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보복카드로 전선을 키우기보다 일단 우리 정부의 반응과 반일(反日) 후폭풍을 지켜보자는 의도로 보인다. 시행세칙 발표에 이어 기존 3대 수출규제 품목 중 하나인 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의 한국 수출을 허용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현재로선 한일 무역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거칠게 몰아붙이던 일본이 공세를 잠시 멈췄지만 ‘깜깜이 시행세칙’으로 불확실성이 오히려 증폭됐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양국의 시각차도 여전히 평행선을 달린다.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서로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어놓은 일촉즉발의 형국이 계속되는 셈이다.
한일 무역전쟁이 어떤 양상을 띠든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바로 수입처 다변화와 함께 기술자립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이 경제보복을 철회한다고 해도 비슷한 사태가 재발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보호무역주의 하에서는 글로벌 밸류체인(가치사슬)이 무시되고, 언제든 기술이나 자원이 무기화될 수 있다. 당장 미국의 경제제재에 희토류 수출규제로 대응하는 중국을 보라. 앞서 이를 경험한 일본은 수입처 다변화 등을 통해 90%에 육박하던 중국 의존도를 55%로 떨어뜨렸다.
주지하다시피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기댈 수 있는 건 결국 기술자립뿐이다. 소재·부품·장비뿐 아니라 종자 등 산업 전분야에 걸쳐 대외의존도가 높은 핵심품목들을 선별하고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연구·개발 전문인력 양성·보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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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방부의 대체복무제도(전문연구요원·산업기능요원) 축소·폐지방안도 이런 점에서 재고돼야 한다. 중소·벤처기업이 전문인력 수급을 병역특례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이를 축소·폐지할 경우 인력난은 심화하고 기술개발 의지는 꺾일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산업기술진흥협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20대 석·박사 연구인력은 2963명이며 이중 77.4%가 전문연구요원(2293명)이다.
역설적이게도 일본의 경제보복 덕에 우리는 한데 뭉쳐 산업생태계를 바꿀 수 있는 계기와 동력을 얻었다. 기술자립을 위해 학계와 재계,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이 상생하고 정부가 이를 정책적으로 꾸준히 뒷받침한다면 이번 사태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이다. 섣불리 건들 수 없는 보다 강한 기업, 강한 국가로 거듭나는 그런 절호의 기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