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생수통은 누가 갈아주나

머니투데이 박종면 본지 대표 2019.07.22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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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강화한 ‘윤창호법’도 적극 찬성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있다.
 
자영업을 하는 평범한 서민이다. 금요일 저녁 친구들과 자신의 가게에서 술을 마셨다. 밤 10시쯤 술자리가 끝날 때쯤 약간 취기가 올라 술이 깨기를 기다리면서 1시간 정도 쉬었다. 여전히 술기운이 남아있는 걸 알았지만 가게에서 집까지는 차로 5분 거리밖에 안 되는 데다 대리운전기사도 바로 연결되지 않아 차를 몰고 나섰다. 그러나 가게를 나온 뒤 곧바로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고 말았다.
 
며칠 뒤 나온 결과는 참담했다. 혈중알코올농도가 0.1을 넘었고 여기에다 10여년 전 가벼운 음주운전 경력까지 있어 가중처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와봐야겠지만 면허취소 2년에 1000만~2000만원의 벌금이 예상된다고 한다.
 
자영업을 하기 때문에 수시로 배달도 가야 하는 이 사람에게 자동차는 중요한 생계수단이다. 게다가 1000만원 훨씬 넘을 과태금도 큰 부담이다. 그는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단다.
 
성희롱과 성추행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미투운동’에 대해서도 남성들의 업보로 겸허히 받아들이고 늘 반성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찌해야 하나.
 
몇 달 전 업무차 만난 노동청 여성 조사관은 성희롱·성추행에 대해 명쾌하게 정의를 내려줬다. 여성을 똑바로 쳐다봤는데 해당 여성이 성적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느꼈다면 그게 바로 성희롱·성추행이라고 했다. ‘성인지감수성’이 바로 이런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조사관은 이런 판단이 법원에 가면 다르겠지만 노동청 기준 성희롱·성추행은 이렇게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상대방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만 봐도 성추행 여지가 있다고 해서 여성들이, 또는 남성들이 희롱당했다고 신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직장 내에서 구성원들 간에 서로 사이가 틀어지면 가장 확실하게 상대방을 제압하는 수단이 성희롱·성추행으로 신고하는 게 요즘 현실이다. 실제로 많은 기업에서 이런 일이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난다. 기업이 경찰도 아니고 탐정회사도 아닌데 매일 이런 일에 매달리고 있다.
 
직장 내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한 ‘직장내괴롭힘금지법’에 적극 찬성한다. 이미 온라인 교육도 받았다. 그런데 이럴 땐 어찌해야 하나.
 
여성에게 커피나 차 심부름을 시키는 것은 옛날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비서에게도 외부 손님이 오는 경우가 아니면 차 심부름을 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사무실 내 생수통 물이 떨어지면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은 힘센 젊은 남성 직원들의 몫이었다. 문제는 괴롭힘금지법 시행으로 ‘고정된 성 역할에 기반한 업무지시’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돼 이게 더이상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이제 사무실 생수통은 누가 갈아주나.
 
신입사원 면접시험을 봤다. 말이 신입사원이지 요즘은 취업난 때문인지 나이가 서른 넘은 경우도 많다. 30세 넘은 응시자에게 결혼 여부를 물어보려다 아차 싶어 그만두고 말았다. 혼인 여부나 출신지역 같은 직무수행과 상관없는 개인정보를 요구하면 300만원 이상 과태료가 부과되는 채용절차법 개정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이 든 응시자에게 결혼 여부를 물어봐 그가 기혼자였다면 면접점수를 조금은 후하게 줄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서른이 넘은 데다 결혼까지 했다면 가장으로서 책임감 때문에라도 회사생활을 진득하게 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나이 든 응시자는 합격했을까 떨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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