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공표 '딜레마'…피곤한 일선 경찰들

머니투데이 이재윤 기자, 김상준 기자, 유효송 기자, 오문영 기자, 조해람 기자 2019.09.1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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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경찰들 극도로 혼란, 예민…전면금지 vs 허용 불가피 견해 엇갈려

경찰청 자료사진./사진=뉴시스경찰청 자료사진./사진=뉴시스


피의사실 공표 기준 논란이 가중되면서 경찰 일선의 혼란도 불거졌다. 이들은 명확한 기준이 나오기 전까진 대외 홍보나 언론접촉 등 관련 업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18일 머니투데이가 만난 서울 시내 일선 경찰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원칙이 필요하다"로 요약된다.



한 경찰서 과장은 "(피의사실 공표는) 피해자나 피의자 측면에선 하지 않는 게 바람직한 것 같은데, 국민 알 권리 차원에선 필요하다"며 "어려운 문제지만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촉구하고 기준을 제안했지만 일선 직원은 여전히 위축돼있다. 모호한 기준 탓에 언론 공보 책임을 맡은 일선 경찰서 간부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또 다른 간부는 "(피의사실 공표 관련) 지침이 있지만 지키는 건 개인의 몫"이라며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어느 정도 알리지만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알 수 없는 게 딜레마"라고 토로했다.

이어 "피의사실 공표 기준이 강화된다고 하더라도 (실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지 의문이 든다"며 "일선 공보 책임자가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피의사실 공표 기준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도 맞물려 있어 극도로 예민한 문제기도 하다. 지난 6월 울산 검찰이 경찰관 2명을 입건하면서 분위기가 더욱 굳어졌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한 경찰관은 "검찰은 그동안 권력층, 유명인을 수사해 여론을 이용하려 했던 것"이라며 "검찰이 이번 피의사실공표 금지 방침 계기로 업무에 제약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기준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렸다. 판결이 나기 전 무죄추정의 원칙과 피의자 인권침해를 이유로 '전면금지'가 필요하다는 견해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가짜뉴스를 줄이기 위해선 '불가피하다'는 의견이다.

한 지구대 팀장은 "피의사실 공표죄가 규정돼 있는 법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라며 "원칙대로만 하면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관도 "기준은 명확하지 않지만 '큰 사건' 이외엔 알 권리가 앞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 경찰 간부는 피의사실공표 금지 방침의 부작용을 우려했다. 그는 "(피의사실 공표 기준 강화로) 국민피해가 클 수 있다"며 "잘못 알려진 정보가 바로잡히는 기능이 원천 차단되기 때문"이라고 의견을 냈다.

일선 경찰관의 권한이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경찰 간부는 "일선 경찰서에서 사건 브리핑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중앙에서 정보가 통제되면 잘못된 정보의 신속한 해명이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국회토론회에서 피의사실 허용기준을 크게 3가지로 나눠 제안했다. 범죄피해 예방, 국민 협조가 필요한 사건이나 권력형 비리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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