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겪은 美 환율조작국 지정, 목적은?

머니투데이 세종=최우영 기자 2019.08.0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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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측 무역적자 커질 경우 환율조작국 지정해 해당국가 수출경쟁력 타격

일본의 백색국가 목록 제외 등 대내외 외환시장 불확실성 영향으로 원화의 약세가 두드러져 달러당 환율이 1200원대를 돌파한 지난 4일 오후 관광객들이 서울 중구 명동 환전소에서 환전을 하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일본의 백색국가 목록 제외 등 대내외 외환시장 불확실성 영향으로 원화의 약세가 두드러져 달러당 환율이 1200원대를 돌파한 지난 4일 오후 관광객들이 서울 중구 명동 환전소에서 환전을 하고 있다.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미국이 지난 5일(현지시각)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것은 연간 5000억달러(약 607조원)에 달하는 무역적자 규모를 줄이기 위한 포석이다. 한국 역시 대미무역 흑자가 급증하던 시기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돼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

한국이 처음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건 1988년 10월이다. 당시 3저(저달러-엔강세·저유가·저금리) 호황에 힘입어 경상수지 흑자가 140억 달러를 초과하며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하던 때였다. 대미 수출 역시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1987년 대미 수출은 183억달러(약 22조원)로 1년 전에 비해 31.9% 급증했다. 이 기간 무역수지는 30.2% 늘어난 96억달러(약 12조원) 흑자였다.



이에 미국은 1990년 4월까지 3차례에 걸쳐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당시 한국 정부가 시장원리가 아닌 정부 고시에 따라 환율을 정하면서 의도적으로 원화를 절하해 수출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이유였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자 원화는 급격하게 절상됐다. 원/달러 환율은 1987년 연 평균 792.30원이었지만, 2년 후 679.60원으로 14% 하락한다. 당시만 해도 가격경쟁력에 의존하던 수출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1988년 141억달러(약 17조원)였던 경상수지흑자는 1989년 3분의1 수준인 50억달러(약 6조원)로 줄었다. 이 기간 대미무역도 약 30% 감소했다. 1988년 86억달러(약 10조원)였던 대미 무역 흑자는 1989년 47억달러(약 6조원)로 반토막 났다.



여기에는 원/달러 환율 하락 외에 유가와 금리상승까지 겹치며 한국 경제를 짓누른 이른바 '3고'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환율조작국 지정 이후 한국 정부는 환율제도를 정부가 고시하는 '복수통화 바스켓'에서 시장원리에 따른 '시장평균환율' 제도로 바꿨다. 시장평균환율제도는 전일 시장거래 환율과 거래량을 가중평균한 기준환율을 정하고, 상하한 변동폭을 지정하는 식이다. 복수통화 바스켓에 비해 보다 더 시장 원리를 반영한 것이다.

또 금리 자유화, 외환시장 자본규제 완화 등도 실행했다. 무역부문 흑자를 줄이기 위한 '흑자관리대책'을 수립하고, 수입 자유화 조치도 내놨다. 이에 따라 대미무역 흑자가 줄어들면서 1990년 4월 환율조작국에서 해제됐다.


한편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 교역촉진법에 의해 1년간 양자협의를 갖는다. 그래도 시정이 되지 않으면 미국은 대외원조 관련 자금지원 금지, 정부 조달계약 금지, IMF 협의시 추가 감시요청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한국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관찰대상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환율조작국 기준은 △지난 1년간 대미무역 흑자 200억달러(약 24조원) 이상 △GDP(국내총생산)의 2%를 초과하는 경상수지 흑자 △12개월간 GDP의 2%를 초과하는 외환 순매수 등이다. 관찰대상국은 이 중 2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국가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환율조작국 지정은 무역분쟁 때문에 일어나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해 한미 FTA 개정협상을 끝냈기에 문제 없다"며 "미국 재무부도 원-달러 환율이 시장원리에 의해 자연스럽게 움직인다고 보기 때문에 우리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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