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IT가 주도한 '세기의 소송', 배터리가 이어받나

머니투데이 안정준 기자 2019.09.0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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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전쟁]막대한 소송비, 합의금, 이미지 실추의 역설…美서 강대 강 맞붙는 SK이노-LG화학

[MT리포트]IT가 주도한 '세기의 소송', 배터리가 이어받나


기업 간 특허소송의 역사는 깊다. 영국이 1624년 최초의 특허법을 만들었고 미국은 1776년 특허법을 제정했다. 이후 400년 가까운 시간 기업 간 '지식재산 전쟁'이 진행된 가운데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구글 등 특허 소송만으로도 막대한 부를 쌓는 '특허 괴물'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세기의 특허소송'으로 부를만한 다툼은 산업기술의 끝단에 위치한 IT(정보기술) 업종에서 빈발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대표적 소송은 삼성과 애플 간 소송이다.



양사 분쟁은 애플이 2011년 삼성전자가 자사의 둥근 모서리 디자인을 비롯한 표준특허 2건, 상용특허 3건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IT 거인의 충돌이었다. 소송의 무대는 미국이었고 이후 항소심, 상고, 파기환송심을 거쳐 장기 소송으로 비화했다.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연방지법 배심원단이 2018년 5월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5억3900만달러(약 6400억원)을 배상액으로 지불해야 한다고 평결한 다음 달, 양사는 분쟁을 덮기로 극적 합의했다. 삼성전자가 애플에 지불할 합의 금액은 비밀에 부쳐졌다. 양사 소송은 '7년 소송'으로 불린다.



규모 면에서 '세기의 특허소송'은 애플과 퀄컴 간 분쟁이다. 2017년 시작된 소송 규모는 약 300억달러(약 36조원). 애플은 퀄컴이 칩값 외에 특허사용료까지 이중으로 청구한다며 270억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퀄컴은 애플이 특허사용 계약을 위반했다며 맞소송을 제기했다. 세계 각국에서 동시다발적 소송이 진행됐는데, 역시 주 무대는 미국이었다.

애플은 지난 4월 합의금 지급 및 라이선스 계약 체결을 조건으로 퀄컴과 전격 합의했다. 애플은 퀄컴에 약 47억달러(5조6000억원)를 합의금으로 지급한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진행 중인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의 소송전은 근래 벌어진 '세기의 소송전'과 비교하면 특이한 사례다. 우선 IT에 이어 세계 산업을 주도할 전기차 배터리 업종을 이끄는 한국 기업간 다툼이다. 그리고 그 다툼이 '소송의 나라' 미국에서 진행된다.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 및 연방법원이 적용하는 '증거개시(Discovery) 절차'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때문에 미국에서 맞붙는 것으로 보인다.

증거개시절차는 상대방이 가진 사건 관련 자료를 모두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절차이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가해자가 의도적 목적으로 불법행위를 행한 경우 피해자가 실제 손해에 더해 형벌적인 요소로서의 금액을 추가적으로 받는 제도다. 상대에게 줄 수 있는 타격이 상당하다. 미국에서의 소송으로 양사 모두 '강대 강' 대결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하지만 그동안 미국에서 벌어진 소송 상당수가 막대한 소송비를 감당한 끝에 양측 합의로 끝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양사 모두에게 소모적일 수 있다. 게다가 증거개시 절차를 밟을 경우 한국이 선도하는 배터리 기술력의 해외 유출 가능성까지 있다. 최근 우리 정부가 양사 중재에 나선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과거 양사는 정부 중재로 화해한 적도 있다. 2011년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분리막 코팅 특허를 침해했다고 소송을 냈는데,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합의했다. 2012년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의 맞소송전도 비슷한 사례다. 당시 양사는 핵심 기술 및 인력 유출을 쟁점으로 부딪쳤는데, 국익을 고려한 정부가 중재에 나섰고 결국 화해했다.

다만, 두 건 모두 국내에서 벌어진 소송전이었다. 지금처럼 미국에서 상대에 대한 '최대한의 타격'을 염두에 둔 다툼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재계 관계자는 "이미 양사 모두 전면전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며 "자칫 배터리 영역에서 최초로 벌어진 세기의 소송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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