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생존자'의 리메이크 판인 tvN ‘60일 지정생존자’는 원작과는 정 반대에 있다. 이 드라마는 박무진(지진희) 환경부 장관이 국회의사당 테러로 대통령직 권한대행을 맡게 된 이후를 보여주는 일종의 영웅설화다. 원작이 타개하려 한 대상은 국민을 주변화 하는 구태 정치지만, ‘60일 지정생존자’가 목표로 삼은 것은 ‘남자답지 못함’이다. ‘60일 지정생존자’는 박무진이 얼마나 ‘남자답지 못한가’를 설명하는 데 드라마 초반부를 거의 할애한다. 드라마는 이렇게 시작된다. 운전 중인 박무진과 조수석에 앉은 부인 최강연(김규리)이 가운데 콘솔의 물병으로 거의 동시에 손을 뻗는다. 물병은 최강연이 차지한다. ‘아내한테 물도 못 얻어먹는 남편’ 박무진은 눈치를 보며 입을 달싹이고, 최강연은 밀린 업무 처리에 집중하며 ‘돈 좀 번다고 유난을 떠는’ 모습을 보여준다. 뒷자리에 앉은 중학생 아들은 ‘아버지가 묻는 말에 대답도 안 하고’ 창밖만 보고 있다. 남자라면 한 번쯤 놀아봐야 할 ‘큰 물’인 외교 협상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부처에서는 ‘신데렐라’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런데 박무진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후 사면초가,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비서실장, 합참의장 등 ‘우두머리 수컷’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과의 인정투쟁에서 승리하며 능력치를 키운다.
한 저명한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사석에서 이런 말을 들려준 적 있다. “한국 정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 ‘60일 지정생존자’가 이상적인 정치 드라마가 되지 못한 탓에는 한국정치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정체 없는 것을 정체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독재 정권을 20년에 한 번씩 시민이 피와 땀을 흘려 끌어내리고, 정당 원내대표 단 한 사람이 단식투쟁을 하면 6천여 명이 일하는 국회가 멈추는 한국의 정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에게도 ‘지정생존자’가 필요하다. 새로운 정치와 사회에 대한 시민의 열망과 요구를 구현하고 대안을 그려볼 기회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