워싱턴 '워터게이트빌딩'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사무실에 5명의 괴한이 침입했는데 현장 체포 이틀 만에 워싱턴포스트는 이 사건이 닉슨 선거운동본부가 관여된 도청장치 설치 미수 사건임을 보도한 것.

초기에는 백악관이 연루 혐의를 부인하면서 이 보도는 큰 화제를 일으키지 못했다. 닉슨 전 대통령이 같은해 11월 재선에 성공한 것만 보더라도 보도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문제가 불거졌던 것은 오히려 대선 이후였다. LA타임스, 뉴욕타임스 등이 이 사안을 다뤘고 체포됐던 5명 중 한 명이 재판과정에서 감형을 제안받고 판사에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감청에 백악관이 관련있단 폭탄급 증언을 내놓은 것. 당시 특별검사가 임명됐고 상원 내 조사 위원회도 설치됐다.


수사 과정에서는 닉슨 전 대통령 측의 각종 비위 사실들이 하나 둘 밝혀졌다. 선거 방해는 물론, 대기업들로부터의 정치자금의 부정 수뢰, 탈세 등의 혐의가 드러났다. 닉슨 전 대통령의 측근이자 정부 초기 법무장관을 지냈던 존 미첼이 야당의 정보 수집에 관여한 사실 또한 탄로났다. 특히 대통령 집무실에서 모든 대화가 녹음된단 사실이 폭로되면서 이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백악관의 사건 은폐 및 축소 시도는 상황을 악화시켰다. 청문회에서는 녹음 테이프 공개를 요구했지만 닉슨 대통령 측은 국가 기밀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고 나중엔 일부만을 공개했다.

또 수사를 맡았던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 마저 해임시키면서 정권에 치명타를 안겼다. 닉슨이 콕스 특검을 해임시키려 하자 법무장관이 이같은 지시를 거부, 사임했고 이후 권한을 이양받은 법무차관도 지시를 거부하고 사임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언론에 '토요일 밤의 대학살'로 대서특필됐다.

여론은 급랭했고 하원은 1974년 7월, 닉슨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결의했다. 탄핵안은 상원 통과도 확실시됐지만 닉슨은 자진 사퇴하는 쪽을 택했다. 결국 그는 1974년 8월8일,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닉슨 전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도 '딥 스로트'로만 알려진 내부고발자의 정체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정보원은 익명 보장을 조건으로 주로 새벽 2시를 전후한 시각, 자동차 주차장 등에서 기자에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기자 등은 "죽을 때까지 발설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정체가 FBI의 부국장을 지낸 마크 펠트였단 것은 33년이 지난 2005년이었다. 펠트 전 부국장 자신이 살 날이 얼마 안남은 시점에서 딸의 권유를 받아 자신이 '딥 스로트'였음을 밝히기로 결심했던 것. 밥 우드워드도 이같은 사실을 추후에 인정했다. 펠트 전 부국장은 2008년 눈을 감았다.

닉슨 전 대통령의 사임 회견을 지켜보는 기자들/사진=AFP닉슨 전 대통령의 사임 회견을 지켜보는 기자들/사진=AFP
◇트러프 대통령, 닉슨 전 대통령과 다른 길 갈까='우크라이나 스캔들'에서의 내부고발자의 신원은 워터게이트 사건에 비하면 빛처럼 빠른 속도로 알려졌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내부고발자에 대해 미 중앙정보국(CIA) 소속의 백악관 파견 경력이 있는 남성 현직 요원이라고 보도했다. 제한적 신원공개라고는 하나 주변인이라면 눈치챌 만한 수준의 정보공개였다.

지난달 12일, 이 내부고발자가 미 정보기관 감찰관실에 신고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달 여 만에 제한적인 신원이 공개된 것이다.

NYT는 내부고발자의 신원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독자들의 비난이 일자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은 탄핵절차를 유발시킨 내부고발자의 신뢰도를 공격했다"며 "독자로 하여금 어느것이 신뢰할 만한 것인지에 대해 그들이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길 원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의혹을 한 줄로 요약하면 '미국 대통령이 군사 원조를 빌미로 자신의 정적(조 바이든)에 대한 조사토록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이 의혹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내용에서 노골적 압박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단 이유로 "압박은 없었고 정상적 통화였다"고 항변했고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역시 의혹을 일축했다.

다만 26일 의회를 통해 공개된 고발 문건에 따르면 이런 의혹에 더해 백악관이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까지 담겨 있어 더 큰 파장이 예고됐다.

백악관 변호사들이 두 정상의 통화 내용이 담긴 전자 녹취록을 컴퓨터 시스템에서 제거하고 별도 전자 시스템으로 옮기라 지시했다는 것이다.

워터게이트를 첫 보도했던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어떻게 볼까. 단발적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라 보는 것 같지 않다.

"신중하게 구성된 고발은 협박에 의한 강제가 단 한번의 전화 통화에만 국한돼 있음을 보여주지 않는다. 백악관 관계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이 부적절하단 것을 이해하고 잘못을 숨기려 했다고 적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트럼프 대통령의 권력의 남용에는 조력자들이 있다. 의회는 그들 모두를 추궁해야 한다"(2019.9.26, 사설)

# 워터게이트 스캔들 취재를 진두지휘하고 취재기자들을 보호한 워싱턴포스트의 영원한 편집장 벤 브래들리(2014년 타계)는 이런 신념을 회사에 새겨놓았다. '진실은, 아무리 나쁠지라도 궁극적으로 거짓말만큼 위험하지는 않다'. 아직까지는 주장만이 난무하는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진실(누군가의 거짓말)은 얼마만큼 위험할까. 미국과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사진=AFP/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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