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베른주 구타넨에 위치한 그림젤연구소 입구 전경. 알프스산맥 해발 1700m의 암벽에 동굴을 뚫어 위치한 사용후핵연료 관리기술을 연구하는 지하연구시설(UL)을 만들었다./사진=유영호 기자 yhryu@
‘택시(TAXI)’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전용승합차를 타고 높이 6m, 너비 5.5m로 뚫린 수평동굴을 따라 1㎞를 이동하자 연구소가 나타났다. 현장 안내를 맡은 펠릭스 글라우저 나그라 PR담당자는 “동굴 안에는 일반 차량 출입이 엄격히 금지돼 연구원들도 모두 ‘택시’를 타고 출퇴근 한다”고 말했다.
나그라는 암벽 전체가 단단한 화강암으로 이뤄진 이곳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지하연구시설(UL) 입지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10여년 건설공사를 진행해 1984년 연구소를 준공했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원전 도입과 동시에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까지 철저히 준비해 온 셈이다.
스위스 베른주 구타넨에 위치한 사용후핵연료 지하연구시설 그림젤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사용후핵연료 처분용기 캐니스터 소재부식 실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유영호 기자 yhryu@
연구를 주관하는 앤드류 마틴 박사는 “캐니스터 소재에 대한 부식시험으로 시간이 지났을 때 용기에 얼마나 손실이 일어날 것인가를 분석·예측할 수 있다”며 “시간이 흘러 데이터가 쌓일수록 캐니스터 안전성을 강화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근에 위치한 벤토나이트 시험소로 자리를 옮겼다. 스위스는 사용후핵연료를 담은 캐니스터를 처분터널에 넣어 빈 공간을 벤토나이트 화합물로 채운 뒤 콘트리트로 밀봉할 계획이다. 벤토나이트는 화산재 등 유리질 화산물질의 화학적 변화 또는 결정질 점토로 이뤄진 암석으로 수분을 잘 흡수하고 흡수한 수분과 함께 팽창하는 성질이 있어 방사선 누출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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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베른주 구타넨에 위치한 사용후핵연료 지하연구시설 그림젤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온도와 압력 변화에 따른 사용후핵연료 처분 환경 변화에 대한 시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유영호 기자 yhryu@
그림젤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방사성폐기물 관리기술 및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건설·운영에 대한 연구 결과는 국제 공동연구에 참여한 다른 나라들에 공유된다. 서로 비용을 분담하고 성과는 공유해 연구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공동연구에는 한국을 포함해 독일, 미국, 스웨덴, 스페인, 영국, 유럽연합, 일본, 체코, 캐나다, 프랑스, 핀란드가 참여하고 있다.
스위스는 지난해 말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장 후보지로 △레이건(취리히·아르가우 접경) △유라(알고우) △취리히 노르드 오스트(취리히·투르가우 접경) 3곳을 선정했다. 안정성과 안전성을 모두 고려했을 때 유백점토(Opalinus clay)가 유리하다는 분석에 기초했다. 지질조사 등 과학적 적합성 연구를 진행한 후 이르면 2022년 국민투표로 1곳을 선택할 계획이다.
스위스 베른주 구타넨에 위치한 사용후핵연료 지하연구지설 그림젤연구소에서 시험 중인 사용후핵연료 처분용기 캐니스터 모형. 수평으로 뚫은 터널 안에 사용후핵연료를 담은 캐니스터를 넣은 다음에 화합물인 벤토나이트를 채운후 콘크리트로 밀봉한다./사진=유영호 기자 yhryu@
원자력환경공단 관계자는 “스위스는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 첫 상용원전 가동 직후부터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장 운영까지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투입하는 셈”이라며 “한국도 관리기술 개발, 지하연구시설 건설·운영 등 지금부터 할 수 있는 부분부터라도 차근차근 준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